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박지은 권용욱 기자 =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유럽 채권시장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떠올랐다.
이란 전쟁 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압력에 따른 채권 매도세가 주요국들의 장기금리를 일제히 밀어 올린 가운데, 프랑스의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정치 불안이 겹친데다 헤지펀드의 포지션 청산까지 가세하면서 '세계 채권시장 공포의 진원지'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일 연합인포맥스 해외금리(화면번호 6531)에 따르면 프랑스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 2일 5.0277%까지 치솟은 뒤 현재 4.86%에서 거래됐다. 올해 2월 이란 전쟁 발발 당시 약 3.2%였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와의 격차도 벌어졌다. 프랑스-독일 10년물 수익률 스프레드는 5일 기준 137bp까지 확대됐다. 이는 2012년 1월 유럽 재정위기 이후 최고치로,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매도하고 독일 국채를 사들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프랑스의 처지는 한때 유럽연합(EU) 재정 불안의 상징이었던 이탈리아와도 바뀌었다. 5일 기준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탈리아보다 약 0.3%포인트(p) 높으며, 이는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90년대 이후 가장 큰 격차다.
국채금리 급등은 5일 기준 유로-달러 환율이 2025년 5월 이후 최저로 떨어지는 등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로-달러 환율은 전일 장중 1.1160달러까지 떨어진 후 이날 오전 8시 57분 현재 1.12150달러에서 거래되고 있다.
◇ 재정·정치적 불확실성부터 헤지펀드의 포지션 청산까지
프랑스 정부는 당초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지난해 5.1%에서 소폭 축소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9월 정부는 올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약 5.4%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부채 상환비용이 올해 790억 유로에서 내년 910억 유로(한화 약 137조168억8천만 원)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프랑스 정부의 총부채는 3조5천361억 유로로 GDP의 117.6%에 달했다. 유럽중앙은행(ECB)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20년 154%에서 올해 139%로 낮아졌으나, 프랑스는 같은 기간 114%에서 117%로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프랑스 정부의 총부채가 2026년에는 GDP의 약 118.4%에 이르고, 2027년에는 120%를 초과해 2030년까지 해당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재정 상황을 통제할 정치적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내년도 GDP 대비 재정적자 목표치를 5%로 잡았다. 이를 위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2일(현지시간) 내년 예산에 540억 유로 규모의 지출 삭감안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2024년 총선 이후 여소야대 지형이 된 프랑스 의회에서 해당 안이 통과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프랑스는 과반 다수당이 나오지 않은 2024년 총선 이후 총리가 연속 교체될 정도로 예산안 협상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어 왔기 때문이다.
내년 4~5월로 예정된 대통령선거도 프랑스 국채 시장에 부담을 주는 또 다른 불확실성 요인이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과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하원의원이 유력 대선 후보로 조명되면서 시장에서는 프랑스의 긴축 정책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멜랑숑 정당 대표는 최근 프랑스 중앙은행과 ECB가 보유한 프랑스 국채 일부를 소각하자는 방안을 주장했다. 르펜은 일부 계층의 은퇴 연령 하향 조정하고 연료 및 전기세를 대폭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국가 재정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투자회사 오도 BHF의 브루노 카발리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이처럼 정치적·재정적 리스크가 누적되면서 프랑스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프랑스의 금리 급등 배경엔 기술적 요인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 미국계 투자은행의 채권 트레이더는 "여름철 유럽 시장에서는 ECB의 금리 인상이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본 헤지펀드들이 프랑스 10년물과 30년물 사이의 '커브스티프닝' 포지션을 쌓아뒀다"고 설명했다. 이후 헤지펀드들의 예상과 달리 10년물 금리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해당 포지션들의 청산이 나타난 것이다.
자산운용사 PGIM의 로버트 팁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번 매도세가 프랑스의 신용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강제 매도(forced selling)에 의해 촉발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프랑스-독일 스프레드가 10년 만기 국채보다 5년 만기 국채에서 더 크게 벌어졌다는 점을 증거로 들었다.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이나 신용도가 구조적으로 악화됐다는 우려가 매도세의 원인이라면 장기물에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RBC 글로벌 자산운용 블루베이의 마이크 벨 시장 전략 책임자는 "많은 투자자가 매수 포지션을 강제로 청산당하거나, 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자산을 보유하고 싶지 않다고 판단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 유가·예산안이 금리 향방 가른다…"프-독 스프레드 120bp 가능성"
국제유가 흐름은 향후 프랑스 국채금리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프랑스 국채금리에 재정·정치 불안뿐 아니라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우려도 영향을 미친 만큼, 주요 7개국(G7)의 비축유 방출이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킬 경우 국채금리의 추가 상승 압력도 일부 완화될 수 있다.
G7은 지난 2일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조율 아래 원유와 경유 등 총 1억배럴의 비축유를 4개월에 걸쳐 방출하기로 했다. 발표 후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프랑스 국채금리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다만 프랑스의 높은 재정적자와 공공부채, 내년도 대규모 국채 발행 등 구조적인 재정 부담이 남아 있어 유가 안정만으로 금리가 추세적으로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리 향방을 가를 또 다른 분수령은 2027년 예산안의 통과 여부다. 프랑스 하원은 오는 13일부터 재정 절감 방안이 담긴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시작한다. 야당들의 반대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하원에서 나오기 시작하면 정국은 더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고, 프랑스 국채에 붙는 위험 프리미엄은 확대될 수 있다.
현재 대선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극우 정당 RN은 일단 정부 예산안의 세부 내용을 검토한 뒤 통과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이 연합해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지만, RN은 불확실성을 키우기보다 불완전한 예산안이라도 통과시킨 뒤 향후 개정하는 편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티시스 CIB의 테오필 르그랑 금리 전략가는 예산안 논의와 대선 정국에 따라 올해 말과 2027년 1분기가 프랑스 국채(OAT) 시장에서 변동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라고 내다봤다.
르그랑은 "OAT의 밸류에이션은 이미 상당히 압박을 받는 수준"이라며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연말 프랑스-독일 10년 만기 스프레드는 약 75bp, 통과되지 않아 프랑스가 특별 예산법 체제로 전환할 경우 약 80bp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소시에테 제네랄(SG)은 연말까지 예산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스프레드가 120bp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시장은 르코르뉘 총리가 대선 전까지 프랑스 재정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이행할 수 있을지에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픽테 자산운용의 크리스토퍼 뎀빅 수석 투자 자문가는 "현재 프랑스는 공공 부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다"며 "유일한 해결책은 지출을 줄이는 것이지만, 이를 실행하려는 주체는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인사이트 인베스트먼트의 에이프릴 라루스 투자 전문가 그룹 책임자는 "부채 상황을 고려할 때 필수적으로 보이는 수준의 재정 조정을 프랑스가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놀라울 정도로 미미하다"고 짚었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이번 예산안은 지출 삭감보다 증세에 집중했다. 이번 예산안을 보면, 540억 유로의 절감 대부분은 세수 증대를 통해 이뤄진다. 연금 소득자 공제 축소와 병가 및 퇴직금 과세 개편, 대기업 추가 과세 유지, 고용주 사회보장세 감면 축소 등이 포함됐다.
반대로 지출 측면에서는 공무원 보수 및 대부분의 부처 예산 동결, 고소득자 연금의 물가 연동 정지 등을 추진하지만, 국방비와 이자 비용 상승으로 지출 감소 폭은 미미하다.
라루스는 "성장 전망치는 하향 조정되고 있고 부채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지만 의미 있는 수준의 지출 억제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어려운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027년 선거 이후로 연금 개혁이 사실상 보류된 데다 의회 구도마저 극도로 분열된 상황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재정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루스는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프랑스 국채 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ING은행은 "이번 예산안이 통과되더라도 부채 악화 속도를 '수치상 느리게' 만들 뿐"이라며 "프랑스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올해 중반 119%에서 내년 121.7%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고 만기가 도래하는 대규모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내년 사상 최대인 3천400억 유로 규모의 중장기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국채관리기관인 '아스 프랑스 트레조르(AFT)'는 GDP 대비 재정적자 목표를 5%로 삼은 내년도 예산안을 고려할 때, 내년 중장기 국채 발행액(바이백 제외 순발행 기준)을 3천400억유로(약 521조8천억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3천100억유로보다 전년 대비 약 10% 늘어난 역대 최대치다.
이는 높은 금리로 과거 저금리 부채를 차환하면서 이자 부담이 다시 재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ECB가 프랑스 국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실제 시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분데스방크의 요아힘 니켈 총재는 프랑스 국채 매도와 관련한 ECB의 특정 회원국 국채 매입 제도인 전달보호기구(TPI) 가동 가능성에 대해 "우리 정책 수단은 특정 스프레드 수준을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인포맥스]
jepark2@yna.co.kr
박지은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금융용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