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ISDS 판정문에 드러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의 전모

26.10.23.
읽는시간 0분

대통령 지시→복지부 압박→투자위 표결…홍완선, '2조 시너지' 조작 지시

합병비율 하루 만에 1대 0.64→0.39…판정부 "정부 개입 없었다면 반대"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의 지시에서 출발해 보건복지부의 심의 절차 개입, 국민연금 내부의 표결 압박과 시너지 수치 조작으로 이어졌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21일(현지시간) 공개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 판정문과 2023년 6월에 나온 ISDS의 원판정을 종합하면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경위와 찬성 결론이 만들어진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중재판정부는 이번 환송 절차에서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민연금 엘리엇 압박에 기업들 초긴장 (CG)

[연합뉴스TV 제공]

◇ 청와대 지시에서 복지부 개입까지…반대 우려한 전문위 배제

시작은 2015년 6월 말 청와대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민연금의 삼성 합병 의결권 행사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중재판정부는 2018년 국정농단에 대한 국내 고등법원의 판단을 인용해 박근혜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계작업에 우호적인 합병 성사를 지원했다고 봤다.

당시 엘리엇이 합병 반대에 나서고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가 SK 계열사 합병에 반대하면서 삼성 합병도 전문위원회에서 부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문형표 당시 복지부 장관은 부처 간부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고, 6월 30일 복지부 관계자들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찾아 의결권을 외부 전문위원회가 아닌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가 관여한 사실을 외부에 말하지 말라는 언급도 나왔다.

조남권 당시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법정에서 전문위원회에 맡기면 합병안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돼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게 했냐는 취지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연합뉴스TV 제공]

◇ 홍완선, 위원 압박에 합병비율 조정·시너지 조작까지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찬성 결론을 위한 조치가 이어졌다.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위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 합병이 무산되면 외국계 헤지펀드에 국부를 팔아넘긴 '이완용'으로 몰릴 수 있다는 취지로 압박했다.

국민연금의 합병비율 가치평가도 하루 만에 크게 바뀌었다.

환송판정문 제154항에 따르면 엘리엇은 2018년 국민연금 자체 감사 결과를 근거로 당초 1대 0.64였던 합병비율 가치평가가 단 하루 만에 1대 0.39로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연금이 삼성 측 합병비율에 따라 입을 것으로 예상한 손실은 최소 1천388억원이었다.

홍 본부장은 이를 상쇄해 합병 찬성을 뒷받침할 시너지 효과를 산출하도록 지시했고, 리서치팀은 약 2조1천억원의 시너지 효과를 역산해 단 하루 만에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국 7월 10일 투자위원회에서는 위원 12명 중 8명의 찬성으로 합병 찬성 방침이 정해졌다. 국민연금의 찬성은 일주일 뒤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 가결을 좌우한 결정적 표였다.

'엘리엇 ISDS' 불복소송 승소 브리핑하는 정성호 장관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엘리엇을 상대로 한 ISDS 사건 중재판정 영국 법원 취소 소송 승소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6.2.23 pdj6635@yna.co.kr

◇ '사전 찬성설' 배척…국가 개입과 손실 사이 인과관계 인정

정부는 환송중재에서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6월 24일 국민연금이 이미 찬성하기로 내부 의견을 정했다는 소식통의 말을 전한 문자메시지도 제시했다.

그러나 판정부는 청와대와 복지부가 범죄행위로 인정된 개입까지 감수한 사실 자체가 국민연금의 반대를 우려했다는 정황이라고 봤다.

특히 복지부가 처음 국민연금에 접촉한 6월 30일 이후 자료는 정부 개입으로 '오염'돼, 개입이 없었더라도 찬성했을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투자위원들의 법정 증언과 검찰 진술조서에서 12명 가운데 10명이 시너지 조작을 알았다면 반대했거나 반대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판정부는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청와대·복지부 개입이 국민연금의 표결을 거쳐 엘리엇의 손실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정은 합병 자체의 효력이나 이재용 회장의 형사책임을 판단한 것은 아니다. 정부 개입이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을 바꾸고 외국인 투자자 손실로 이어졌는지를 판단한 것이다.

ysyoon@yna.co.kr

윤영숙

윤영숙

함께 보면 도움이 되는
뉴스를 추천해요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와 KB Think 글자가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금융용어사전

KB금융그룹의 로고입니다. KB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KB Think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