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은별 기자 = 한국이 시범 운항으로 개척에 첫발을 뗀 북극항로는 물류·에너지·안보를 둘러싼 강대국 간 주도권 경쟁의 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빙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협력을 넓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러 제재와 안보 대응으로 견제에 나섰다. 북극항로 활용을 추진하는 한국도 운항 효율과 제재 위험을 함께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11일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마치고 출항 50일 만에 무사 귀환했다.
지난 8월 부산항에서 출발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해를 통과해 영국 펠릭스토,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거쳐 이달 11일 부산에 입항했다. 국내 선사의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로 한국과 유럽을 왕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극항로는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는 지역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먼저 항로를 운영할 기반과 이를 이용할 수요를 결합하며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러시아의 쇄빙선·항만 인프라에 중국의 투자와 화물 수요가 더해지는 구조다.
러시아에 있어 북극항로는 자원 수출과 국제 물류망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단이다. 북부 연안을 따라가는 북방항로(NSR)의 인프라 운영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에 맡기고, 쇄빙선과 항만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항로를 이용할 선박과 화물이 늘면 러시아는 자국 인프라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북극의 석유·가스를 해외 시장에 공급하는 통로도 넓힐 수 있다.
중국에는 유럽 시장 접근과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은 2018년 북극정책 백서에서 일대일로와 연계한 '빙상 실크로드' 건설을 제시하고 항로 인프라 투자와 상업적 시범운항을 장려했다.
양국 협력은 선박과 항로 운영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은 올해 3월 중국·러시아 정기항로에 투입할 북극급 컨테이너선 설계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로사톰 계열사와 중국 선사가 2024년 체결한 협약에 이어 내빙 선박 건조를 추진하는 것이다.
중국 선사 씨레전드쉬핑은 올해 8월 중국과 유럽을 잇는 계절 정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항로 인프라를 가진 러시아와 화물·투자 수요를 가진 중국이 협력 범위를 넓히는 모습이다.
서방은 이러한 움직임을 안보 문제로 보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국(ODNI)은 올해 3월 러시아가 해상 교역과 자원 채굴, 군사 활동으로 북극에서 존재감을 키우려 한다고 평가했다. 중국도 제한적인 규모로 관여하고 있다고 봤다.
북극은 북미와 유럽을 연결하는 안보 거점이기도 하다. 북극권 8개국 중 러시아를 제외한 7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다. NATO는 올해 2월 북극의 억제·방어 태세를 강화하는 '아틱 센트리' 군사 활동을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 제재가 에너지 수익과 해운 기반을 겨냥하면서 북극항로의 지정학적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 EU는 올해 4월 러시아 LNG 운반선과 쇄빙선에 대한 EU 사업자의 정비 등 서비스 제공을 금지했다. 미국도 쇄빙선 운영사 아톰플로트와 '아틱 LNG 2'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한국의 북극항로 개척에도 이러한 대러 제재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시범 운항 준비 과정에서도 미국 등 관련국과의 조율이 난관으로 알려진 이유다.
이러한 지정학적 환경에서 북극항로 협력 상대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유준구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센터장은 올해 3월 발간한 '북극 지정학의 변화와 안보적 함의' 보고서에서 "북·중·러 협력 역시 일정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한국도 북극항로와 북극 에너지 공급망에 있어 한·일 협력 제고를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또한 그는 "한국도 북극항로와 에너지 허브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설의 확충, 추가적인 복합물류단지와 LNG 터미널 건설이 필요하다"고도 분석했다.
정부는 항로 개척과 제재 준수를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3일 북극항로 시범운항 환영식에서 "국제 규범과 국제사회의 제재 원칙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밝혔다.
ebyun@yna.co.kr
윤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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