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파트너스 전성기 주도, 2021년말 초기기업 길잡이 자처
금융지주 최초 액셀러레이터 사령탑
사진=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
(서울=연합인포맥스) 양용비 기자 = 한국 모험자본 투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금융사가 바로 한국투자금융이다. 벤처캐피탈(VC)과 증권사, 사모펀드(PE) 등 다양한 계열사를 통해 국내 벤처 시장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특히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국내 VC 시장의 맏형 역할을 수행하면서 한국 VC를 대표하는 하우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투자파트너스가 투자했으면 맞다'라는 공식이 통할 정도다.
한투금융이 국내 모험자본 업계의 대표 주자로 입지를 굳히는 과정에는 백여현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 대표가 중심에 있었다. 그는 2008년부터 약 12년간 한국투자파트너스의 지휘봉을 잡고, 운용자산(AUM) 2천억 원의 하우스를 3조 원 운용사로 키워냈다.
전형적인 심사역 출신이 아닌 경영관리·조직 운영에서 출발해 한국투자파트너스의 투자 운용 시스템을 체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초기·중기·성장 등 다양한 스테이지에 투자하던 그는 2021년말 초기 창업자를 위해 새출발에 나섰다.
한투금융에서 극초기 투자를 담당하는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초대 사령탑이 돼 새싹 기업들을 발굴해 육성하는 임무를 자처했다. 이제는 투자와 함께 스타트업 길잡이로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국내 금융지주에서 초기투자기관인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한 곳은 한투가 유일하다. 소셜 임팩트 강화 차원에서 초기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의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 온 인사가 바로 백 대표였다.
백 대표는 "초기 스타트업 투자에서 육성 중심으로의 역할 강화할 것"이라며 "창업자의 비전과 사회적 파급력을 고려해 투자하고 한투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스타트업 성장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투자 혹한기, 온기 확산 역할
2021년말 설립된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는 이듬해 3월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마쳤다. 같은 해 6월 첫 펀드를 설립한 이후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는 약 4년 만에 AUM을 600억 원까지 불렸다. 투자한 기업만 130여곳에 달한다.
그는 "2021~2022년 이후 초기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지난 5년간 약 460억 원을 초기 기업에 투입했다"며 "단순히 펀드를 통해 자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타트업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지속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년을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같은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는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시기로 삼았다.
백 대표는 "지금까지 투자 빙하기에 초기 기업의 자금난을 지원해 왔다"며 "이제는 투자 이후의 성장 지원 모델을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강조했다.
배치 프로그램인 '드림 챌린저'가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가 구축한 대표적인 성장 지원 육성 프로그램이다.
기업별 멘토링 기간을 늘리고, 지원·관리 방식과 목표에 변화를 줬다.
이전까지 배치 프로그램의 운영 기간은 3개월이었다. 이를 최대 7개월까지 늘렸다. 지원방식도 공통 교육 멘토링 중심에서 기업별 맞춤형 지원으로 변화를 줬다.
기업 관리도 2~3주 간격으로 소통하며 KPI를 점검하고 있다. 지원 목표도 창업 초기 역량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업모델 개선과 생존·성장 지원에 중점을 뒀다.
그는 "초기에는 3개월 동안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나 사업모델을 점검하고, 멘토링과 실무 교육 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며 "하지만 짧은 기간의 프로그램만으로 스타트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마다 성장 단계와 필요한 지원이 다르다"면서 "다른 투자사의 지원을 받았는지 여부나 기업가치의 일정한 상한선에 얽매이기보다는, 각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필요한 지원을 기준으로 선발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투금융 밸류체인·펀드레이징 역량, 차별화 포인트
백 대표는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차별화 포인트로 한투의 밸류체인을 꼽았다. 이미 한국투자파트너스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한국투자증권 등 초기, 중기, 후기, IPO 투자까지 연계가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가 예비 창업자와 창업 초기 기업을 발굴하고, 이후 성장 단계에 따라 한국투자파트너스와 한국투자증권 등 그룹 계열사로 연결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그는 "백 대표에 따르면 한국투자파트너스가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포트폴리오에 후속 투자를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 관리, 스톡옵션 정책, 제품 개발 방향 등을 선배 기업과 공유하고 그룹 계열사나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을 잠재 고객으로 연결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가 한투금융에 속한 만큼 장점도 뚜렷하다. 안정적인 자금 조달 기반을 갖췄기 때문이다. 액셀러레이터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인 펀드레이징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갖췄다.
외부 벤처캐피털 출자자(LP)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한투금융 계열사들의 출자를 통해 펀드를 운용하고 있어서다. 그룹 차원에서 사회공헌을 위해 설립한 법인인 만큼, 자체 재원을 활용해 초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로벌 베이스캠프 확대, 국내 기업 빅테크 협력 '교두보'
올해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는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앤트로픽이나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를 찾아 국내 스타트업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빅테크의 기술 담당자와 직접 교류하고, 인공지능(AI) 도구와 기술을 실제 제품 개발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사업 전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해외 고객사와의 실증(PoC), 계약 기회도 도모한다.
백 대표는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거나 현지에 체류할 공간을 마련해 주는 수준을 넘어, 실제 제품을 시험할 상대방을 연결하고 실증을 거쳐 수주까지 이어지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미국 오리건주에 구축한 '오리건 디펜스 테크 베이스캠프'가 백 대표가 그리는 청사진의 시발점이다. 미국 진출에 나선 스타트업들이 현지 활동에서 겪는 시간과 비용, 정보 측면의 장벽을 최소화하고, 실증 수요와 네트워크 확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었다.
베이스캠프는 주거 외에도 차량, 통신, 공용 사무실, 현장 매니저 등 체류에 필요한 인프라 일체를 지원한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한 저전력 통신 모듈 개발 기업 '누코드'가 최근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다. 현지에서 실제 계약 성과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가 되는 포트폴리오다.
누코드는 저전력 통신 MCU·SoM 모듈과 개발 보드, 엣지 AI 플랫폼을 만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다. 블루투스 저전력(BLE)과 와이파이 기반 초저전력 연결 기술로 배터리 효율을 높이고 제품 개발부터 양산까지 지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를 드론 기술에 활용할 수 있다.
백 대표는 미국 방산 분야의 공급망 변화에 주목해 누코드의 오리건주 육성 프로그램 참여를 권했다. 드론에 중국산 부품이 많이 쓰이는 상황에서 미국은 부품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교체해 신속하게 드론을 제작하고 정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는 "베이스캠프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제품을 검증하고 실제 계약과 수주까지 이어갈 수 있는 경로를 만들겠다"면서 "첫 펀드를 2022년 론칭한 만큼, 2028년 무렵엔 재무적인 성과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펀드 운용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ybyang@yna.co.kr
양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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