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선제적 대응'이라는 말이 유독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수요측 물가 압력을 이유로 관례를 깨고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린다는 설명은, 발생하지도 않은 위험을 왜 지금 잡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가가 아니라 부동산·가계신용 쪽에 상황을 대입해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에 이어 8월 다시 기준금리를 올렸다. 신 총재는 금통위 회견에서 스스로 "두 번 연거푸 올림으로써 상당히 관례에서 벗어난 그런 조치였다"고 인정했다.
명분은 물가였다. 회견 초반 그는 세 갈래(물가와 성장·환율·금융안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가 오름세에 대한 판단이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회견 곳곳을 뜯어보면, 실제로 관례를 깨게 만든 방아쇠는 물가가 아니라 금융취약성지수(FVI)였다는 정황이 엿보인다.
한은은 이번에 근원물가 전망을 5월 2.4%에서 2.5%로, 0.1%포인트 올려잡았다.
이유는 "소득 여건 개선에 따른 수요측 압력이 예상보다 커지면서"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 수요측 압력은 아직 관측된 게 아니라 '예상'이다.
신 총재도 직접 인정했다. 반도체 기업 수익이 가계 소비로 흘러가는 경로를 미시데이터로 검증했다면서도 "아직도 이게 이른 단계여서 저희가 측정하면 지금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했다.
통계적으로는 유효하지만 크기는 작다는 얘기다. 헤드라인 물가 전망치는 2.7%·2.3%로 5월과 같았다.
즉 물가 쪽에서 실제로 바뀐 숫자는 근원물가 0.1%포인트가 전부이고, 그마저도 아직 데이터로 확인되지 않은 전망의 상향 조정이다.
물가 우려 자체가 허구였다는 뜻은 아니다. 성장 전망은 5월 대비 대폭 올랐다. 올해 3.3%, 내년 2.9%로, 2% 수준으로 추정되던 잠재성장률을 2년 연속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신 총재는 이런 강한 성장세와 소득 개선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물가 오름세의 폭이 보다 광범위해지고 장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를 분명히 했다.
반도체발 성장 서프라이즈가 물가 압력과 자산시장 과열을 동시에 밀어올리고 있는 셈이어서, 두 리스크는 애초에 완전히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
다만 두 리스크가 백투백이라는 이례적 강도의 조처를 정당화하는 무게는 같지 않았다. 이번 회견에서 신 총재는 FVI 수치를 이례적으로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현재 46.5로 장기평균과 거의 같은 수준인데 이는 수치가 가파르게 오른 탓으로, 9월 발표될 금융안정보고서에서는 장기평균을 넘어설 것이라고 못 박았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을 100으로 놓고, 글로벌 금융위기 79.5, 레고랜드 사태 직전 65, 2024년 1분기 저점 37.6이었다.
이 궤적을 총재가 직접 순서대로 짚어가며 설명한 것 자체가 이번 회견의 이례적인 대목이다. 지난달 통방까지는 "금융안정 리스크에 유의하겠다"는 원론적 언급에 그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는 이달에 나오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는 이 수치가 장기평균을 초과할 것으로 나온다면서 "상당히 깊은 우려로 보고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수도권 집값이 여전히 두 자릿수로 오르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이런 면에서는 앞으로의 금융시장과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이런 것에 대해서 저희는 이번에 무게를 많이 뒀다"라고 답했다.
수치가 높아질수록 금융스트레스에 대한 여지가 높다면서 앞으로의 금융 스트레스를 통한 실물경제의 여파와도 연결 지었다.
물가와 금융안정을 같은 저울에 놓고 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신 총재는 잭슨홀 현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물가는 호미로 막지 못하면 가래라도 좀 비용을 들여서라도 이제 잡을 수는 있다. 볼커 의장이 했던 것처럼 금리 20%씩 끌어올리고 경기 침체 불러오고 해서 이제 잡을 수는 있는데, 취약성 지수가 올라가면은 이거는 바늘 가지고 터뜨리는 것이다. 근데 이 터뜨리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호미로 아예 막지 못하면은 나중에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 수도권 집값과 가계대출 증가세가 그 초입에 있다고 본다면, 이번 백투백 인상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기보다 아직 손쓸 수 있을 때 부동산발 리스크를 미리 막겠다는 조치에 가깝다.
신 총재는 금통위 회견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취약지수가 내려간다"며 "신용증가율이라든가 레버리지 같은 지표들이 위험선호 채널을 통해서 축소된다"고 했다.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 정책이 "상호보완적"이고 "서로의 촉매제"라는 표현도 썼다.
금리 인상이 물가뿐 아니라 FVI, 그리고 그 FVI를 밀어 올리는 부동산·가계부채를 직접 겨냥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결국 물가 우려가 근거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관례를 깨면서까지 서둘러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아직 관측되지 않은 물가 압력보다 이미 눈에 보이게 뛰고 있는 수도권 집값과 가계신용 쪽이 훨씬 설득력 있는 답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잭슨홀 정책 심포지엄에서 기자들과 만나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8.30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신 총재가 반복해서 꺼낸 "호미와 바늘"의 비유는 물가보다 부동산 쪽에 훨씬 절박하게 들어맞는다. 그가 잭슨홀에서 든 근거는 추상적인 우려가 아니라 반복돼온 역사적 패턴이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큰 위기 때는 항상 취약성 지수가 높아졌는데, 그때 중앙은행이 '이게 위험하다' 해서 금리를 끌어올림으로써 거품이 터졌다"고 했다. 거품을 방치하다 뒤늦게 알아채고 세게 금리를 끌어올리는 순간, 그 대응 자체가 거품을 터뜨리는 방아쇠가 돼버린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취약성 지수가 너무 커지면 부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살얼음을 걷는 셈"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아직 손쓸 수 있을 때, 즉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미리 눌러줘야 한다는 게 이번 백투백 인상에 깔린 논리다.
신 총재는 FVI가 이미 장기평균에 근접했지만 "레고랜드 사태 직전보다는 훨씬 낫다"며 "아직까지는 호미를 쓸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최근 수도권 집값이 두 자릿수로 오르고 가계부채와 광의유동성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속도를 지켜보면, 그 여지가 오래 남아있지 않다고 본 셈이다.
관례를 깬 이례적 조치였지만, 뒤늦게 더 크고 파괴적인 조치를 써야 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선제적 예방에 가까웠던 것이다. (경제부 시장팀장)
smjeong@yna.co.kr
정선미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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