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매수 허용에 예외 규정까지…해외 제도의 보호 장치 쏙 빼"
운용업계, 내달 1일 본회의 상정 보류 요구…'비례적 매수' 대안 제시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정부가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를 진행하는 가운데, 정작 국회에서는 일반주주를 소외시키는 법안이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어 자본시장의 반발이 거세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합산 수탁고 87조 원 규모의 국내외 18개 자산운용사는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정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안(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처리를 보류할 것을 촉구하는 긴급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약 30년 만에 부활하는 이 제도는 경영권 변동 시 일반주주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조건으로 주식을 팔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운용업계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현재 법안이 대주주의 '합법적 먹튀'에 면죄부를 주는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대주주 100% 엑시트·소액주주 '들러리'…독소조항 '선행매수'
핵심 쟁점은 인수자가 장외에서 지배주주 지분을 통째로 사들일 수 있도록 허용한 '선행매수' 조항이다. 현재 추진중인 법안은 인수자에게 '50%+1주' 매수 의무를 부여하면서도 이 선행매수를 허용했다.
이 구조에서는 소액주주 보호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컨대 지배주주가 40%, 일반주주가 60%를 보유한 상장사를 인수할 때, 인수자는 대주주 지분 40%를 장외에서 최고 프리미엄을 주고 전량 취득하면 그만이다.
이후 법적 의무선인 50%+1주를 맞추기 위해 일반주주 60%에게서는 불과 '10%+1주'만 공개매수하면 된다.
일반주주 전원이 응모해도 자신이 가진 주식의 약 6분의 1만 비싼 값에 팔 수 있고, 나머지 6분의 5는 방치된다.
실제로 사모펀드 KCGI가 인수한 한양증권은 대주주 지분 30%에 시가의 3배에 달하는 6만 5천 원의 단가가 책정되며 무려 1천800억 원의 경영권 프리미엄이 대주주에만 쏠렸다. 반면 소외된 일반주주들은 인수 호재에도 이 같은 프리미엄을 나누지 못했다.
한양증권은 추후 단가 2만 1천원의 최대주주 배정 제3자 유상증자로 지분율을 40% 부근까지 확대했다.
KB금융지주의 현대증권 인수 때도 지배주주는 주당 2만 3천182원을 챙겼으나, 주식교환에 반대하는 소액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은 주당 6천737원에 불과해 극심한 가격 차별이 발생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대우증권을 인수에도 지배주주에게 주당 1만6천518원을 지급했지만 일반주주에게는 7천999원에 불과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지배주주 지분이 이미 50%를 넘는 기업이라면 일반주주는 공개매수 참여 기회조차 박탈된다.
과거 대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독식하고 소액주주는 피해를 보던 불공정 관행이, 이제는 '법이 정한 의무를 다한 합법적 거래'로 둔갑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검토를 거치며 빠져나갈 구멍은 더 커졌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기존에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0에 1주를 더한 수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추가 매수를 진행할 때는 아예 의무공개매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주는 예외 규정까지 얹어졌다.
◇1997년 옛 제도·해외 입법례보다 퇴보…"비례적 매수가 해법"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정무위안이 해외 선진국 제도는 물론, 1997년 국내에 처음 도입됐던 옛 의무공개매수제도보다도 명백히 후퇴했다고 지적한다.
해외 주요국은 부분매수와 선행매수 중 하나만을 엄격히 허용해 일반주주를 보호한다.
일본은 지분을 일부만 사는 부분매수를 허용하되, 취득 후 30%를 넘으면 의무적으로 공개매수를 거치게 해 선행매수를 철저히 차단한다. 영국과 유럽연합(EU), 홍콩 등은 선행매수를 인정하는 대신 남은 잔여 주식 '전부'에 대한 매수 제안을 의무화해 소액주주의 전량 엑시트 기회를 보장한다.
그러나 한국 정무위안은 대주주 지분은 먼저 통째로 사주고 일반주주 지분은 일부만 사도 되도록, 두 해외 제도의 소액주주 보호 장치만 쏙 뺀 기형적 구조를 택했다. 1997년 옛 제도조차 25% 이상 취득 시 무조건 처음부터 공개매수를 거치게 해 선행매수를 원천 금지했던 점을 고려하면 30년 전보다 역행한 것이다.
운용사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비례적 공개매수'다. M&A 위축과 인수자금 부담을 감안해 총매수 물량을 '50%+1주'로 묶더라도, 선행매수를 전면 금지하고 대주주와 일반주주가 같은 날 같은 조건으로 공개매수에 응모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수자가 쓰는 총자금과 사들이는 총주식 수는 유지하면서도, 대주주와 일반주주가 각자 보유 주식의 절반씩을 공평하게 나눠 팔 수 있게 된다.
참여 운용사들은 이번 법안이 정부와 국회가 추진 중인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도입,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 등 일반주주 보호 정책 기조와 배치된다고 꼬집었다. 한 번 끝난 경영권 거래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만큼, 국회가 10월 1일 본회의 처리를 보류하고 원점에서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의무공개매수 법안 없이도 시장의 관행이 '전량 공개매수 후 상폐'로 굳어지고 있었는데 이 같은 법안은 면죄부를 줘 오히려 퇴행"이라며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고 비판했다.
[촬영 안 철 수] 2025.8
kslee2@yna.co.kr
이규선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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