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통신 인프라·데이터 중요성 예견
기술 패권주의 속 과학기술 인재 육성 강조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서울=연합인포맥스) ○…혹자는 대한민국 산업사(産業史)가 이건희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2020년 10월 25일, 거인이 세상을 떠난 뒤 6년이 흘렀고, 삼성그룹은 인공지능(AI)의 개화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경영진은 23일 수원에서 호황의 기틀을 닦은 선대회장을 추도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인공지능 시대를 내다본 선각자였다.
20세기 말에 "21세기는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세기"라고 규정한 이 선대회장은 반도체와 컴퓨터, 통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인프라의 중심축도 도로·항만·철도 같은 교통 인프라에서 정보·지식·문화를 대량으로 신속히 옮기는 통신 인프라로 넘어간다고 30년 전에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는 디지털 인프라 확충에 열심이다. 얼마 전 다국적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50년까지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최대 50조달러(6경6천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지털 인프라가 인공지능의 몸이라면 데이터는 영양소다.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이 선대회장의 통찰도 놀랍다. 그는 1997년 출판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끈기 있게 생(生)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며 "일본이나 유럽의 50년 된 회사와 5년 된 회사의 결정적인 차이는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록 문화가 자리 잡아야 정보사회에서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 데이터에서 정보가 축적되고, 축적된 정보 속에서 지혜가 나온다는 혜안이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주요국이 살떨리는 경쟁을 펼치는 기술 패권주의도 이 선대회장은 미리 내다봤다. 30년 전,앞으로 나라 살림의 버팀목은 정보통신산업이라고 예견한 이 선대회장은 "과학기술이 부족하면 경제 식민지가 될 뿐 아니라, 국가안보마저도 남의 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9세기가 군사력, 20세기가 경제력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기술 패권주의 시대"라고 주창했다.
선각자의 예언은 현실화됐고, 우리나라 정부와 산업계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인공지능 2강에 맞서 주권을 지키기 위해 프론티어(첨단)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강대국의 인공지능이 군사전략을 짜고,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이 선대회장이 사비를 털어 시작한 반도체산업 덕분에 메모리라는 카드를 쥐고 게임 테이블에 앉아 있다.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 정부와 산업계가 기억해야 할 선각자의 유지(遺旨)는 바로 인재 양성이다.
이 선대회장은 '두뇌 천국'이라는 에세이에서 "앞으로는 두뇌가 경쟁력이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 한 명은 사업부 하나와 맞먹는다. 인재 육성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썼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수만 명을 먹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실제로 테크업계에서는 인공지능의 가장 큰 병목은 반도체·전력·물·땅도 아닌 바로 '사람의 두뇌'라고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3강으로 도약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두뇌를 키우고 모아야 한다. 교육 제도를 손보고, 천재를 길러내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천재를 한국으로 불러 모아야 진정한 '두뇌 강국', '인공지능 강국'을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이건희라는 거인이 다가온 시대를 예견하며 남긴 해답이다. (산업부 서영태 기자)
ytseo@yna.co.kr
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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