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정부 출범 15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라인 개편 폭이 예상보다 커졌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김 실장은 이재명 정부가 단행한 첫 개각에서 유임됐다.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면서도 청와대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는 그대로 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 대통령이 부동산과 세제 정책을 둘러싼 민심 악화를 의식해 장관은 바꾸되 정책 기조는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김 실장이 지난달 31일 사의를 표명하고 이 대통령이 1일 이를 수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교체에 이어 김 실장까지 물러나면서 이번 인사는 사실상 경제라인 전반의 쇄신으로 확대된 셈이다.
김 실장의 사퇴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당초 김 실장은 이번 개각을 앞두고도 교체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출범 이후 한미 통상협상과 3대 메가프로젝트, AI·반도체 투자 등 굵직한 경제정책을 주도했고, 이 대통령의 신임도 여전히 두텁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야권이 지속적으로 부동산과 세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거론하며 김 실장의 책임론을 제기했음에도, 지난달 30일 발표된 개각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김 실장의 사퇴를 단순한 문책성 인사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우선 김 실장이 이번 개각을 계기로 스스로 거취를 정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재경부와 국토부 수장이 모두 바뀐 상황에서 자신까지 물러나 새 경제팀에 공간을 열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어서다.
다만 이 대통령이 사의를 하루 만에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최근 경제정책을 둘러싼 민심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실장은 이재명 정부 경제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례적으로 컸다.
정부 출범 초기 경기 회복과 재정 운용은 물론 한미 관세협상, 대미 투자, AI·반도체 산업정책, 부동산과 자본시장까지 사실상 경제정책 전반을 컨트롤했다.
정책실이 단순히 부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을 넘어 정책 설계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 실장은 3대 메가프로젝트 등 대규모 민간투자 전략을 주도했고, 부동산과 세제 문제에서도 여러 차례 직접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그만큼 최근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란의 부담에서도 자유롭기 어려웠다.
특히 부동산은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정부의 가장 큰 부담으로 떠올랐다. 세제 개편을 놓고도 논란이 이어졌고, 증시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 대통령이 이번 개각에서 재경부와 국토부 수장을 동시에 교체한 것도 이런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됐다.
다만 후임 장관으로 각각 이형일 재경부 1차관과 홍지선 국토부 2차관을 승진 발탁했다는 점에서 정책 노선을 크게 틀겠다는 시그널로 읽히진 않았다.
정책을 실제 설계하고 집행해온 차관들을 장관으로 올린 만큼 사람은 바꾸되 큰 방향은 유지한다는 의미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 실장의 사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정책을 폐기하기보다는 경제팀의 책임 주체를 바꾸고 새 진용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개각 당일 오랜만에 직접 부동산 메시지를 내놓으며 공급 확대와 투기 억제, 세제 개편 의지를 재확인한 것도 정책 후퇴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김 실장 역시 사퇴 직전인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렵게 만들어낸 성장의 힘을 바탕으로 국정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와 투자 회복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민생 성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취지였다.
결국 김 실장의 퇴진으로 이 대통령의 경제팀 개편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한 단계 커졌다.
재경부와 국토부 장관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바뀌면서 경제정책에 대한 책임 소재도 보다 분명해졌다. 반면 현직 차관을 장관으로 발탁하고 기존 정책의 큰 틀을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노선 변경보다는 인적 쇄신의 성격이 강하다.
이제 관심은 후임 정책실장에 쏠리고 있다.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기존 경제정책을 잘 아는 인사를 기용할 경우 이번 사퇴는 정책 연속성을 전제로 한 인적 쇄신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로 외부 인사나 색깔이 뚜렷하게 다른 인물을 발탁하면 부동산과 세제 등 주요 경제정책의 조정 폭도 커질 수 있어 김 실장의 퇴진 배경과 함께 후임 인선 주목도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jsjeong@yna.co.kr
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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