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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두의 금융나침반] 결제버튼이 사라진 다음

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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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는 점점 '사라지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돈을 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돈을 내기 위해 사람이 해야 하는 행동이 하나씩 사라져 왔다는 얘기다.

현금으로 물건을 사던 시절에는 지갑을 열어 돈을 세고 건넨 뒤 거스름돈을 받아야 했다. 신용카드가 나오면서 돈을 세는 일이 없어졌다. 카드 한 장만 내밀면 됐다. 그 다음에는 카드를 긁고 서명하던 일이 줄었고, 비밀번호 몇 자리를 누르거나 단말기에 카드를 갖다 대는 것으로 끝나게 됐다.

스마트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다. 카드 자체를 꺼낼 필요가 없어졌다. 간편결제에 카드를 한 번 등록해 놓으면 지문이나 얼굴 인증만으로 결제가 끝난다. QR코드를 찍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대기만 해도 된다. 이제 얼굴 결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확산하는 추세다. 지갑도, 카드도, 스마트폰도 꺼낼 필요 없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결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돌이켜 보면 결제 혁신의 방향은 꽤 일관됐다.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을 하나씩 줄여온 것이다. 현금으로 결제할 때는 돈을 세어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아야 했다. 카드는 이런 번거로움을 없앴고, 간편결제는 카드를 꺼내거나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수고를 줄였다. 얼굴 결제에 이르면 지갑도, 카드도, 스마트폰도 꺼낼 필요가 없다. 그러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다음 결제 혁신에서는 줄어드는 대상이 '행동'에서 '판단'으로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는 결제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가 혁신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무엇으로 결제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판단하는 일까지 기술이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결제할 때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한다. 어느 카드를 써야 할지, 이번 달 할인 한도는 남았는지, 포인트를 쓰는 것이 좋은지 모아두는 것이 좋은지 판단한다. 해외에서는 환율도 따져봐야 한다. 계좌에 현금이 충분하다면 계좌이체가 나을 수도 있고, 카드의 무이자 할부가 더 유리할 때도 있다. 재산이 여러 금융회사와 여러 상품에 흩어져 있다면 선택은 더 복잡해진다.

AI가 이 과정에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음 달 도쿄에 갈 건데 100만원 안에서 항공권과 호텔을 찾아줘"라고 부탁했다고 하자. AI가 가격과 일정을 비교해 상품을 골라주는 것까지는 이미 익숙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가진 여러 카드의 할인과 마일리지, 계좌 잔액, 환율, 포인트까지 살펴본 뒤 "이 항공권은 A카드, 호텔은 B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가장 유리합니다"라고 제안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결제의 재원도 다양해질 수 있다. 지금은 주로 예금이나 카드사의 신용으로 돈을 내지만, 미래에는 보유한 금융자산 가운데 무엇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지 AI가 판단할 수 있다. 주식이나 MMF 같은 자산은 결제 순간 필요한 만큼 자동으로 현금화하거나 다른 지급수단으로 전환하고, 스테이블코인이나 토큰화 예금처럼 지급 기능을 갖춘 자산은 직접 결제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변화에서 AI와 블록체인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AI가 수많은 선택지를 비교해 '어떻게 지급하는 것이 좋은지'를 판단한다면, 블록체인은 AI가 고를 수 있는 지급수단과 자산의 범위를 넓혀준다. 둘이 결합하면 결제는 단순히 카드와 계좌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개인의 금융자산 전체를 놓고 최적의 지급 방법을 찾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AI가 똑똑해진다고 이런 세상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연결이다. 어느 은행에 얼마가 있는지, 어느 카드의 혜택이 남아 있는지, 어떤 포인트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AI가 사용자의 동의 아래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가 금융회사별로 벽에 갇혀 있으면 AI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지급결제 제도는 은행 계좌와 카드라는 익숙한 세계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앞으로 토큰화 예금이나 스테이블코인 같은 새로운 지급수단이 등장하고 자산과 결제의 경계가 흐려진다면, AI가 이를 안전하게 비교하고 제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기반도 필요하다. 지급수단마다 규제의 칸막이를 만들어 놓는 방식만으로는 미래의 결제를 담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판단을 AI에 맡기자는 것은 아니다. 내가 허용한 한도 안에서는 AI가 알아서 결제하되, 일정 금액을 넘거나 위험한 거래라면 다시 승인받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결제의 편리함이 커질수록 사용자의 통제권도 함께 분명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결제 혁신은 우리가 직접 해야 할 '행동'을 줄여왔다. 앞으로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할 '고민'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최고의 결제 경험은 결제 버튼을 더 빨리 누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만 말하면, 내 금융정보와 시장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아 결제까지 매끄럽게 이어주는 것. 결제가 보이지 않을수록 결제는 더 편리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만나게 될 결제의 미래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장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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