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제동이 걸렸다. 국내외 18개 자산운용사가 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시장의 반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한다는 제도인데 정작 소수주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의무공개매수제도는 기업의 지배권을 취득하는 자에게 다른 주주들의 주식도 일정한 조건으로 공개매수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영국과 유럽연합(EU), 홍콩, 싱가포르, 일본 등 주요 선진자본시장에 도입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의무공개매수제도의 취지로 '경영권 프리미엄'의 공평한 공유가 주로 거론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취지는 지배권 이전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될 위험에 처하거나, 원치 않는 새로운 지배주주를 맞이하게 된 소수주주에게 매도할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EU 기업인수지침 제5조는 지배권 취득시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모든 주주의 보유주식 전부에 대해 공정한 가격으로 공개매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령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 자산 유출이나 불공정한 거래를 통한 사익 추구에 관심이 있는 기업사냥꾼이 지배권을 취득한다면 주가는 기업가치 훼손 우려로 급락해서 소수주주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반면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지분을 전량 매각한 지배주주는 매각 이후의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다. 오히려 기업가치를 가장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인수자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것이 의무공개매수제도의 핵심적인 취지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영국과 EU처럼 모든 주주의 보유주식 100%를 공개매수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개정안은 인수자가 지배주주 지분을 먼저 장외에서 매수한 후 이를 포함해 전체 발행주식의 50%+1주만 확보하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실상 지배주주에게 우선적인 매각 기회를 보장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지배주주 지분 40%를 먼저 인수한다면 소수 주주가 공개매수를 통해 팔 수 있는 주식은 소수주주 보유지분의 약 1/6인 10%+1주에 불과하다. 지배주주 지분이 50%를 초과한다면 소수주주 주식은 한주도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과연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인가.
M&A 위축을 우려해 100% 공개매수가 어렵다면, 적어도 지배주주 지분의 선행매수를 허용하지 않고 모든 주주가 동일하게 공개매수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청약 물량이 50%+1주를 초과하면 지배주주와 소수주주를 구분하지 않고 안분 매수하는 것이다. 인수자의 매수 의무나 자금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소수주주에게 공평한 매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같은 가격에 팔 권리뿐 아니라 같은 비율로 팔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안분비례 공개매수는 소수주주 보호를 넘어 M&A 시장과 자본시장의 건전성까지 높일 수 있다.
다시 지배주주가 40%를 보유한 기업을 생각해 보자. 인수자가 50%+1주를 안분비례 방식으로 공개매수하고 모든 주주가 응모한다면, 지배주주는 보유지분의 절반인 약 20%만 매각하고 나머지 20%는 계속 보유하게 된다. 이때 지배주주의 인수자 선택 기준은 달라진다.
지금처럼 자신의 지분을 전량 매각할 수 있다면 누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분매수로 인해 지분 일부를 계속 보유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의 매각가격뿐 아니라 새로운 지배주주가 기업을 얼마나 잘 경영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만, 기업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큰 인수자보다, 다소 낮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인수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매각대금뿐 아니라 잔여 지분의 미래가치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분비례 공개매수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기업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큰 인수자보다 기업가치를 높일 능력이 있는 인수자에게 지배권이 이전되도록 유도함으로써, 가치파괴형 M&A를 줄이고 가치증대형 M&A를 촉진해 자본시장의 건전성까지 높일 수 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좋은 인수자를 선택할수록 지배주주가 오히려 더 많은 지분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능한 인수자가 등장해 기업가치 상승이 기대된다면 상당수 소수주주는 공개매수에 응모하는 대신 주식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전체 청약 물량이 줄어들어 지배주주가 매각할 수 있는 지분은 오히려 늘어난다.
실제 M&A 시장에서도 기존 지배주주가 지분 일부를 남기거나, 매각대금을 다시 인수 펀드에 출자하는 롤오버(Rollover) 거래가 이루어지곤 한다.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유인을 소수주주 보호와 결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일부 M&A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선진증시에서 제도가 오랫동안 운영된 사실은 소수주주 보호와 기업인수시장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수자의 막대한 지배권 프리미엄이 소수주주의 희생을 통해서만 회수될 수 있다면 그런 M&A까지 활성화할 필요는 없다. 기업가치를 높이는 M&A는 장려해야 하지만, 기업가치를 파괴하는 M&A라면 일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지분 25% 이상을 취득하려면 원칙적으로 공개매수 절차를 거쳐야 했으므로 지배주주 지분의 선행 장외매수가 제한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이듬해 폐지되었지만, 약 3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도입하는 제도가 소수주주 보호라는 측면에서 과거보다 후퇴해서는 안 된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단순히 지배권 프리미엄을 나눠 갖는 제도가 아니다. 소수주주에게 원치 않는 지배주주와의 동업관계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고, 지배주주가 더 좋은 인수자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여야 한다.
100% 의무공개매수가 바람직하다. 다만, 그것이 어렵다면 적어도 선행매수 없는 안분비례 공개매수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장순환
sh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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