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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서의 조곤조곤] 고객에겐 주식, 자신에겐 이자

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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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고객한테는 사라고 그러고 자기는 주식 투자를 안 하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증권업계를 향해 뱉은 쓴소리다. 증권사가 고객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하면서, 정작 자기자본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는 비판이었다. 경쟁사의 경영 방식을 겨냥한 발언일 수 있지만, 숫자를 들여다보면 쉽게 흘려듣기 어렵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은 주식시장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가장 조심스러운 플레이어다. 증시가 활황이면 수수료가 늘고,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돈을 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돈을 운용할 때는 좀처럼 주식을 선택하지 않는다. 시장을 키우자고 외치면서 그 시장의 위험은 정작 고객에게 맡긴다.

올해 6월 말 금융기관의 자산 총액은 6천조원을 넘어섰다. 이중 운용 목적으로 보유한 국내 주식은 단 76조원 남짓, 전체의 1%를 간신히 넘겼다. 금융시장의 거대한 자금 창고에서 국내 주식에 배정된 자리는 구석자리다.

은행은 사실상 주식시장 밖에 서 있다. 4천조원에 육박한 시중은행 자산 중 국내 주식은 2조2천억원, 0.06%다. 보험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증권사가 조금 낫다고 하지만 자산 내 주식 비중은 10%에도 한참 모자란다. 이조차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업무와 파생상품 헤지에 따른 물량이 반영된 점을 고려하면 존재의 의구심마저 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보다 대출이 익숙하고, 투자보다 이자가 편해서다. 은행에는 위험가중자산(RWA)이라는 지켜야 할 울타리가 있고, 보험사 역시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따른 건전성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기업에 위험자본을 공급하고 투자자를 연결하는 증권사는 이야기가 다르다. 오늘의 증권사는 그저 자기 돈을 쓰는 순간에는 신용공여와 이자, 상품 판매와 수수료라는 익숙한 계산서만 꺼낸다.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정작 기업의 성장에 오래 동행하는 데는 주저하는, 투자할 기업을 찾는 것보다 투자할 고객을 찾는 일이 더 익숙해진 게 증권사의 오늘이다.

그 대가는 시장과 고객의 몫이고, 이는 상승장보다 하락장에서 선명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지수가 쏠리고, 외국인이 대규모 매도에 나서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 국내에서 매물을 꾸준히 받아줄 장기 투자층이 충분하지 않아서다. 주식을 던지는 외국인은 야속하지만, 막을 수도 없다. 그저 우리 시장 안에 그 물량을 감당할 자금의 뿌리가 얕음을 탓해야 한다.

물론 해외라고 금융회사가 직접 주식을 대거 사들이지는 않는다. 미국은 오히려 볼커룰로 은행의 자기계정 단기매매를 원칙적으로 제한한다. 대신 401(k) 퇴직연금과 뮤추얼펀드, 자산운용기관을 통해 장기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간다. 개인의 노후자금이 전문적인 운용 체계를 거쳐 기업의 성장자금이 되는 선순환 구조다.

반면 국내는 사정이 다르다. 금융회사들의 직접 주식 투자 비중은 미미하고, 퇴직연금은 오랫동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치우쳐 있었다. 정작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의 성장에 투자할 돈을 길러내는 일에는 인색했던 셈이다.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연내 증시 정상화 방안을 내놓겠다며 분주하다. 저평가 기업을 바꾸고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기업을 시장에 세우는 것과 그 기업에 오래 투자할 자본을 만드는 일은 별개다. 선수를 바꾸는 데만 열중한들 텅 빈 관중석이 저절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금융회사에 무작정 주식을 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장기 투자와 위험자본 공급에 나설 유인을 만드는 게 정책의 역할이다. 다만 금융회사도 돌아봐야 한다. 기업의 미래를 평가하고 투자자에게 성장의 과실을 설명하면서, 왜 자신들의 사업 모델은 그 성장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이자와 수수료를 거두는 데만 치중하는지 곱씹어 봐야한다.

개인투자자는 서운하다. 금융회사의 권유를 받아 주식을 산 고객이 손실을 감당하는 동안 금융회사는 대출이자를 받고 거래수수료를 챙긴다. 물론 투자 위험의 귀속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차이가 금융회사의 안일한 사업 구조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자본시장의 성장을 말하는 금융회사가 정작 성장의 위험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시장의 동반자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시장 앞에서 입장권만 파는 매표원일까. (경제부 정치팀 차장)

여의도 증권가

[촬영 안 철 수] 2026.2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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