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조이는 가운데 정부는 내년 지출을 크게 늘린 820조9천억원 규모의 예산안을 편성했다.
겉으로만 보면 한은은 '브레이크'를 밟는데 정부는 재정으로 '액셀'을 밟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의 정책조합을 단순히 통화 긴축과 재정 확장의 충돌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금리 인상은 금융안정을 위해 경제 전체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수단인 반면, 재정은 고금리로 충격을 받는 취약계층을 선별 지원하고 미래 성장산업에 투자하는 정책 수단이라는 논리다.
즉 한은은 총량을 조이고, 정부는 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집중되는 영역과 성장잠재력 확충이 필요한 분야를 골라 재정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유동성 조이고…재정은 '고금리 약한 고리' 지원
류덕현 청와대 재정기획보좌관은 2일 CBS라디오 '박성태 뉴스쇼'에 출연해 통화정책은 긴축으로 가는데 재정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렇게 쉽게 도식화하면 그렇다"면서도 현재 경제 상황에서는 두 정책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시중 유동성 확대에 따른 금융안정 위험 등을 고려한 조치지만 금리 인상의 충격은 경제주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부채가 많은 취약계층은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류 보좌관은 "고금리나 금리 인상에 의해서 고통받는,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나 부문이 있다"며 "그 부분은 사실은 재정에서 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정책은 어떤 계층을 정해서 타깃을 정해서 하는 데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기준금리는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일률적인 정책수단인 만큼 금리 인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층·부문별 충격을 재정이 보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전날 국무회의에서 "금리 상승은 피할 수 없다"며 금리 상승에 따른 취약계층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성장잠재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재정이 정교한 역할 분담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93조원가량 늘리면서도 이를 전통적인 의미의 경기부양성 확장재정과 구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류 보좌관은 "관리재정수지가 내년에는 적자가 0.1%"라며 "거의 균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대응기금에 들어가는 재원을 모두 즉시 지출하는 구조가 아닌 만큼 지출 규모 증가만 놓고 재정이 과도하게 팽창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금리 올라도 성장투자는 계속…'정책조합' 실험
재정의 또 다른 역할은 성장잠재력 확충이다.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미래산업에 필요한 투자는 정부가 이어가 잠재성장률 하락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반도체와 피지컬 인공지능(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를 비롯해 7대 시드 산업 관련 연구개발(R&D)과 산업화 지원을 대거 반영했다.
류 보좌관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며 "지금 1%에서 0%로 떨어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로서는 금리 상승기에 재정까지 함께 조이면 당장의 경기뿐 아니라 중장기 성장잠재력까지 약화할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재원 측면에서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류 보좌관은 내년도 법인세가 2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AI 산업 호황에 따른 반도체 특수가 세수 증가의 가장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도 전체 국세수입도 58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모두 즉시 지출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호황이 끝나 세수가 다시 줄어들 경우 일시에 늘린 지출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162조3천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하면서 이 가운데 내년 약 45조원만 예산에 반영하고 100조원이 넘는 재원을 일종의 '저수지'로 남겨두는 이유다.
류 보좌관은 "말 그대로 미래를 대응하기 위해서 준비하기 위해서 재정의 저수지를 조금 일시적으로 담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잘 쓰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더 (사업적) 수요가 있을 거다. 갑자기 늘어나는 재정 수요가 있을 텐데 그런 것도 하려다 보면 필요한 데 써야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고채 발행 역시 세수가 늘었다고 해서 급격하게 축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내년에 필요한 순국고채 발행 규모는 상당폭 줄이면서도 국채시장의 안정적인 규모와 발행 연속성을 위해 일정 수준의 공급은 유지할 계획이다.
류 보좌관은 "내년에 예산 편성을 할 때도 필요한 순 국고채에 대한 발행 부분을 상당히 줄여 안정화시켰다"며 "올해 경제가 좋고 내년도 국가채무 비율도 굉장히 많이 떨어지는 좋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재정 건전성도 굉장히 강화시키는,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재정의 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그리고 있는 정책조합은 한은이 금리를 올려 유동성과 금융 불균형을 관리하는 동안 재정은 성장산업에 투자하고 고금리 피해가 집중되는 계층을 지원하는 구조인 셈이다.
관건은 재정의 규모보다 구성이다.
금리 상승기에 재정이 광범위한 소비 진작이나 이전지출로 흘러간다면 총수요를 다시 자극해 한은의 긴축 효과를 약화시키고 추가적인 금리 인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반대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미래 투자와 금리 상승에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지출을 집중한다면 통화 긴축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성장잠재력을 방어하는 정책조합도 가능하다.
류 보좌관은 "고금리나 금리 인상에 의해서 고통받는,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나 부문은 재정에서 해야 될 부분이 있다"며 "현재 경제 상황이나 우리가 나아가야 할 경제 스텝 한 단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필요한 재정 소요가 있는 만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반드시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비판은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류덕현 재정기획보좌관이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9.4 xyz@yna.co.kr
jsjeong@yna.co.kr
정지서
jsjeong@yna.co.kr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