한국 우선주, 우선권도 없는데 최대 63% 할인 거래
팰리서캐피탈 "괴리율은 거버넌스 부실의 바로미터"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같은 회사 지분임에도 최대 3분의 1 가격에 거래되는 한국 증시의 '우선주 디스카운트' 현상을 두고 이사회의 자본 배분 실패를 보여주는 징후라는 진단이 나왔다. 단순한 수급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세미나를 열고 우선주 저평가 원인과 해법을 논의했다. 삼성전자 우선주는 보통주 대비 25%가량 할인돼 거래 중이며, 현대차2우B는 50%, 두산 우선주는 60%대의 높은 괴리율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무의결권 보통주' 전락…美는 괴리율 없어
본래 우선주는 의결권을 포기하는 대신 배당과 잔여재산 분배에서 보통주보다 유리한 권리를 지닌다. 미국 우선주가 발행가 대비 6~8%의 고정 배당을 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한국 우선주는 보장 배당이 아예 없거나 액면가의 1~2% 수준에 그쳐 시가 대비 우선 배당률이 0.1%를 밑돈다. 잔여재산 분배 순위도 보통주와 동일하다. 한국회계기준원 역시 지난 2015년 한국 우선주의 경제적 실질이 보통주와 같다고 판정한 바 있다.
미국 증시 상황은 이와 딴판이다. 의결권이 없는 주식도 할인 거래가 거의 없다. 알파벳의 무의결권 주식(클래스C)은 의결권 주식(클래스A)과 동일한 가격에 거래되며, 버크셔 해서웨이 클래스B의 괴리율도 1%대에 불과하다. 유독 한국 시장에서만 수십 퍼센트의 격차가 고착화한 셈이다.
◇ETF 쏠림에 '우선주 패싱' 관행…거버넌스 부실도 있어
이러한 기형적 괴리율의 배경으로는 패시브 자금 쏠림과 기업들의 우선주 배제 관행이 꼽힌다.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보통주만 편입하다 보니, 시장 자금이 몰릴수록 매수세가 분리돼 가격 차이가 벌어지는 구조다.
여기에 자사주 매입이나 공개매수 과정에서 우선주를 철저히 배제해 온 기업들의 오랜 관행이 격차를 키웠다. 3년 연속 보통주만 사들인 회사가 있는가 하면, 주가순자산비율(PBR) 0.34배라는 헐값에 우선주를 공개매수해 상장폐지 절차를 밟은 사례도 있다. 발행사조차 우선주를 외면하면서 시장의 할인 거래가 정당화됐다.
해외 투자자들은 이를 명백한 거버넌스 문제로 지적한다.
사친 미스트리 팰리서캐피탈 매니징디렉터(MD)는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 주주는 이사회의 이익 보호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이사회가 우선주 가치 제고에 나선다면 이는 곧 거버넌스 개선의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주 할인을 해소하는 것이 한국 증시 전반의 저평가를 줄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반값 주식 매입이 이득…배당 확대가 지름길"
우선주 매입은 실상 보통주 주주에게도 유리하다. 가격이 싼 우선주를 사들여 소각하면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주식 수를 줄일 수 있어 주당순이익(EPS) 개선 폭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한 외국인 투자자는 "똑같은 성능의 공장을 반값에 지어줄 수 있는 업체를 두고 굳이 두 배 비싼 곳과 계약한다면 경영진은 그 결정을 설명해야 한다"며 "자사주 매입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경제적 실질이 같은 주식 간의 가격 차이가 회사 전체의 내재 자본비용을 불필요하게 끌어올린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사회가 비싼 보통주 매입과 소각만 고집하는 배경에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유인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통주를 소각하면 총 주식 수가 줄어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상승하지만, 우선주 소각은 이 같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제도 보완과 함께 배당 확대를 통한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복잡한 법 개정 없이 배당만 늘려도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괴리율을 좁힐 수 있다는 논리다.
전종언 마이알파매니지먼트 한국 대표는 "배당성향이 낮은 기업의 우선주는 할인되더라도 실제 배당수익률이 턱없이 낮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짚었다.
그는 기업들이 배당성향을 60% 선까지 끌어올릴 경우 우선주 배당수익률이 두 자릿수로 뛰면서 가격 괴리율이 자연스레 20%대 이하로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불필요한 현금을 내부에 쌓아두지 말고 과감히 주주 환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장에서도 점진적인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주요 상장사에 우선주 매입을 촉구하는 주주서한을 발송하며 '우선주 리레이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업 측에서도 미래에셋증권과 BYC가 자사주 매입 재원의 상당 부분을 우선주에 배정했고, 현대차도 보통주와 우선주의 균형 매입 방침을 공식화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향후 이사회에서 우선주 매입 비중을 전향적으로 확대한다면 국내 상장사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결국 다른 기업 이사회도 '왜 더 싼 주식을 사서 소각하지 않느냐'는 주주들의 합리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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