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선 기자 =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전통적인 '사이클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과거 거시경제 흐름에 크게 좌우되던 세트(완성품) 수요와 달리 AI 메모리 수요는 단일 사이클 안에서도 팽창을 거듭하며 반복적으로 상향 조정된다는 분석이다.
장기공급계약(LTA)이 확대되면서 실적 방어력도 한층 견고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21일 '반도체, 다르다' 보고서에서 AI 시대 메모리 수요의 핵심 특징으로 '반복 재추정'을 꼽았다.
기존 PC나 스마트폰 중심의 전통 수요는 거시경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신규 모델 사양이 확정되면 기기당 메모리 탑재량이 정해지고, 이후 전체 수요는 판매량에 좌우되는 구조였다. 하나의 사이클 안에서 수요 전망이 크게 달라질 여지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AI 메모리 시장은 양상이 다르다.
수요처가 다변화된 데다 토큰 사용량과 동시 접속 세션, AI 에이전트 확산, 데이터 주권에 따른 인프라 복제 등 아직 성숙하지 않은 변수들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AI 서비스가 고도화할수록 기존 예상치를 뛰어넘는 메모리가 필요해지면서 수요 전망치 자체가 잇따라 상향되는 구조다.
특히 AI 에이전트 확산에 따른 추론 수요 증가와 지속학습(Continual Learning) 도입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전반적인 메모리 수요를 자극하는 핵심 동인으로 분석됐다.
반면 공급은 단기간에 탄력적으로 늘리기 어렵다. 수요 전망이 상향되더라도 물리적인 증설과 수율 안정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요 증가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고객사들은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위해 공급업체에 더 강한 증설 유인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공급계약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확대된 LTA는 메모리 업계의 실적 가시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장기간 물량을 확보하는 계약이 늘어나면서 가격 하단을 높이고 전체 사이클의 진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과거와 달리 고객사가 LTA를 파기할 때 감수해야 할 잠재적인 '위반 비용'도 커졌다.
당장 시장 가격이 내렸다고 계약을 깰 경우 다음 사이클에서 물량 배정 순위가 밀리거나 더 불리한 조건을 감당해야 할 수 있다. 필요한 메모리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AI 인프라 확충이 늦어지고 경쟁력이 떨어질 위험도 있다.
한동희 연구원은 "AI 시대 메모리의 차별화 포인트는 거시경제에 연동되지 않는 실적"이라며 "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펀더멘털의 구조적 변화에도 시장의 평가는 박한 상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3.5배와 2.8배 수준으로, 과거 메모리 다운사이클 최저점을 밑돌고 있다.
SK증권은 현재 주가가 2028년 이후 큰 폭의 감익 사이클이 시작될 가능성을 선반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I 수요 강세와 메모리 공급 부족 심화, LTA 위반 비용 등을 고려하면 극단적인 침체를 전제로 한 과도한 비관론이라는 게 SK증권의 시각이다.
산업의 수요와 계약 구조가 달라지고 있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과거 메모리 다운사이클의 잣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3분기 실적 발표와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가이던스는 분위기 반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10~11월 주요 빅테크의 실적 발표를 통해 AI 에이전트 확산과 AI 투자 로드맵이 재확인되면 설비투자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극단적인 우려가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GPU 임대 가격 상승세도 AI 인프라 투자금의 회수 기간을 단축해 투자 매력도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 발표에서는 공급 부족 장기화와 장기공급계약에 대한 높은 수요, 주주환원 의지 등이 재확인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 연구원은 "메모리 실적 가시성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밸류에이션도, 주주환원도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현시점을 메모리 매수의 적기로 판단했다. 반도체 업종에 대한 비중 확대 의견도 유지했다.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ks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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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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