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F 75%·자사주·나스닥 요구했던 2016년 제안서
FCF 50% 환원 정착…美 투자자 접근은 하이닉스 ADR로 현실화
[※편집자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요구한 지 10년이 됐습니다. 당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던 주주환원 확대와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이제 국내 자본시장의 주요 화두가 됐습니다. 연합인포맥스는 엘리엇 제안 이후 10년간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정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주주행동주의의 저변이 어떻게 확대됐는지를 3회에 걸쳐 짚어봅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과 맞섰던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요구한 지 올해로 정확히 10년을 맞았다.
엘리엇의 요구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과 맞닿아 있었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요구로 떠올랐다. 이 가운데 해외시장 상장과 지주사 전환 등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주주환원은 규모를 키워가며 안착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엘리엇 계열 블레이크캐피털과 포터캐피털은 2016년 10월 5일 삼성전자 이사회에 공개서한을 보내 30조원의 특별배당과 잉여현금흐름(FCF)의 75% 주주환원, 자사주 처리,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할, 나스닥 상장 등을 요구했다.
당시 두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62%에 불과했다.
엘리엇은 삼성전자의 사업 경쟁력에 비해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할인돼 있다며 이를 해소하려면 자본배분과 지배구조를 동시에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파격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졌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기업이 쌓아둔 현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소수 주주가 이사회에 자본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이미 낯선 일은 아니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당시 엘리엇의 삼성전자 제안은 국내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보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당연하게 논의되던 문제들이었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30조 배당 요구→100조원대 환원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엘리엇이 제기했던 의제 가운데 상당수는 삼성전자의 자본정책에 녹아들었다.
삼성전자는 엘리엇 제안 이전인 2015년 10월 이미 향후 3년간 연간 FCF의 30~50%를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엘리엇의 제안 이후인 2016년 11월에는 이를 한 단계 강화했다.
2016~2017년 FCF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하고 배당을 전년보다 30% 늘리는 한편 분기배당을 도입하기로 했다.
자사주 정책도 크게 달라졌다.
삼성전자는 2017년 4월 당시 시가 40조원을 웃돌던 기존 보유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절반을 먼저 없앤 뒤 2018년 나머지 자사주도 모두 소각했다.
2017년에는 별도로 9조2천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신규 매입해 소각했다.
이후 2018~2020년에는 매년 9조6천억원 규모의 정규배당을 실시하는 등 FCF와 연계한 환원정책이 삼성전자의 중장기 자본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환원 규모도 크게 불어났다.
삼성전자는 올해 2024~2026년 3년간 누적 FCF의 50%를 기준으로 산정한 주주환원 잔여 재원이 약 90조~1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4~2025년 이미 29조3천억원을 환원한 뒤 남은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이 가운데 약 30조원을 3분기 현금배당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자사주 소각은 현실화…지주사 전환은 무산
반면 엘리엇이 요구했던 지주회사 전환과 나스닥 상장은 삼성전자에서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과 해외 추가 상장의 기대효과 및 타당성을 공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7년 4월 지주회사 전환은 사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고 금융계열사 지분 처분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접었다.
해외 추가 상장도 실제 추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엘리엇이 제시한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분할, 지주회사와 삼성물산 간 결합이라는 지배구조 재편안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
반면 자사주 소각과 FCF에 연계한 주주환원 확대는 이후 삼성전자 정책에 뿌리를 내렸다.
엘리엇이 요구한 FCF 75%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FCF의 일정 비율을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원칙 자체는 삼성전자 자본정책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이 안 간 나스닥…하이닉스는 ADR로 진출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이라는 화두도 10년 뒤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엘리엇은 당시 분할 후 삼성전자 사업회사인 삼성 옵코(OpCo)를 국내 증시뿐 아니라 나스닥에도 상장하라고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나스닥을 특정해 공식 검토한 것은 아니지만 해외 추가 상장의 효과와 가능성을 들여다봤다.
결국 삼성전자에서는 현실화하지 않았지만, SK하이닉스가 10년 뒤 나스닥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면서 미국 자본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7월 나스닥에서 ADR 거래를 시작했다.
삼성전자 사업회사의 직접 상장을 요구했던 엘리엇의 방안과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다만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확대한다는 문제의식은 맞닿아 있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지주사 전환이나 나스닥 상장은 삼성이 내부적으로 검토는 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주사 전환은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나스닥 상장도 하이닉스와 달리 가전이나 휴대전화 사업부는 B2C라 소송 이슈 등도 고려됐을 것이다. 그외 공시 의무가 늘어나는 점 등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엘리엇의 요구가 삼성전자의 변화를 직접 만들어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10년 전 논쟁적이었던 FCF 기반 환원과 자사주 소각, 글로벌 자본시장 접근이라는 화두는 이제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주요 자본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당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던 질문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이유다.
ysyoon@yna.co.kr
윤영숙
ys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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