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선임기자 =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대규모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서로 자금을 대주고 빌리는 소위 '순환거래'(Circular Transactions) 규모가 대폭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 국제결제은행이 거시경제의 위험을 초래하고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BIS는 1일(현지시간) 발표한 'AI 기업 간 순환 관계' 보고서에서 "AI 분야의 순환적 투자 관계에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고, 이러한 구조는 기업 차원의 계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고도로 얽혀 있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특성상 거시경제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AI 붐 속에서 이미 존재하는 과잉 투자와 부채 조달 리스크에 더해지는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AI 기업 간 순환거래는 AI 기업이 다른 AI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면 상대 기업이 그 자금을 활용해 투자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해 주는 방식의 거래를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동시에 아주라 클라우드 플랫폼 인프라를 오픈AI에 독점 공급하거나, 엔비디아가 AI 벤처캐피탈을 통해 투자자로 참여하고 해당 스타트업들은 엔비디아의 GPU를 대량 구매하는 방식 등이 대표적이다.
아마존과 구글은 앤트로픽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앤트로픽은 아마존 웹서비스의 칩이나 구글 클라우드 인프라를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BIS 조사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AI 기업이 투자한 금액 중 28.7%가 피투자기업이 AI 기업인 경우에 해당했다.
특히 AI 기업에 유입된 투자금의 55.2%는 다른 AI 기업에 의해 이뤄졌다.
같은 기간 AI 기업 간 투자거래 중 16.1%(거래 건수)와 46.4%(거래액)는 투자 기업과 피투자 기업 간의 상업적 공급망 관계를 포함했다.
이는 BIS가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 도구, 모델링, 애플리케이션 등의 5개 공급망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 1천246개 AI 기업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모든 투자 거래 정보 및 기업 간 상업적 관계 존재 여부 등을 파악한 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이뤄진 AI 기업 간 972건의 투자 관계를 확인해 분석한 결과다.
순환거래 유형은 크게 ▲상대방 AI 기업에 투자하는 AI 기업이 동시에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 ▲고객 기업이 재화와 서비스 공급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 ▲상호 상업적 관계를 포함해 재화와 서비스가 양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 등으로 나눴다.
BIS는 AI 기업 간에 이러한 순환거래가 빈번한 이유로 정보 접근에 대한 편의성을 꼽았다.
공급업체는 고객에 대한 더 좋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자금 공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급업체는 상업적 관계를 통해 자사의 투입재가 얼마나 활발하게 사용되는지, 고객의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확장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데, 이는 외부 대출 기관이나 투자자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다.
또한 공급업체는 자사 제품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고객에게 자금을 조달해 줄 수도 있는데, 특히 제품 가격이 비싸고 고객이 외부 자금 조달에 높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칩 제조사나 클라우드 제공업체와 같은 공급업체는 개발사의 컴퓨팅 자원 사용량과 그에 따른 성장 궤적을 다른 대출 기관보다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이들 기업에 자금을 조달해 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공급업체는 자사 제품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객이 공급업체에 자금을 조달하는 반대의 경우, 희소하고 중요한 투입재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주된 이유가 된다고 봤다.
소수의 기업만이 생산하는 투입재가 고객의 제품에 필수적인 경우, 지분 투자나 자금 조달은 해당 투입재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메모리 칩과 같은 핵심 투입제의 심각한 부족 상황이 중대한 병목현상을 초래할 수 있는 AI 분야에서는 이러한 자금 조달이 고객이 공급업체의 전략적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BIS는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자금을 지원할 경우, 공급업체 매출 성장의 일부는 최종 수요가 아닌 자사의 자본 투자를 반영한 결과가 되는데, 이에 따라 투자자와 대출기관, 감독 당국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후반 통신 붐 당시 루슨트나 노텔과 같은 장비 공급업체들이 네트워크 사업자가 자사 장비를 구매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장비 공급업체가 보고한 매출의 일부가 사실상 공급업체 자체 자금으로 충당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시 이러한 거래에서 장비 공급업체들은 매출과 대출금을 모두 자산으로 계상했으나 지원받은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실제로 매출을 실현하지 못하거나 둔화하자 대출금을 상환할 수도, 장비 구매를 지속할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결국 장비 공급업체들은 재정적 손실은 물론 매출 감소의 이중고를 겪었다.
BIS는 "기업들의 기대에 비해 매출 성장과 최종 사용자 수요가 미치지 못할 경우 AI 분야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AI 주도로 글로벌 주식가치 평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상당한 변동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IS는 또 순환거래는 기업의 상업적·금융적 익스포저 간 상관관계를 높여, 시장 불안시기에 파급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급업체이자 투자자인 경우 동일한 거래 상대방에게 이중으로 노출돼 고객사에 충격이 발생하면 지분 가치와 향후 제품 매출이 모두 감소할 수 있어서다.
순환거래는 공급망 상위 단계의 소수 대기업에 집중돼 있어, 부정적 충격이 상업적·금융적 경로를 통해 동시에 전파되면서 전염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BIS는 "이러한 위험은 AI 인프라 자금 조달을 위한 사모 신용과 특수목적법인(SPV)의 활용이 증가함에 따라 더욱 커질 수 있다"면서 "경기 침체기에 금융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는 숨겨진 레버리지와 상호 연결된 익스포저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BIS는 아울러 순환거래 구조는 불투명성 때문에 모니터링과 감독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AI 관련 기업 중 다수는 비상장 기업으로 정보 공개가 제한적일 수 있고, 상장 기업의 경우에도 현금 투자와 장기 구매 약정, 기초 자산 가치에 대한 보증 등이 혼재돼 거래 조건이 복잡한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보증인이 일정 기간 경과 후 자산(칩이나 데이터센터 장비 등) 가치가 하락해 발생하는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약속하는 잔존 가치 보증(RVG)의 경우, 대차대조표 외 항목으로 분류되는데 보증인이 위험을 감수할 능력이 부족한 경기침체 시기에 현실화하는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BIS는 "표면적인 수치와 실제 집행된 금액 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해당 기업들이 서로 다른 산업 분야와 관할권에 걸쳐 있어 단일 감독기관이나 규제당국이 관련 위험을 모니터링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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