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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영의 마켓산책] 비관론자가 필요하다

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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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에 아주 괜찮은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 "나는 너무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자 한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은 비행기를 만들고, 부정적인 사람은 낙하산을 만든다"고 답했다 한다.

이렇게 깊고 현명한 말을 하다니. 탄성이 나올 만한 이야기였다.

걱정이 많고, 일이 잘 안풀릴 때를 대비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대체로 어둡다.

하지만 빛이 만드는 그림자에 관한 이야기는 낙관론으로 과도하게 치달을 때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우리 증시가 달려가던 때를 돌아본다.

증권사에서는 연일 코스피 목표 전망치를 7천대, 8천대로 높였고, 급기야 1만대까지 거론됐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면서 앞으로 주가가 50만원대, 400만원대까지 오를 거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상하리만큼 비관론이 없던 시기였다.

반도체 공급 물량 부족과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에 따른 대격변의 시대가 눈앞에 있는 지점에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역량은 더욱 빛났다.

반도체를 잘 만들고, 배도 잘 만들며, 화장품, 전선, 로봇까지 잘 만드는 한국 기업에 대한 기대가 시장 전반에 번졌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한국을 직접 방문해 대기업 회장들과 삼겹살을 굽고, 치킨, 바나나우유를 나눠주는 장면까지 더해져 시장은 활기가 가득했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들이 많아지자 너도나도 증시로 향했고,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신용공여 한도 관리를 위해 신규 신용융자를 제한할 정도로 투자 열풍이 불었다.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 비롯된 지정학적 리스크나 과도한 유동성과 재정적자, 금리 상승이 가져올 충격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는 환희에 가까운 AI와 반도체 파워에 밀렸다.

그럼에도 비관론자들은 굴하지 않는다. 시장이 위험에 빠질 여건을 체크하고,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저울질한다.

최근 부각된 AI 속도조절론도 비슷한 맥락이다.

인류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AI 시대를 앞두고 핑크빛 전망 일색일 때 AI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목소리가 등장했다.

미국 AI기업 앤트로픽의 제이콥 콕슨이라는 전 연구원이 "AI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이 기술이 10년 안에 우리를 모두 죽일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경고했다.

앤트로픽 과학자 에반 허빙거도 향후 10년 내 AI로 인해 인류가 멸종할 가능성이 10% 이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뒤이어 앤트로픽과 오픈AI 수장들도 인공지능 속도조절 필요성을 제기하며 힘을 보탰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

그들은 모두가 간과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살피고, 저주에 가까운 전망을 내놓아 좀처럼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 반복된다. 사물이나 상황이 극에 이르면 반전이 일어나는 상황은 당장 코스피나 환율 그래프만 봐도 여러차례 일어난다. 수급이 한쪽으로 쏠렸다가도 어떤 사건이나 국면 전환이 일어나면 반대 방향으로 간다.

이 과정에서 비관론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이야기가 나왔던 청와대 회의에서 누가 주도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 회의에 참여한 업계 관계자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제안, 찬성했다는 사람이 없다. 일부에서는 사실상 부정적인 의견을 이야기했다고 하지만 이 의견은 무게있게 검토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 대응에 정해진 답은 없었다. 김용범 전 정책실장을 비롯해 재경부, 금융위, 금감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등 주요 기관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삼성자산운용, 한국투자자산운용 등 업계 참가자들이 참석했지만 당시 1,500원으로 향하던 달러-원 환율도, 5천피를 향하던 코스피도 모두 그들에게 이례적인 레벨이었다.

어떤 대책이든 처음 보는 시장의 열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 뭐든지 내놓아야 하던 시점이었던 셈이다.

지금에 와서 상품 출시의 책임론을 내세우며 그 과정을 비난하는 것은 결국 정책집행자의 무사안일, 책임 회피로 연결될 우려도 있다.

물론 결정 과정에서 절차 위반이나 이해 충돌, 자료 조작 등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만, 누가 제안했느냐, 누가 찬성했고 주도 했느냐 하는 논란은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위한 논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향후 코스피가 다시 1만피를 향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또 단일종목 레버리지ETF의 역할에 대한 다른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우리 시장에서 다양한 투자가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상품이 갖는 장점도 있다.

다만, 그 결정 과정에서 비관론자의 부정적인 전망이나 시장 변동성 대비책 마련에 대한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낙관론이 놓치고 있는 위험을 가격에 반영시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는 핑크빛 전망을 망치고, AI와 반도체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을 훼방놓고, 귀찮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낙하산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다.

모두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이야말로 비관론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증권부장)

syjung@yna.co.kr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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