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대영 재정경제부 1차관(가운데)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열린 '가상자산 과세 관련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10.20 [재정경제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세종=연합인포맥스)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가 또 한번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회가 세법개정안 심사 절차를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최근 정부와 여당 내 기류를 감안할 때 유예 쪽에 무게가 실린다.
세제당국 수장인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 "최대한 숙고해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가상자산 과세 유예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가상자산 과세에 부정적인 청년층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내에서도 유예론이 우세하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유예에 찬성하고 있고, 과세 시행 시점을 늦추는 법안도 이미 국회에 발의돼 있는 상태다. 과세 유예를 위한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셈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6년 전에 처음 결정됐다. 국회는 2020년 12월 가상자산으로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연간 이익 중 기본공제액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22%의 세율을 적용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세 차례 유예를 거쳐 내년 1월 과세 시행을 앞두고 네 번째 유예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세 차례 유예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과세체계 미비'가 주된 이유였다. 이번에도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기엔 아직 과세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게 유예론자들이 제시하는 근거다.
가상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는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미국은 2029년부터 참여해 미국 거래소 이용자의 거래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일각에선 스테이킹·렌딩·하드포크·에어드롭 등에서 발생한 수익에 대해서는 명확한 과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타당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48개 국가가 이미 가상자산에 과세를 하고 있다는 점에선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앞서 세 차례나 유예된 만큼 가상자산 과세를 일단 시행하고 추후에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합리적인 정책 결정으로 보인다. 정부도 유예론이 확산하기 전까지는 이런 입장이었다.
이렇다 보니 재경부 내에서는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산 관련 세제는 손보기 어렵지 않겠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겉으로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을 내세우지만, 정무적 판단에 따라 정책이 좌초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폐지 수순을 밟은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해서도 대다수의 세제 관료들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지만,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형일 부총리도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금투세 도입에 관한 서면 질의에 "시장 여건이 충분히 안정된 이후 검토될 사안"이라고 답했다.
조세정책은 무엇보다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중요하다. 특정 정책이 시행을 한두 달 앞두고 매번 유예된다면 조세정책의 신뢰도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세법개정안을 심사하는 국회 조세소위원회가 열리기도 전에 정부에서 먼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시사하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경제부 차장)
wchoi@yna.co.kr
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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