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법원서 원 판정 일부 취소했지만 인과관계 다시 인정
배상원금 658억원…엘리엇 "이자·비용 포함 1천500억원대"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한국 정부 간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에서 정부가 패소했다.
정부는 올해 영국 법원에서 국민연금공단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받아내 기존 중재판정의 일부를 취소시켰지만, 환송 중재판정부는 당시 정부의 합병 개입과 엘리엇의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다시 인정했다.
국민연금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정부의 주장은 받아들여졌지만 결국 배상 책임 자체를 없애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과천=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2.24 yatoya@yna.co.kr
1일 법무부에 따르면 엘리엇 ISDS 환송중재 판정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께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약 4천849만달러(약 658억원)와 지연이자 등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환송중재 판정부는 2015년 당시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찬성하도록 개입한 행위와 엘리엇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배상원금은 2023년 원 중재판정이 정정된 이후 확정된 4천849만428달러와 같다.
다만 실제 정부가 부담할 금액은 이보다 크다.
엘리엇은 손해배상 원금에 누적 이자와 법률·소송비용 등을 합친 총 구제액이 약 1억1천30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1천500억원대다.
법무부가 밝힌 658억원은 손해배상 원금이고 엘리엇이 제시한 1억1천300만달러(1천539억원)는 이자와 각종 비용까지 포함한 금액이어서 양측이 제시한 수치에는 차이가 있다.
[제작 김유진] 배경은 삼성물산 본사 건물 [연합뉴스DB], 로고는 [각사 제공]
◇ 英법원서 판정 일부 취소…남겨진 '인과관계'
이번 사건은 엘리엇이 2018년 7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2023년 엘리엇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당시 최초 판정에서는 손해배상 원금이 약 5천359만달러로 산정됐으나 이후 정정 절차를 거쳐 4천849만428달러로 낮아졌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올해 2월 국민연금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한국의 국가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 중재판정 일부를 취소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 판정의 핵심 논리 중 하나를 뒤집은 셈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행위 자체는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조치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보지 않더라도 정부의 합병 개입과 엘리엇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를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중재판정부로 돌려보냈다.
결국 환송심의 핵심은 '정부 개입이 없었더라면 국민연금의 표결과 합병 결과가 달라졌을 것인가'로 좁혀졌다.
[연합뉴스TV 제공]
◇ 국민연금 국가기관 아니라지만…인과관계는 인정
환송중재 판정부는 정부 개입과 엘리엇 손해 사이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에 따르면 판정부는 정부의 위법한 개입이 없었더라면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을 것으로 봤다.
국민연금 자체의 행위를 정부 행위로 볼 수는 없더라도 당시 정부의 개입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엘리엇의 손실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환송심에서 이 같은 연결고리를 끊는 데 주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형사사건 무죄 확정판결과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국가배상청구 소송 결과 등을 제시하며 정부 개입이 실제 국민연금의 표결과 합병 결과를 바꿨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환송 판정부는 결과적으로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송중재는 원 중재와 동일한 3명의 중재인이 맡았으며, 재심리 끝에 종전과 동일한 손해배상 원금을 인정했다.
[연합뉴스TV 제공]
◇ 658억과 1천500억원대…금액 왜 다른가
이번 판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정부와 엘리엇이 각각 제시한 금액이다.
법무부는 배상액을 약 4천849만달러(658억원)과 지연이자 등으로 설명했다.
4천849만달러는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으로 입었다고 판정부가 인정한 손해배상 원금이다.
그러나 정부의 실제 부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23년 원 판정에서는 손해배상 원금뿐 아니라 2015년 7월부터 원금에 붙는 이자와 엘리엇 측 법률비용 일부 등도 정부가 부담하도록 했다.
엘리엇은 이번 환송 절차 이후 이러한 손해배상금과 이자, 법률·소송비용 등을 모두 합친 총 구제액이 약 1억1천300만달러(1천539억원)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의 불복 절차가 이어지면서 정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약 1천890만달러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하루 1만달러 이상의 이자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4천849만달러는 배상원금이고, 1억1천300만달러는 누적 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한 전체 부담액이라는 차이가 있다.
구체적인 비용 항목과 추가 이자의 산정 내역은 판정문이 공개되면 보다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8년 공방 막바지…정부 추가 대응 주목
이번 판정은 같은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메이슨 사건과도 결과적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메이슨 사건에서도 국민연금을 한국의 국가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보건복지부의 개입과 투자자의 손해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해 정부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
엘리엇 사건 역시 정부가 영국 법원에서 국민연금의 국가기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뒤집는 데 성공했음에도 환송심에서 인과관계가 다시 인정되면서 배상 책임이 살아났다.
2018년 ISDS 제기 이후 약 8년간 이어진 법적 공방도 사실상 막바지에 들어섰다.
다만 이번 판정으로 모든 법적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관계부처, 정부 대리로펌 및 외부 전문가 등과 함께 판정문을 면밀하게 분석해 필요한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번 추가 판정을 수용할지, 다시 취소 절차 등 법적 대응에 나설지가 8년간 이어진 분쟁의 최종 종결 여부를 가를 전망이다.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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