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안철수]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슬기 허동규 기자 = 금융감독원이 내년 1월 공공기관 지정 여부 결정을 앞두고 '혁신지침 딜레마'에 빠졌다.
정부가 요구한 혁신지침을 받아들이면 조직·인사 등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가 강해져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지만, 수용하지 않으면 공공기관 지정 유보 조건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실제 지정 가능성이 커질 수 있어서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 기획조정국은 최근 사내 게시판에 혁신지침과 공공기관 지정 문제에 관한 입장을 담은 글을 올렸다. 혁신지침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직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이 혁신지침 마련에 나선 것은 지난 1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제시한 공공기관 지정 유보 조건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당시 공운위는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경영관리 측면에서 기타공공기관 이상으로 주무부처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원과 조직을 주무부처와 협의하고 경영공시를 강화하는 방안 등이 주요 내용이다.
혁신지침은 이러한 유보 조건을 구체화해 금감원의 조직과 정원 등 경영 전반을 관리하기 위한 별도 기준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조직·정원을 변경할 때 주무부처와 협의하고 경영 정보를 외부에 더 상세히 공개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공공기관에 적용되는 지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련되면 인력 운용과 임직원 처우 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노조가 문제 삼는 것은 이 같은 통제 방식을 별도 지침으로 명문화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를 검사하고 제재하는 감독기구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됐는데, 공공기관과 유사한 지침을 받아들이면 지정만 피했을 뿐 사실상 같은 수준의 행정부 통제를 받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조직과 정원에 대한 통제가 경영관리 영역에만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정 분야의 검사·감독을 강화하려면 담당 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무부처의 협의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정부 정책과 이해가 엇갈리는 감독 업무를 독립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반면 금감원으로서는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이행해야 공공기관 지정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혁신지침을 거부했다가 내년 공운위 심사에서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오히려 조직 운영 전반에 더 강한 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최근 금융위원회와 재정경제부, 공운위에 의견서를 보내 "금융감독기구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조직의 자율성과 역량을 약화시키는 혁신지침 제정 논의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행정부가 경영평가 등을 통해 금감원을 통제하면 검사·제재의 방향과 수위가 정부 정책에 좌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혁신지침 도입이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고 본다.
금융감독기구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통제의 주체는 행정부가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국회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권한의 독점과 폐쇄적 운영을 견제하려면 국회 감독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금감원과 노조는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공공기관 지정 가능성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유보 조건을 이행해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는 현실적인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고, 노조는 혁신지침이 또 다른 형태의 정부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접근법의 차이가 노사 갈등으로 이어진 상황은 아니라는 게 내부의 설명이다. 금감원과 노조는 혁신지침과 관련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내부 소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기 위해 혁신지침을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론까지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과거 공공기관운영법 시행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금융감독 업무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정에서 해제됐다.
내년 1월 공운위의 결정은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뿐 아니라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정부 통제 사이의 경계를 다시 정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은 공공기관 지정을 피하기 위해 공운위가 제시한 유보 조건에 따라 혁신지침을 이행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노조는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만큼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노사 갈등으로 볼 상황은 아니며 관련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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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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