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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헌의 단상] 남아도는 국세 잘 쓰는 법

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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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역대급 세수 풍년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국세 수입은 사상 최대인 478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작년보다 104조7천억원 늘어난 규모다. 지난 3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당시의 전망치와 비교해도 63조원이나 많다. 반도체 호황이 법인세와 소득세를 밀어 올린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개선이 세수 급증의 주된 원인이 됐다. 정부는 이 초과 세수를 '미래대응기금'에 적립해 청년·성장동력·지역균형·교육 등 4대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내년에는 세수가 584조4천억원으로 또다시 100조원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미래대응기금의 자산규모는 200조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그래픽

초과세수의 쓰임새 중 한 가지는 이미 분명해졌다. 국고채 발행물량 축소를 통해 채권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국채당국의 의지다. 정부는 글로벌 금리 급등 여파로 국고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등 불안한 흐름 속에서 초과세수 일부를 활용해 국고채 발행물량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말까지 발행물량은 10조원 안팎 줄어들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실제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한때 연 4.1%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발행 축소는 연간 4천억원 이상의 이자 절감 효과를 낼 것으로 추산된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시장 불안을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초과세수를 단순히 '미래기금'과 '국채 축소'에만 쓰는 게 최선일까. 정부의 계획은 재정의 안정성과 미래 투자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으려는 의도지만, 그 사이에는 구조적 긴장이 존재한다. 미래기금은 장기적 투자 성격을 띠지만, 그 운용 목표가 수익 극대화인지 정책지원인지 아직은 불분명하다. 산업정책과 재정투자가 혼재될 경우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고 정치적 개입의 여지가 커진다.

해외 사례는 이 문제의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아일랜드는 빅테크 법인세 폭증으로 초과세수가 발생하자 2024년 '퓨처 아일랜드 펀드(Future Ireland Fund)'를 출범시켰으나 준비 없는 납입으로 9천200억원 손실을 기록했다. 호주는 광산붐으로 재정 흑자가 발생하자 2006년 '퓨처 펀드(Future Fund)'를 설립해 20년간 4.4배 성장했지만, 최근 정권 교체 후 에너지·주택 투자 의무화가 추가되면서 수익 극대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초과세수를 국채 상환에 우선 투입해 재정건전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독일은 재정준칙을 통해 초과세수를 구조적 흑자로 전환해 경기침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완재정기금을 만든다. 스웨덴은 초과세수를 사회복지와 교육에 재투자해 장기적 생산성을 높인다.

미래대응기금 당정협의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들 사례를 참고하면 초과세수는 일회성 소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투자에 쓰는 게 맞다. 반도체 경기 등 특정산업 호황에 따른 일시적 세수 증가라는 점에서 장기적 재원으로 삼기엔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형 미래기금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운용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수익 극대화와 정책 지원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산업정책은 정책금융으로, 미래기금은 장기 수익형 자산으로 구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도적 독립성 확보도 필수적이다. 펀드 운용지침 변경시 국회 승인 절차를 의무화하고, 장기 수익률 목표를 법률로 고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투명성과 국민 신뢰 제고는 기본이다. 기금의 운용 내역과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외부 감사·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큰 문제 중 하나인 주거 안정을 위해 초과세수를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최근 서울 강남 지역 집값이 완연한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시장에 중요한 신호가 나타났다. 이 흐름이 서울과 수도권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려면 신속한 공급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초과세수를 활용해 공공임대주택과 일반 아파트 공급을 빠르게 늘리겠다는 시그널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수도권의 주택 공급 확대는 강남발 가격 하락 신호를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공공임대주택 전용 기금을 초과세수로 조성해 안정적 공급 재원을 확보하거나, 민간 건설사와 매칭펀드를 만들어 공급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지방 청년·신혼부부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에 일부 재원을 배정한다면 지역 균형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단순히 공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임대료 보조·주거 바우처 제도를 강화해 저소득층의 실제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부동산 정책 강경파로 분류되는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이 정책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시장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초과세수 활용과 맞물려 공급 확대와 투기 억제 정책이 병행될 경우 부동산 안정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이는 재정 운용을 넘어 국민 생활 안정과 직결되는 정책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초과세수는 단기적인 인기 정책에 쓰이는 '그냥 남는 돈'이 아니라 국민 주거 안정과 미래세대의 성장 기반을 동시에 다지는 자산이 돼야 한다. 국채 축소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고, 미래기금으로 장기적 경쟁력을 키우며, 동시에 주택 공급 확대를 통해 생활 안정까지 잡는다면 대한민국의 초과세수 활용법은 재정과 주거, 사회정책을 균형 있게 결합한 모범 사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국장)

chhan@yna.co.kr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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