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전격 퇴진은 지난달 31일 하루 사이에 결정된 일이 아니었다.
김 실장은 이미 수주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에게 자신의 거취 문제를 꺼내며 국정 운영의 기조 전환과 인적 쇄신 필요성을 진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고 3대 메가프로젝트 등 산업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던 집권 초반을 지나 이제는 물가와 금리, 주거비 부담 등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회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 실장은 약 3주 전부터 이 대통령에게 물러날 뜻을 전달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정책실장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한미 통상 협상과 대미 투자, 3대 메가프로젝트와 부동산 등 주요 현안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들어 즉각적인 교체에는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석들도 몰랐던 극비 사퇴…아침 회의서 처음 고별사
이 때문에 지난 1일 아침 김 실장의 사퇴는 청와대 내부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실장의 거취를 사전에 알고 있던 인사는 이 대통령과 강훈식 비서실장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후문이다.
강 실장이 주재한 현안점검회의가 시작될 때까지도 상당수 수석과 비서관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김 실장이 회의 말미에 직접 고별 인사를 한 뒤에야 사퇴 사실이 전해지며 참모진들 사이에서도 당혹감이 확산했다.
더욱이 김 실장은 이번주까지 정책 회의와 현장 방문 일정을 잡아놓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 스케줄을 조율해 정책실 내에서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 대통령이 김 실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미 통상 협상과 대미 투자, 중동발 경제 불안, 3대 메가프로젝트 등 굵직한 경제 현안을 김 실장이 직접 챙겨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 실장의 거취 고민은 최근 여권 안팎의 책임론이 커지면서 보다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논란을 놓고 김 실장을 공격한 데 이어 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책임론이 제기됐다. 부동산과 세제 정책을 둘러싼 비판 역시 이어졌다.
김 실장의 퇴진은 개별 정책 논란에 일일이 맞서기보다 지지율 하락을 계기로 여권 내부의 정무적 갈등이 정책 책임 공방으로 번지는 상황을 더 우려한데 대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 실장은 내부의 책임 떠넘기기가 외부로 표출되면 국정 운영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주변에 밝혀왔다고 한다. 지지율이 30%대로 내려갈 경우 정책라인뿐 아니라 정무라인까지 포함한 보다 폭넓은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뜻도 전달했다는 전언이다.
◇李대통령, 처음엔 만류…"기조 바꿀 사회정책 필요"로 설득
이 대통령은 당초 김 실장의 사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정책실장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한미 통상협상 후속 조치와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 반도체·피지컬 인공지능(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부동산 시장 안정까지 현안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실장 역시 이런 업무 공백을 의식해 대통령과 자신의 거취뿐 아니라 후임 인선과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을 함께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은 후임자의 경력보다 앞으로 정책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집권 초반 성장률 회복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실장은 "경제 성장률은 어느 정도 올랐으니 이제 물가와 금리, 집값 상승으로 부담이 커지는 서민들을 위한 창의적인 사회 정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3대 메가프로젝트 역시 기획과 투자계획 수립을 넘어 실제 집행 단계로 접어드는 만큼 대규모 산업정책에 상응하는 사회 프로그램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성장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던 첫 단계에서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고 생활비 부담과 양극화를 어떻게 줄일지를 고민하는 다음 단계로 국정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신이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새로운 정책 방향에 맞는 사람이 정책실을 이끄는 것이 오히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실장의 퇴진은 특정 정책 실패에 따른 단순한 경질이라기보단 지지율 하락과 여권 내부의 책임 공방 속에서 김 실장 스스로 인적 쇄신을 국정 기조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해 이를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성격이 강하다"고 전했다.
한편 김 실장은 전일 청와대 내 참모진들과 정책실 식구들에게 각각 별도의 고별 인사를 전했다.
특히 김 실장은 정책실 식구들에게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우고 다음 사람들이 또 자기 몫을 해나갈 때"라며 "여러분이 만들어갈 일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김용범 정책실장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문체부·국가유산청 등에 대한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6.8.5 superdoo8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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