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미디어텍 CB에 35억달러 투자
AI 생태계 리더십 지키는 '공세적 방어'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엔비디아가 대만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전환사채 발행에 참여했다. 대만 반도체 설계회사 미디어텍이 찍은 39억달러(약5조3천억원) 규모의 채권 중 대부분을 사들였다. 엔비디아가 위협으로 여기는 빅테크 AI 칩을 설계하는 회사에 투자하고, 타사 칩까지 생태계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공세적 방어'를 꾀했다.
◇ 경쟁 칩 설계회사 투자로 AI 패권 굳히기
3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난달 31일 미디어텍이 발행한 39억달러 규모 전환사채(CB) 중 35억달러어치를 매입했다. 이번 투자는 엔비디아가 미국 밖에서 단행한 직접 투자 중 최대 규모다. 엔비디아가 제로쿠폰(이자율 0%)으로 발행된 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처음으로 대만 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하게 된다.
엔비디아 측은 미디어텍 전환사채 투자와 관련해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10년을 바라보는 전략적 투자라고 설명했다. AI 퍼스널 컴퓨터용 칩 등을 함께 개발해온 미디어텍과의 관계를 '기술 파트너'에서 피를 섞은 '자본 혈맹'으로 격상한 셈이다.
엔비디아의 노림수는 '적과의 연결'이다. 엔비디아는 자체적으로 AI 칩을 개발하려는 빅테크를 불편하게 여긴다. 이런 빅테크를 지원하는 게 미디어텍 같은 팹리스로, 이들은 빅테크에게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체할 주문형 반도체(ASIC)를 설계해준다. 만약 엔비디아가 빅테크 칩을 자사 중앙처리장치(CPU) 등 여러 칩으로 구성된 자체 서버에 포획하면 빅테크의 탈(脫)엔비디아를 막아낼 수 있다.
실제로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자체적인 AI 칩 개발을 통해 엔비디아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는 중이다. 이번 미디어텍 전환사채 발행에 참여한 구글의 경우 미디어텍과 파트너십을 맺은 바 있다. 빅테크는 미디어텍 외에도 브로드컴·마벨 등 팹리스와 손잡고 주문형 반도체(ASIC)를 개발하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는 개방형 통신규격인 'NVLink Fusion'을 활용해 '적의 지원군'인 미디어텍을 껴안기로 했다. 미디어텍이 엔비디아 칩들과 통신가능한 빅테크 AI 칩을 개발하도록 문을 열어준 셈이다. 이로써 엔비디아는 칩 대 칩으로 경쟁하는 대신 NVLink라는 통신규격을 표준으로 굳히고, AI 생태계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아마존이 자체 AI 칩 '트레이니엄'을 엔비디아의 'NVLink'와 결합하기로 한 게 하나의 사례다.
◇ 대만 반도체, 엔비디아 손잡고 도약하나
미디어텍은 엔비디아와의 '자본 혈맹'을 성장의 지렛대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칩 하나하나를 설계하던 회사였던 미디어텍이 랙(서버를 쌓은 구조물) 구성까지 관여하는 플랫폼 조성자로 거듭나게 됐다. AI 생태계 패권자인 엔비디아와 한결 밀착한 미디어텍이 더 많은 ASIC 사업 기회를 확보할 것으로 분석된다.
주식시장도 엔비디아 투자를 받은 미디어텍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연합인포맥스 종목현재가(화면번호 7219)에 따르면 미디어텍 주가는 지난 1일 대만 증시에서 10%가량 폭등했다. 작년 말 이후로는 200% 치솟았다.
미디어텍은 엔비디아와의 사업 범위를 AI 데이터센터용 서버를 넘어 엣지 AI·자율주행차로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고성능 AI가 데이터센터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퍼스널 컴퓨터·자동차에서도 돌아가는 시대를 열어가려는 것이다.
이번 전환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용처는 ASIC 연구개발 등으로, 자금 일부가 대만 반도체 산업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서비스업체 유애널리시스는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대만 반도체 설계 산업은 글로벌 AI 공급망에서 단순한 부품 공급업체를 넘어 플랫폼 수준의 공동 설계자로 발돋움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ytseo@yna.co.kr
서영태
yt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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