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지주 자회사 CEO 승계절차 미흡" 작심 발언
연말 인사 앞두고 시스템 정비 불가피
(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허동규 기자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금융지주들을 향해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승계 과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하면서 지주 회장과 이사회가 사실상 자회사 CEO를 결정해온 오랜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올 연말 5대 시중은행장을 비롯해 금융그룹 계열사 대표 임기가 대거 만료되는 것과 맞물려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지주 회장 힘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연말 인사철 앞두고 선제적 '경고'…회장 힘빼기
16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임원 회의에서 "대부분의 지주회사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의 역할이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금융지주가 후보군 선정과 검증 및 평가, 기록 등 일련의 CEO 승계절차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연말 자회사 CEO 인사를 앞둔 금융지주들에 '작심 경고'를 한 것으로 해석한다. 당국이 CEO 선임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고 추후 점검도 할 계획이니 선제적으로 알아서 잘하라는 일종의 압박이란 것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일단 지난 2023년 발표된 지배구조 모범관행 내용을 바탕으로 구두 지도에 나선 것으로도 풀이된다. 금융지주들이 통상 9월부터 자추위 가동을 본격화하는 만큼, 지금 메시지를 내지 않으면 때를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이 확정되는 등 인사 시즌에 들어서는 분위기다. 올해는 5대 은행장을 포함해 5대 금융지주 계열사 CEO의 80%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인사 폭이 클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감원의 검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금융지주의 지배구조상 미흡한 부분에 대해 꾸준히 개선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당국은 다수의 금융지주가 후보 압축 단계별 최소 검증 기간을 두지 않거나 CEO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등 승계절차에 하자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형식적인 상시후보군 관리와 불투명한 후보 압축·검증 절차도 개선이 필요한 사례로 꼽는다.
특히 이 원장은 자회사 CEO 선임 과정에 지주 회장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한다는 문제의식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 등 자회사에 임추위가 갖춰져 있지만 지주 자추위가 CEO 후보군 현황을 공유하거나 추천권을 부여한 곳은 극히 드물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 원장은 금융지주 회장이 자회사 CEO에 자기 사람을 많이 심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며 "지주 자추위가 일방적으로 CEO를 내려보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자회사 임추위의 의견을 듣고 서로 정보도 공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등 계열사 이사회는 '들러리'…후보 추천권 부여할까
주요 금융지주 이사회 산하에는 명칭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회사 CEO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하고 후보군을 심의·압축해 최종 후보를 선정해 추천하는 소위원회(자추위)가 있다. 자추위는 자회사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는 역할도 맡는다.
현재 은행 임추위는 지주 자추위가 추천한 CEO 후보자를 주주총회에 추천하고 최종 승인하는 역할에 그치는 구조다. 증권·카드·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 이사회 역시 경영승계 업무를 사실상 지주 자추위에 일임하고 있다.
KB금융에는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신한금융에는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가 있다. 우리금융은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하나금융과 iM금융은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 BNK금융과 JB금융은 자회사CEO후보추천위원회를 각각 두고 있다. 농협금융에도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있다.
8대 금융지주 자추위에는 지주 회장이 전원 위원으로 참여하며, 일부 지주에서는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자회사 이사회가 사외이사 중심으로 구성되고 임추위 과반을 사외이사로 채우는 등 독립성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자회사 CEO 인선 과정에서 지주 회장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최근 분위기를 의식한 듯 KB금융 차기 회장 후보로 낙점된 이재근 부문장은 연말 인사 계획에 대해 "회장이 힘을 갖고 전부 다 하기보단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회장 1명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온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를 깨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부문장은 "특정인의 개인기로 움직이는 조직보단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따라 분권화된 조직, 지속가능한 조직에 방점을 둘 것"이라며 "계열사 CEO 선임은 자추위 등에서 논의하고 결정할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권에서는 연말 대규모 CEO 물갈이를 앞둔 금융지주들이 달라진 모습을 보일지에 주목한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이 확고하게 방향성을 제시한 만큼 지주들이 경쟁적으로 자회사 임추위 힘 키우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 원장이 금융지주에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이라며 "지주들로서는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각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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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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