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신고 부담↓…자금 조달 편의 높여 '원화 국제화' 뒷받침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지연 기자 = 정부가 원화 국제화를 위해 금융기관과 기업의 자금 조달·운용 절차를 대폭 손질한다. 은행의 일부 차입은 사전신고를 면제하고, 외국계 증권사 국내 지점에는 제한됐던 해외 차입을 허용해 원화를 빌리고 활용하는 문턱을 낮춘다.
아시아 대표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와 홍콩도 자금 이용의 자유와 금융시장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신고 절차와 싱가포르의 자금 사용 조건, 홍콩의 자본이동 원칙은 적용 대상과 성격에 차이가 있다.
◇은행 원화차입 사전신고 면제 확대…자금 활용 경로↑
16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13일 행정예고한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안은 원화국제화 로드맵에 따른 외환규제 완화를 구체화한 조치다. 지난달 16일 해외원화업무취급기관(RFI-K)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원화 조달·운용의 편의를 높이는 작업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외국환은행의 비거주자로부터 원화 차입은 '500억원 초과 장기차입 사후보고', '그 외 사전신고 면제'로 완화된다.
예컨대 은행이 비거주자로부터 원화 100억원을 빌리면 현재는 재경부 사전신고 대상이지만, 개정안에서는 사전신고가 면제된다. 거래 전에 거쳐야 하는 행정 절차가 줄어드는 것이다.
일반 기업 등 거주자는 다르다. 재경부 사전신고 기준이 연간 10억원 초과에서 500억원 초과로 높아지지만, 그 이하 거래에 대한 은행 사전신고는 유지한다.
외국계 증권사 국내 지점의 비거주자로부터 외화·원화 차입은 국내 법인과 같은 수준으로 허용한다. 그동안 제한됐던 해외 차입 경로를 열어 증권 결제 등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도록 지원하는 취지다.
다국적 기업이 사전에 신고한 범위에서 계열사 간 여유·부족자금을 빌려주거나 빌릴 수 있는 '자금통합관리'에는 원화를 추가한다. 기존에는 외화만 활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원화도 함께 관리할 수 있다. 최대 한도도 원화를 포함해 기존 5천만달러에서 1억달러로 확대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권투자 등을 위해 보유한 원화를 단기 금융상품에 운용할 수 있도록 투자전용계정 제도도 보완한다. 투자 대기자금을 원화로 보유하면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어지는 셈이다.
◇한국은 신고 문턱 낮춰…싱가포르는 사용처 조건·잔액 보고
자국 통화를 해외에서 쉽게 조달하도록 하면서도 거래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은 대출 규모에 따라 사전신고 기관을 나눈다. 이번 개정안은 한국은행 신고 기준을 300억원 초과에서 500억원 초과로 높이고, 500억원 이하에는 은행 사전신고를 적용한다.
싱가포르는 은행이 비거주 금융기관에 빌려준 싱가포르달러의 잔액을 매월 보고하도록 한다. 싱가포르통화청(MAS)의 은행용 준법 안내서는 관련 항목에 별도의 승인 신청이나 통지 사항을 두지 않고 있다.
다만, 돈의 사용처에는 조건이 붙는다. 관련 규정인 'Notice 757'에 따르면 은행이 해당 비거주 금융기관에 제공한 대출 등 신용공여 총액이 500만싱가포르달러를 넘고, 그 돈을 해외에서 사용한다면 인출할 때 외화로 바꾸거나 스와프해야 한다.
이 기준을 넘는 자금이 싱가포르달러 투기에 쓰일 것으로 볼 이유가 있다면 제공할 수 없다. 개인과 비금융기업은 해당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한국이 비거주자 대상 원화 대출의 신고 기준을 완화하는 가운데, 싱가포르의 사례는 자국 통화의 해외 이용을 허용하면서도 사용 목적에 따라 제한을 두는 방식을 보여준다.
한편 홍콩은 '자본이동의 자유'를 기본법에 명시하고 있다. 홍콩 기본법 제112조는 외환통제 금지와 홍콩달러의 자유로운 교환, 역내 및 역내외 간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보장한다. 제110조에는 법에 따른 금융시장 규제·감독 원칙도 담겨 있다.
한국도 거래 편의를 높이면서 위험 관리를 병행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재경부는 은행에 이미 적용하는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선물환포지션 제도 등을 고려해 차입 절차를 완화하고, 관계기관과 시장 영향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원화 차입과 관련해서는 엄청나게 풀어줬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굉장히 쉬워졌네, 편해졌네' 하는 느낌이 들 것 같다"고 평가했다.
투자 의향이 있어도 번거로운 신고 절차와 거래 시점을 놓칠 우려로 주저했던 투자자들의 진입 여건이 나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다만 거래량 증가는 별개의 문제"라면서 실제 거래 확대에는 국내 주식·채권의 투자 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경부는 오는 26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개정안을 확정해 연내 시행할 예정이다.
jykim2@yna.co.kr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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