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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의 어프로치] KB는 양종희 회장 연임이 왜 중요한가

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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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KB금융지주에는 큰 사건이 벌어진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둘러싸고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정면충돌한 이른바 'KB사태'다. 주전산시스템을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 체제로 바꾸는 사업을 진행 중인 과정에서 당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이 부딪혔고, 내밀한 정보가 외부로 적나라하게 유출되면서 금융권은 큰 충격에 빠진다. 결국 회장과 행장이 모두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됐고, 당국 중징계 이후 이사회 해임 및 자진사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국내 금융지주사의 후진적 실상과 지배구조 한계를 보여준 슬픈 예다.

재건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KB금융을 다시 일으킨 건 정부도, 금융당국도, 금융시스템도 아닌 윤종규 회장이다. 윤 회장은 KB사태 이후 뽑은 새 회장이라는 무게감에 짓눌려 고통받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만신창이인 KB금융을 소생시키기 위해 그는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했다. 우선 '리딩금융그룹, 1등 KB'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윤 회장은 경영에서도 그가 세운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는 만들지 않으려 했다. 특히 지배구조 치유를 위해 회장과 행장을 겸직하며 갈등이 부각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단단한 경영승계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차기 회장 롱리스트를 만들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사외이사 임기를 5년으로 제한하는 등 현재 KB 지배구조 근간이 윤 회장때 만들어졌다. 금융지주 설립 이후 늘 외풍에 휘둘렸던 가슴 아픈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윤 회장은 9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KB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윤 회장이 꼬박 9년 간 공을 들였기에 파벌싸움이 사라졌고, 증권·보험사 라인업을 갖춘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초격차 리딩금융그룹으로 우뚝 섰다.

물론 성공적인 경영이 반드시 회장의 임기와 정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주인없는 회사인 금융지주는 좀 다르다. 회장 임기 만료가 다가올 때마다 안팎에서 지배구조를 흔들었고 정부의 입김에 버티지 못해 연임에 도전했다 갑자기 아름다운 퇴장으로 돌변해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서 익명의 외부 후보자가 등장하면 혹여 위에서 찍어 내린 낙하산 인사가 아닐까 하는 우려는 지금도 존재한다.

만약 윤 회장이 연임에 실패해 3년 만에 물러났다면 지금의 KB가 존재할까.

KB금융은 다른 지주보다 유독 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이 교체될 때마다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국민·주택은행 등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진 합병체이다 보니 관치금융의 타깃이 됐다. 2008년 KB금융지주 출범 직후 강정원 행장과 황영기 회장의 불협화음과 뒤이은 불명예 퇴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이사회와의 갈등을 촉발한 어윤대 회장, KB사태의 주인공인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까지 KB는 수장들의 잇따른 낙마와 그 자리를 꿰찬 낙하산 인사의 역사였다. 윤 회장 이전 중도 낙마 없이 온전히 연임에 성공한 지주 회장과 행장이 없다는 점은 KB 지배구조의 민낯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KB금융은 윤 회장 9년 이후 지배구조가 완전히 치유된 것인가.

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오는 11일 양종희 현 회장과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전 국민은행장),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최종 후보자 한 명을 결정한다. 양 회장의 임기는 11월 20일까지다. 금융권에선 실적과 주주환원 성과 등을 감안할 때 양 회장의 연임에 무게를 싣고 있다. KB금융은 양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24년 금융지주 최초 당기순익 '5조 클럽'에 입성한 데 이어 작년과 올 상반기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리딩금융 자리를 지키고 있다. KB금융 주가는 5만원대에서 전일 종가 기준 17만5천900원까지 3배 이상 뛰었다.

양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처음부터 무게가 실렸던 건 아니다. 윤 회장이 4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물러나고 후임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온갖 입김을 불어 넣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누가 되더라도 10년 만에 맞는 지배구조 변화에 불안함은 덤이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20년 넘은 상업·한일은행 출신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서 언제든지 과거 망령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존재했다. 양 회장 취임 이후에도 한동안은 전임 회장과 비교되며 '잘해도 본전'이란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지난 9년간의 황금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경계하는 시선이 따가웠을 것이다.

양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KB금융은 두 회장이 연속 연임에 성공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게 된다. 지배구조 연속성은 KB금융에는 남다른 의미다. 양 회장의 연임은 KB금융의 아킬레스건이었던 지배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시장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교체 압박을 받고, 그러기에 더욱 자리에 집착하고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예측가능한 경영으로 주주들에게 신뢰받는 리딩그룹다운 면모를 완전히 갖출 기회가 될 것이다.

양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3년은 윤 회장의 9년, 그리고 앞선 첫 임기보다도 더 중요하다. 전임 회장이 그래왔듯 훌륭한 후배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일찌감치 후계자 양성에 돌입해 탄탄한 지배구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양 회장만의 색깔이 드러나야 하며,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고 촘촘하게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향후 외부 출신이 회장이 된다하더라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끔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양 회장이 새로 시작할 3년이 그리 길지만은 않다. 그 바로미터가 올 연말 은행장을 포함한 계열사 대표 인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에 몸살을 앓는 풍전등화 같은 시절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금융부장)

hjlee@yna.co.kr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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