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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권 칼럼] 중앙은행의 공작새들

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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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표현이 '매파(Hawk)'와 '비둘기파(Dove)'다.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 위원들이 어떤 성향이나 행동 양식을 갖는지를 두고 구분 짓는 말이다. 긴축적인 성향을 가지면 '매파', 완화적인 의견을 표출하면 '비둘기파'로 표현한다. 사실 매파냐 비둘기파냐를 구분하는 것은 정치·외교적 상황에서 시작됐다. 1812년 발발한 미영 전쟁에서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이 적극적인 전쟁을 주장하던 강경파 의원들을 '워 호크'(War Hawks)라고 빗대면서 처음으로 '매파'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확전을 주장하던 강경파를 '매파',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는 온건파를 '비둘기파'로 불렀다.

경제·금융 영역에서 이들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1980년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다. 물가안정을 위한 긴축 필요성과 경기 부양을 위한 완화 정책 필요성을 주장하는 위원들에게 각각 '매파'와 '비둘기파'라고 빗대 불렀다. 실제 1976년 연준 의사록에는 공식적으로 '매파적'(hawkish)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연준에서 이러한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이라는 이중책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연준의 정책목표 때문이다. 긴축을 통해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과 경기부양을 통해 고용 창출과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 맞설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이는 모두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전제로 한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은 물론 민생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독립적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중앙은행의 독립적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경제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주제이기도 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자의 의사를 중앙은행이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일부 존재한다. 과거 영국 중앙은행 초대 통화정책위원회 외부 위원을 지냈던 빌렘 부이터는 중앙은행을 '국가 재정 및 금융 대리인'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유지하더라도 정부 부채와 재정적자를 발권력을 통해 충당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도 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적 기반이 인플레이션을 완화한다는 주장이 실증적으로 검증된 사례(2025년 2월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게재된 '중앙은행의 독립성, 장기 인플레이션, 그리고 지속성이 중요하다' 논문 참고)도 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 경제학자들이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를 기반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커질수록 인플레이션은 감소했다. 선진국의 경우 연간 평균 3.7%포인트(p), 개발도상국은 10.3%p 감소했다. 독립성 지수는 1972년~2023년 155개국 중앙은행 관련 법률을 법제화한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법제화를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할수록 인플레이션 감소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결과인 셈이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동 전쟁 등을 거치면서 공급 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상승의 상시화는 점차 확대되는 국면이다. 다만 단순히 경제적 충격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벌 정치적 불안감이 동반되고, 각국 간 이해관계도 첨예해지고 정부의 재정적 부담 확대도 동시에 맞물리면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에 대한 권력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축인 미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임 연준 의장을 쫓아내기 위한 권력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도를 넘었고, 현직 연준 의장에게는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상승에도 대폭적인 금리 인하 압력을 가한다. 그렇다 보니 글로벌 금융시장은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16일(미국 동부 시간) 열린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례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 7월 이후 처음이다. FOMC 위원들이 제출한 금리 전망을 담은 점도표는 올해 안에 25bp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이번 금리 인상은 사실상 예견됐다. 그렇다 보니 월스트리트에서는 "시장이 연준의 금리 인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연준이 시장의 금리 인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95%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연준이 이를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이변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FOMC가 만장일치로 금리 인상을 결정하고, 추가 인상을 시사하는 전망을 내놓은 것은 어찌 보면 의외의 결과이자 주목할만한 진전이다. 사실 이번 FOMC는 연준이 채권시장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얼마나 해낼 수 있을 것인지보다는 워시 의장의 신뢰도에 대한 검증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워시 의장은 일단 권력자의 압박에 굴복하기보다는 중앙은행의 독립적 의사결정을 택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완화될 조짐은 없다. 오히려 연준이 '반기'를 든 상황에서 더 강력한 압박에 나설 가능성은 농후하다.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목표를 향해 분명하게, 그리고 충분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워시 의장의 발언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피데스 캐피탈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연준이 금리를 올려 사이클을 형성한 것은 여섯번이다. 그런데 금리 인상 사이클에서 연준이 단 한 번만 금리를 올리고 끝낸 경우는 1997년이 유일하다. 나머지 다섯 번의 사이클에서는 최소 6회 이상 금리를 인상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일단 그 기조를 오랫동안 가져갔다는 것이다. 1997년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은 이제 막 문을 열고 시작됐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 문을 열지 못하도록 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7월 FOMC에서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이번에 찬성으로 돌아선 3명(베스 해먹, 로리 로건, 닐 카슈카리)과 워시 의장이 앞으로도 매파적인 입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매파와 비둘기파 말고도 중앙은행 통화정책 위원의 성향을 가리키는 신조어도 있다. 바로 '공작새'다. 일본의 토탄 리서치 대표이자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카토 이즈루가 작명한 용어다. 이즈루는 중앙은행의 공작새를 경제지표나 통화정책 고유의 목표보다는 정치적 존재감이나 언론의 주목에 관심을 두는 성향을 갖는 통화정책 위원을 일컫는다고 했다. 권력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펼치듯이 자극적이고 눈에 띄는 목소리에 집중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는 공작새가 날개를 펴면 중앙은행과 시장 간 소통 채널을 방해하고, 시장의 변동성과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워시 의장과 3명의 위원이 앞으로도 '독립 깃발'을 든 전사가 될 것인지, 단 한 번의 쇼로 무대를 마무리하는 공작새가 될 것인지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선임기자 / 부국장)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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