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영국 정부가 이례적인 캠페인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소 3일치 식량(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통조림, 견과류 등), 손전등, 담요, 구급상자, 현금, 라디오 등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른바 'Be Ready' 캠페인이다. 영국정부는 앞으로 3년간 진행될 이 캠페인은 가정의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국가비상 플랜으로 내놓았다.
일본도 비슷한 재난 대비책을 발표했다. 방재청이 "최소 3일분, 가능하다면 1주일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식량, 화장실 용품, 물 등을 준비할 것을 권고했다.
두 나라의 때아닌 비상 대응책은 자연재해, 테러, 전쟁, 감염병 뿐 아니라 정전이나 사이버공격 가능성도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이는 전력과 수도, 전화·인터넷 서비스가 끊겼을 경우를 대비하는 측면이 크다.
영국 정부는 사이버 공격, 시설 파괴 또는 교란을 일삼는 사보타주(sabotage), 허위정보 유포 등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전쟁을 염두에 뒀다.
일본의 경우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쪽에 무게가 실렸지만 그럼에도 전기를 쓰지 않고도 3일 이상 생존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영국 정부의 캠페인에는 준비 목록에 포함된 '현금'이다.
이는 해킹과 같은 사이버공격 발생 등으로 카드, ATM 결제 장애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전자 결제 뿐만이 아니다.
만약 해킹이나 사이버 테러로 입출금이 안될 경우라면 개인의 금융 자산은 고스란히 사이버 머니 상태가 된다.
계좌에 있지만 잠겨있어 쓸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최근 국내 금융, 증권 업계에서 연달아 해킹 사태가 발생하는 점으로 미뤄볼 때 사이버 공격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다.
KB국민은행, 새마을금고, 미래에셋생명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해킹 사태는 금융투자업계로 번졌다.
28일 오전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이날 오전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정례 간담회의 모두발언에서 "전날 주요 금투사 쪽에서 전반적인 해킹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안다"며 IT 보안을 당부했다.
이어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빗썸 등이 해킹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부는 통신이나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관련 시스템 등을 포함해 111개 기관 대상으로 집중 보안점검에 나섰다.
해킹 사고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코스피는 5,900선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오히려 국내 증시는 최근 너무 깊은 골을 형성한 만큼 반등 기대가 크다. 미국 인공지능(AI) 기업인 앤트로픽의 기업 공개(IPO) 기대가 커진 데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총 10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을 밝히면서 증시 회복에 불을 지폈다.
아직 우리 금융권에서 발생한 해킹 사고들도 일부 정보 유출 외에 추가적인 위험 요인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해킹 사고는 겨우 바닥을 다지고 있는 우리 증시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셈이다.
주식 투자든, 예금이든 개인의 자산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충분한 실물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입출금이 막히고, 신용카드도 못쓰게 될 경우라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일부 금융기관 해킹에서 그치지 않고 사이버 테러가 확산한다면 계좌에 돈이 있어도 디지털 금융자산으로 실생활에서는 생필품을 사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 테러의 위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장과 금융기관 부실이 없는 상황에서도 신뢰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런 해킹 위험으로 자금을 인출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자칫 뱅크런, 펀드런과 같은 인출 사태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은 과거와 달리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미 지난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뱅크런이 발생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하루 만에 420억달러가 빠져나갔고 파산까지 약 36시간 걸린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 SVB 사태 이후 당시 이창용 전 한은 총재는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면 뱅크런이 100배 빨랐을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주식시장에 겨우 온기가 퍼지고 있는데 사이버 테러라는 돌발 변수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증권부장)
syjung@yna.co.kr
정선영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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