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위원 12명 중 10명 진술 근거…정부 개입 이후 증거 '오염' 판단
(과천=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2.24 yatoya@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우리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패소한 가운데,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위원 12명 중 10명이 합병 시너지 효과의 조작 사실을 알았다면 합병에 반대했거나 반대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중재판정부의 판단이 공개됐다.
21일(현지시간) 공개된 엘리엇 ISDS 환송중재 판정문에 따르면 중재판정부는 정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30일 선고된 116쪽 분량의 판정문에는 정부 개입과 엘리엇의 손실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근거가 담겼다.
판정부는 제229항에서 투자위원들의 법정 증언과 검찰 진술조서를 근거로 "해당 진술은 만약 시너지 효과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면 12인의 위원 중 10인이 본건 합병에 반대하였거나 반대하였을 '가능성'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또 당시 투자위원회 회의록에 합병 찬성 이유로 '시너지 등을 고려하여'라고 명시된 점을 들어 시너지 효과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고 봤다.
판정부는 제235항에서 "국민연금의 투표 찬반 여부를 확정한 결정적인 장기적 요인은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지분의 가치평가 차이에 비추어 상당한 규모였던 국민연금의 전체적인 순손실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 조작된 시너지 효과였다"고 밝혔다.
시너지 효과를 제외하면 국민연금의 순손실을 상쇄할 수 없어 합병에 반대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 개입 동기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개입하지 않을 경우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할 것으로 판단했음을 시사한다고 봤다.
정부 개입 이후 형성된 증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판정부는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처음 접촉한 2015년 6월 30일 이후의 증거를 두고 제239항에서 "후발하는 모든 증거는 개입으로 인해 오염되었으며, 피청구국의 주장은 오염되지 않은 증거에 의해서만 입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합병에 찬성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개입 이전 증거로 입증해야 한다는 취지다.
[연합뉴스TV 제공]
판정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의 부당합병 관련 형사재판과 삼성물산 주주들의 국가배상 소송에 관한 국내 판결도 살폈으나, 국내 법원과 투자중재는 적용 법률과 증거 기준이 다르다며 독립적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제233항에서 "중재판정부는 제출된 증거를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청구인이, 개연성의 우위 기준을 적용하여, 만약 한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국민연금이 본건 합병에 반대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결론 내렸다.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니라도 정부 개입과 엘리엇의 손실 사이 사실적·법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 법원은 지난 2월 국민연금의 행위를 한국 정부의 조치로 볼 수 없다며 기존 중재판정을 일부 취소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판정부는 이에 따라 배상원금 4천849만438달러와 2015년 7월 16일부터 연 복리 5% 이자, 법률 비용 등의 지급을 명령했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양측 비용 등을 상계한 정부 지급액을 약 1억1천300만달러(약 1천530억원)로 집계했다.
ysyoon@yna.co.kr
윤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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