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수진 기자 = 금융당국이 익명으로 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는 외부 인사를 후보군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단순 사기업이 아닌 공공성이 짙은 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나서는 만큼 당당하게 실명을 공개하고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당국 입장이다.
다만, 외부 후보자의 지원 부담 등을 고려해 모범관행에 명문화하기 보다는 금융지주 자율적으로 익명 후보자를 지양하도록 권고에 나설 계획이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당국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익명을 요구하는 외부 후보를 숏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금융지주 회장 경영 승계 때마다 등장하는 익명 도전이 당국이 추진하는 지배구조 선진화에 반한다는 판단에서다.
당국은 금융권 사외이사 등을 상대로 실시하는 교육 등에서 수차례 이 같은 시각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금융지주와 은행 사외이사 등은 이사회 사무국 등과 이 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일부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들이 내부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경쟁에 임하는 외부 출신 후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데 집중해왔다.
지난 2023년에 마련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경영 승계 절차 기간을 확대해 외부 후보에게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하고, 평가·검증의 객관성과 다양성을 제고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비상근 직위를 부여하거나 역량개발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이사회와의 접촉 기회 등을 제공하라고도 권했다.
최근 차기 회장 후보를 선정한 KB금융을 비롯해 주요 금융지주들의 회장 승계 절차에는 꾸준히 익명의 외부 후보가 등장해왔다. 금융지주들은 당사자가 원할 경우 익명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KB금융이 지난 7월 발표한 1차 숏리스트에는 내부 출신 4명과 외부 후보 2명이 올랐는데, 외부 후보 1명이 익명을 요청해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작년 말 진행된 신한금융과 우리금융 회장 승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한의 경우 차기 회장 후보(4명)에 진옥동 회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선훈 신한투자증권 사장 외에 외부 후보 1명이 포함됐다. 우리금융 숏리스트에도 임종룡 회장과 정진완 우리은행장, 그리고 외부 후보 2명이 올랐다.
이들부터 1년 앞서 진행된 하나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도 외부 후보 2명이 있었다. 두 사람은 함영주 회장과 이승열 부회장, 강성묵 부회장과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이들 모두 최종 후보(KB는 2차 숏리스트)에 선정되지 않아 레이스 종료 때까지는 물론, 지금까지도 실명이 드러나지 않았다. 4대 금융지주 회장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이름은 남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들이 본인 스스로를 공개하지 못하는 사람을 주요 후보로 내세우는데에 매우 부정적"이라며 "금융지주 회장에 나설 정도면 최소한 실명으로 레이스에 참여해 시장과 업계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다만 당국은 익명 후보의 경쟁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을 모범관행에 명문화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금융지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한 조치다. 익명을 보장하지 않으면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의 회장 레이스 참여 자체가 줄어들 거란 우려를 받아들였다. 최근까지도 관련 논의를 이어왔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금융지주들은 좋은 외부 후보를 유치하기 위해선 익명 보장이 필수라는 뜻을 수차례 당국에 전달했다. 금융회사로선 후보 본인이 요청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통상 현직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등으로 재직 중인 사람이 익명을 희망하는데 신분이 노출됐을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 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명을 밝혀야 한다면 후보 자격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대신 지금과 같이 구두 지도를 지속할 계획이다. 가능하면 실명 후보로 숏리스트를 꾸리라고 권고한다. 모범관행에 못 박긴 어렵지만 금융지주들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금융지주 회장 레이스에서 익명 후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라고 강제하긴 어렵다"며 "구두 지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sjyoo@yna.co.kr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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