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제공]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알파보다는 베타를 추구하려 한다"
이는 이규홍 신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지난 2019년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의 투자 사령탑에 오른 직후 밝힌 운용 철학이다.
개별 투자에서 시장을 뛰어넘는 초과수익, 이른바 '알파'를 좇기보다 자산배분과 분산투자를 통해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 그는 투자 이후가 아닌 투자 이전의 리스크 관리를 강조하며 "자산배분 다각화를 통해 단단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도 전했다.
7년이 지나 현재 이 CIO 손에 맡겨진 돈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14일 이 전 사학연금 CIO를 신임 기금운용본부장에 임명했다.
이에 따라 이 CIO는 15일부터 2년간 국민연금의 투자 사령탑을 맡게 된다. 직무수행 실적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올해 6월 말 국민연금 적립금은 1천865조6천억원에 달한다.
이 CIO가 사학연금에 처음 부임했을 당시 운용자산이 16조원 안팎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00배가 넘는 자산을 책임지게 된 셈이다.
◇주식 애널리스트에서 연기금 CIO까지…'멀티에셋' 경력
이 CIO의 경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특정 자산군에 갇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1966년생인 그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MBA를 받았다.
삼성생명과 삼성투자신탁운용에서 애널리스트로 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뒤 CLSA증권과 SG증권 등 외국계 증권사도 거쳤다.
이후 동부투자신탁운용과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을 거쳐 NH아문디자산운용 CIO를 맡으면서 주식 뿐 아니라 채권 등 전통자산 전반으로 운용 영역을 넓혔다.
여기에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아쎈다스자산운용 대표를 거치며 대체투자 경험을 쌓았고, 2019년 사학연금 CIO에 오르면서 장기 자산배분과 리스크 관리까지 맡았다.
주식 리서치에서 시작해 전통자산과 부동산, 공적연금으로 영역을 확장한 '멀티에셋형 CIO'인 셈이다.
국민연금이 그를 선택한 배경에서도 이러한 경력은 강점으로 꼽힌다.
국민연금 정도의 초대형 기금에서는 좋은 종목이나 개별 투자처를 골라내는 것만으로 성과를 좌우하기 어렵다.
국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인프라, 사모투자 등 서로 다른 자산을 어떻게 배분하고 시장 환경에 따라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지가 장기 수익률을 좌우한다.
◇3년 연속 11%대 수익률…그보다 눈에 띈 '체질 개선'
앞서 사학연금에서 받아 든 성적표는 준수했다.
사학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2019년 11.15%, 2020년 11.49%, 2021년 11.95%로 3년 연속 11%대를 기록했다.
특히 2021년에는 2조4천738억원의 운용수익을 내 당시 공단 창립 이후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해외 대체투자가 34.26%, 해외주식이 27.12%, 국내 대체투자가 15.77%의 수익률을 달성하며 성과를 뒷받침했다.
다만 이 CIO의 사학연금 시절을 단순히 높은 수익률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 장세가 2019~2021년 위험자산 가격을 끌어올렸고, 글로벌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하락한 2022년에는 사학연금 또한 마이너스 수익률을 피하지 못했다.
시장이라는 '베타'를 중시하는 투자철학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경험한 셈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포인트는 포트폴리오의 체질을 바꾸려 했던 그의 시도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국내주식 비중을 장기적으로 줄이고 해외·대체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22%를 웃돌던 국내주식 비중을 중장기적으로 17%대로 낮추고 해외 대체투자는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미국과 유럽 연기금 등과 공동투자 체계를 구축해 해외투자 역량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해외주식에서는 일부 직접운용을 도입했고, 대체투자는 특정 지역과 자산, 투자 시점에 자금이 집중되지 않도록 관리 체계를 손봤다.
투자전략실에 기금관리팀을 신설하는 등 백오피스도 강화했다.
최초 2년이던 임기를 두 차례 연장해 사학연금을 총 4년간 이끌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상대적으로 임기가 짧은 공적연금 CIO 자리에서 운용성과뿐 아니라 조직관리 능력까지 일정 부분 검증받았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1천866조의 역설…이젠 '시장'까지 운용해야
국민연금에서 맞닥뜨릴 시험대는 사학연금과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1천866조원이라는 규모 자체가 새로운 리스크다.
국민연금은 이제 시장 가격을 받아들이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다. 국내주식을 대규모로 사고팔면 증시에 영향을 미치고, 해외투자를 위해 대규모 달러를 조달하면 외환시장도 움직일 수 있다.
좋은 자산을 골라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것만으로 CIO의 임무가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투자수익을 높이면서도 국민연금 자신의 거래가 주식·채권·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키우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뿐 아니라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투자자 자체가 만들어내는 '시장 충격'까지 계산해야 한다.
이 CIO가 사학연금에서 강조했던 '베타'의 의미가 향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16조원 규모의 기금에서는 시장을 따라가며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베타였다면, 1천866조원의 국민연금은 자신이 곧 시장의 일부가 된다.
과거 그가 국내 편중을 낮추고 해외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분산투자를 추구했는데, 이제는 국민연금 해외투자 확대가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과 환위험까지 동시에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투자 결정과 공적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도 숙제다.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률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기금 본연의 목적을 지키면서 국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도 그의 운용 대상이다.
세계 주요 연기금 및 글로벌 운용사와 경쟁하려면 좋은 투자처만큼 이를 찾아낼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 운용사부터 외국계 금융사, 부동산 운용사와 공적연금까지 거친 이 CIO의 경험이 국민연금 내부의 운용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어떻게 활용될 지도 관심사다.
결국 이 CIO가 국민연금에서 받아들 진짜 성적표는 단기 수익률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자산이 오를지를 맞히는 것보다 자산배분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1천866조원의 몸집에서 발생하는 시장 충격을 어떻게 줄였는지, 글로벌 투자 역량과 조직을 얼마나 강화했는지가 그의 임기를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한 운용사 대표는 "알파보다 베타를 이야기했던 투자 철학이 큰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며 "국민의 노후, 정부의 정책 등과 직결된 국민연금에 시장까지 흔들지 않는 단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을지가 앞으로 2년간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jwon@yna.co.kr
정원
jwon@yna.co.kr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