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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세연의 프리즘] 금융을 아는 사람들이 재경부로 돌아왔다

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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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엄청난 위기'의 민낯은 헤쳐 나가야 할 당시보다 그 이후 추스르는 과정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사라졌고 뿔뿔이 흩어진 뒤, 자의 반 타의 반 뒤를 받치던 금융권은 그보다 더 큰 후폭풍에 휘말렸다.

2000년 은행 총파업 사태는 일촉즉발까지 갔다. 당시 표현으로 '여의도를 흔든 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국회 상정을 앞둔 금융지주회사법이 도화선이 됐다.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은행을 지주회사 아래 묶겠다는 정부에 은행 노조는 관치금융의 부활이라며 맞섰다. 정부 출자주식 뒤처리용, 은행 관리회사용 등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은행 총파업 위기 속에서 금융지주회사법을 설명하던 사무관이 있었다. 이형일이다. 당시 방송에 직접 출연해 금융지주회사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했던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 실무자였다. 26년 전 그 사무관은 경제부총리가 됐다.

2000년 10월 23일 김대중 정부 시절 제정된 금융지주회사법은 대한민국 금융사 및 경제사에서 외환위기 극복과 글로벌 기준의 금융 대형화·겸업화를 이끌어낸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이제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국내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거대한 조직이 됐다.

시간이 흐르며 법의 한계와 부작용 역시 명확히 드러났다. '주인 없는 소유분산 기업' 구조라는 명분 아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거나 내부 회장이 사외이사를 포섭해 셀프 연임하며 이자장사로만 연명하는 보신주의가 굳어졌다.

지금은 그렇게 커진 금융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됐다.

KB금융 양종희 회장의 연임이 불발됐다. 4대 금융지주 현직 회장이 연임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기 회장 후보로 이재근 KB금융 부문장이 추천되면서 변화와 세대교체라는 해석이 나왔다.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둔 iM금융에서도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자본 배분, 금융의 역할을 둘러싼 질문 속에서 금융정책을 오래 다뤄온 사람들이 경제정책의 전면에 다시 섰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금융지주회사법은 남의 법이 아니다. 이 굵직한 경험은 부총리에 이르기까지 요직에서 만든 경제분석과 종합정책 등의 기초가 됐다.

2025년 6월 1차관으로 친정 재경부에 복귀한 뒤 1년여 만에 부총리가 됐다.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에서도 금융과 시장을 읽는 눈이 드러난다. 주재한 첫 F4 회의에서 경제·금융과 부동산을 함께 언급했고, 국채시장 안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냈다. "지켜보고 있다"에서 더 나아간 이 부총리의 국채시장 안정 메시지에 시장은 정말 정부가 국채시장 안정에 진심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부총리 체제에, 이번에는 권대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재경부 1차관으로 합류했다.

권 차관의 이력은 한국 금융정책의 변천사와 겹친다. 증권 집단소송제와 자본시장 제도를 다뤘고, ELS 같은 금융상품의 등장과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를 거쳤다. 금융이 단순히 은행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과 금융상품, 소비자, 부동산까지 얽힌 복합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나온 셈이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사무관, 서기관에 이어 분리, 신설된 금융위원회에서 은행과장과 금융정책과장을 거쳐 금융산업국장, 금융정책국장, 상임위원, 사무처장, 부위원장까지 올랐다. 금융산업과 정책을 두루 경험한 정통 금융정책 관료다. 금융위원회가 아니라 재경부 1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다.

재경위 국감, 이형일 경제부총리와 권대영 차관

(서울=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6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왼쪽)과 권대영 1차관이 의원들 질의를 듣고 있다. 2026.10.6 scoop@yna.co.kr

재경위 국감에 부총리와 1차관으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인연을 금융지주회사법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한 사람은 금융을 묶는 새로운 틀을 만들던 현장에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틀 안에서 한국 금융이 겪은 변화를 따라왔다. 자본시장 제도부터 금융상품, 저축은행 구조조정, 가계부채까지 금융정책의 굵직한 현장을 거쳤다.

사람의 이동이 보여주는 방향에 의미 부여도 따라왔다. 지난해 정부 조직개편 과정에서 막판에 무산됐던 재경부와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 조정론이 다시 고개를 든다. 당시에는 금융위의 국내금융 정책 기능을 재경부로 넘기고 금융위에서 금융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방안까지 논의됐다. 결국 현행 체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됐지만 논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금융위의 세종 이전 문제도 있다.

권 차관의 재경부행은 그 논의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번 인사를 곧바로 조직개편의 신호탄으로 볼 수는 없다. 당장 조직을 뜯어고치기보다 금융정책 경험이 풍부한 권 차관을 중심으로 재경부와 금융위의 정책 공조를 강화하는 데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재경부 내 변화의 밑그림은 또렷하다. 그동안 기획과 재정, 예산 중심의 수장에서 경제, 금융통 수장으로 바뀌었다. 금융이 경제정책의 결과를 따라가는 영역이 아니라 경제정책의 중요한 전달 경로가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가계대출과 연결되고, 재정은 국채시장과 금리에 닿는다. 산업정책은 금융회사의 자금 공급과 이어지고, 자본시장은 기업정책의 일부가 됐다.

경제와 금융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리고 금융을 아는 사람들이 재경부로 돌아왔다. (경제부장)

sykwak@yna.co.kr

곽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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