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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촬영 이세원]
(서울=연합인포맥스) 삼성증권이 9년 만에 숙원을 풀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정례회의에서 삼성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를 의결했다. 2017년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이후 9년 만이다. 대주주 적격성 문제와 내부통제 관련 제재 등에 발목이 잡혔던 삼성증권은 이제 국내 8번째 발행어음 사업자가 됐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 신용으로 발행하는 만기 1년 이내 금융상품이다. 인가받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6월 말 기준 삼성증권의 자기자본이 약 8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 최대 16조원의 새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평가가 많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은 지나치게 은행에 의존해왔다는 점이 한계였기 때문이다.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담보와 신용이 부족한 기업들에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정부가 제도를 바꿔 증권사에 대규모 자금조달 수단을 열어준 것도 기업에 위험자본을 공급하는 진짜 투자은행(IB)으로 크라는 뜻이었다. 정부가 발행어음에 다시 힘을 싣는 이유도 이 지점이다.
문제는 돈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에게 발행어음은 은행 예금과 꽤 비슷해 보인다. 일정 기간 돈을 맡기고 약정한 금리만큼 원리금을 받는다. 그러나 예금은 아니다. 예금자보호 대상도 아니다. 증권사의 신용으로 원리금을 지급하는 금융투자상품이다. 여기서 발행어음의 묘한 이중성이 시작된다.
은행은 짧게 돈을 받아 길게 빌려준다. 이른바 '만기 변환'이다. 그래서 유동성과 자본에 대한 촘촘한 규제가 따라붙는다. 발행어음도 구조는 닮아 있다. 증권사는 1년 이내의 어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기업대출과 회사채, 비상장기업 투자 등에 운용한다. 평상시에는 훌륭한 사업이다. 낮은 비용으로 조달해 더 높은 수익률의 자산에 투자하면 증권사는 수익을 얻고, 투자자는 예금보다 매력적인 금리를 받으며, 기업은 새로운 자금줄을 확보하는 선순환이 형성된다.
하지만 사업자가 늘면 경쟁은 결국 금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후발주자는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기존 사업자는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응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경쟁이지만, 증권사는 조달비용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
결국 증권사는 더 큰 수익을 내야 하는 압박에 노출된다.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자산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증권사들의 기업금융이 혁신기업 투자로 이어진다면 정책이 바라던 모습이다. 하지만 수익률 경쟁이 심해질수록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이미 증권사의 유동성 문제가 얼마나 빠르게 금융시장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 있는 지를 경험해왔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시장이 얼어붙자 증권사의 자금조달 문제가 금융시장 전반의 신용경색으로 확산했다. 단기로 조달한 돈을 장기의 비유동성 자산에 넣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보여준 사례였다.
물론 발행어음 자체가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 금융이 은행 중심에서 자본시장 중심으로 이동하려면 증권사의 기업금융 기능은 더 커져야 한다. 돈이 부동산 담보대출에서 벗어나 혁신기업과 성장기업에 흘러드는 것은 '생산적 금융'의 본질이기도 하다.
발행어음 시장은 더 커져야 한다. 은행 대출과 부동산으로 쏠린 돈을 기업과 자본시장으로 돌리려면 대형 증권사의 제대로 된 IB 역할이 필요하다.
증권사에 대한 질문도 바꿔야 한다. 얼마나 많이 발행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투자했는가. 얼마나 높은 금리를 줬느냐가 아니라 그 금리를 만들기 위해 얼마만큼의 위험을 떠안았는가. 시장이 흔들렸을 때 투자자에게 돌려줄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삼성증권까지 진입하면서 발행어음 시장은 새 국면에 들어섰다. 여덟 곳의 대형 증권사가 은행 예금과 경쟁하며 수십조원의 돈을 끌어모으고 그 돈을 기업에 공급한다. 자본시장으로서는 반가운 성장이다.
다만 권한이 커지면 책임도 커진다. 증권사가 은행처럼 돈을 모으는 시대라면 그 돈을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대한 시장과 감독당국의 눈높이도 달라져야 한다. 은행이 아닌 증권사가 은행에 가까운 자금중개 기능을 갖는 것이 발행어음이라는 제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증권사는 어디까지 은행이 되어도 될까. 어쩌면 답은 간단하다. 은행처럼 돈을 모을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이 떠안은 리스크도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발행어음 시장의 진짜 경쟁은 금리가 아닌 리스크 관리 능력에서 시작돼야 한다. (증권부 정원 차장)
jwon@yna.co.kr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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