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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미의 돈터치] 국고채를 너무 사랑한 죄

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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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약해지면 사려고 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외국인이 이끄는 채권 강세장을 지켜보는 국내 한 채권딜러의 말이다. 국고채 금리가 고점을 지났다고 보고 조정 때 매수하려던 국내 기관도 있었지만, 외국인의 강한 국채선물 매수가 이어지면서 충분한 매수 포지션을 쌓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뒤늦게 적극적으로 따라 산 하우스도 많지 않을 것으로 봤다. 북클로징까지 한 달가량 남은 상황에서 새로운 위험을 떠안기보다는 관망하려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금리가 높을 때는 추가 상승이 두려웠고, 금리가 내려오기 시작하자 다시 높은 금리를 기다리게 됐다. 방향에 대한 판단이 조금씩 바뀌는 동안 매수할 가격은 멀어졌다.

다른 증권사 채권딜러는 이를 좀 더 짓궂게 표현했다. 로컬이 적극적으로 채권을 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외국인에게 "딱 들켰다"는 것이다.

그가 전한 주변의 기대는 이랬다. 올해는 손익이 좋지 않으니 무리하지 않고 마무리하되, 금리는 높으니 내년에 다시 투자해 수익을 내자는 생각이다. 그런데 많은 투자자가 비슷한 미래를 기다린다면 시장이 그 기회를 순순히 내주겠느냐는 게 그의 의문이었다.

이 딜러는 "시장이 불편할 상황이 뭘까 생각했더니 롱(매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추가 약세도 고통스럽지만, 매수하지 못한 채 금리가 계속 내려가는 상황은 또 다른 부담이다. 보유 채권에서 일부 손실을 만회하더라도 올해 손실을 다 메우지 못하는 사이, 내년에 수익을 내려고 기다렸던 높은 금리마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딜러의 표현으로는 "내년 밥벌이로 쓰려던 여력이 올해 휘발돼 버리는" 상황이다.

금리가 조금만 오르면 사겠다는 기다림은 그래서 중립적인 선택만은 아니다. 매수를 미룬 투자자가 많아질수록 이들이 뒤늦게 채권을 사야 할 가능성도 시장의 변수가 된다. 이 딜러는 주저하던 로컬이 부족한 매수 포지션을 채우는 과정에서 강세가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물론 외국인이 국내 기관의 사정을 훤히 읽고 의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린다는 증거는 없다. '패를 읽혔다'는 표현은 수급과 심리의 쏠림을 설명하는 시장의 해석이다. 다만 조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은 곱씹을 만하다.

지난 3개월 간 외국인 투자자의 3년 국채선물 누적 순매수 추이

국고 3년물 민평금리 추이

이번 사이클에서 일부 외국인이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에 먼저 움직였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올해 상반기 긴축을 반영할 때 국내에서는 최종금리 3.25% 전망이 대다수였지만, 일부 외국계 기관은 3.75% 전망을 먼저 제시했다. 최근에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11월 인상을 유력하게 보고 이후 추가 인상 폭을 가늠하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은 국채선물을 사고 있다.

싱가포르 자산운용사인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롱렌고 채권 부문 매크로·테마 총괄은 한은에 여전히 추가 긴축 여지가 있다고 보면서도, 예상되는 긴축은 채권 금리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AI 관련 반도체 수요가 약해지면 시장이 예상한 추가 인상 가운데 일부가 되돌려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긴축이 끝났다는 확신을 기다리기 전에 가격에 얼마나 반영됐는지 따지고, 그다음 위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상반기에 높은 최종금리를 전망한 기관과 선물을 매도한 투자자, 지금 사는 투자자가 같은 주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존 매도를 되돌리는 숏커버링과 새로운 강세 베팅도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부 외국인의 시선이 긴축 위험에서 성장 위험으로 옮겨가는 동안, 로컬 일부는 지난 손실과 다음 매수 가격 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이를 전망과 실행 능력의 차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국고채를 너무 사랑한 탓일까. 정확히는 사랑을 거둘 자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자에게 한국 국채가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면, 국내 기관 상당수에는 계속 보유하고 거래해야 하는 주된 운용 자산이다.

기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자금 운용과 고객 거래, 시장조성 등의 역할에 따라 채권을 계속 보유하거나 거래해야 한다. 전망이 나쁘면 위험을 줄일 수는 있어도 시장과의 관계 자체를 끊기는 어렵다.

여러 나라의 채권과 통화를 비교하는 글로벌 투자자는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다. 한국 국채의 매력이 떨어지면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고, 가격이 충분히 조정됐다고 판단하면 돌아올 수 있다. 이들에게는 한국 국채를 사지 않는 것도 투자 결정이다.

이 차이는 긴축 과정의 손실을 평가할 때도 고려해야 한다. 시장에 남아 금리 상승을 견뎌야 했던 투자자와 노출을 줄인 채 진입 시점을 고를 수 있었던 투자자는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9월 말 4.11%까지 오르는 동안 손실을 입었던 국내 기관 일부에는 새로운 수익보다 기존 손실을 만회하는 일이 더 절박해졌다. 높은 금리가 매력적으로 보여도 추가 손실을 감수하며 매수하기는 어려웠다. 이후 금리가 내려가자 이번에는 추격 매수의 부담이 커졌다.

같은 가격을 보면서도 누구는 앞으로 벌 돈을 계산하고, 누구는 이미 잃은 돈(본전)을 먼저 생각하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관망이 불가피했던 것은 아니다. 운용 제약이 비슷해도 위험을 줄이고 다시 늘리는 판단은 달랐다. 이번에 강세를 예상했다는 증권사 딜러 역시 국내 참가자다. 외국인과 로컬이라는 구분만으로 투자 판단의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누적 손실과 북클로징이라는 제약 속에서 내년을 기다리는 선택이 한쪽으로 쏠렸다면, 그 기다림도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격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원하는 수준에서 다시 살 수 있으리라는 가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외국인의 매수가 결국 옳았는지도 아직 알 수 없다. 성장과 물가, 통화정책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면 채권 금리는 다시 오를 수 있다. 먼저 움직이는 데는 그만큼의 위험이 따른다.

로컬의 어려움을 전망 실패로만 돌려서도 안 되지만, 시장에 남아야 한다는 사정이 원하는 매수 가격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내년에는 높은 금리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시장이 그 금리를 남겨놓을 때 가능한 일이다. (경제부 시장팀장)

smjeong@yna.co.kr

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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