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주주에겐 일상인 시가 매각, 지배주주에겐 왜 M&A 위기인가
시장이 스스로 깨고 있는 계급, 정책이 역주행해 지켜주려한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가 의무공개매수제도 재논의 촉구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9.30
(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자본시장에는 법에도 없는 이상한 신분제가 하나 있다.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구분이다. 똑같은 주식을 들고 똑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주식회사 동업자인데, 누군가는 두둑한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겨 떠나고 누군가는 평생 시세판만 봐야 한다.
일반주주들에게 주식을 시가(市價)에 파는 것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당연한 숙명이다. 그런데 이 일상적인 잣대를 지배 주주에게 들이대면, 별안간 자본시장의 활력이 꺾인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 봉건적인 차별이 한국 주식시장의 민낯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두고 의견을 구했다. 열린 공론장을 띄운 듯했지만, 시장이 읽는 함의는 다르다.
"주주 평등이라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체질 개선과 자본시장의 활력이 꺾인다면 장기적으로는 소액주주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 때문이다.
권력자의 언어에서 '지나친 규제'라는 말은 주로 기득권의 불편을 대변할 때 쓰인다. 주주 평등을 지나친 규제로 깎아내리며, 결국 '대주주 지분 우선 매수'에 힘을 실어준다는 시장의 우려가 크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내세우는 명분은 늘 그렇듯 시장 위축이다. 모든 주주에게 공평한 매각 기회를 주면, 지배주주가 남은 주식을 프리미엄 없이 시가에 처분해야 하는 '문제'가 생겨 인수합병(M&A)이 위축된다는 논리다.
묻고 싶다. 일반 주주에겐 너무나 일상적인 시가 매각이, 왜 지배주주에게만 적용되면 M&A마저 꺾어버리는 문제로 취급받는가. 지배주주 개인의 손해를 시장 전체의 위기로 포장했을 뿐이다.
게시글에 달린 민심이 "왜 정부가 나서서 대주주와 인수자의 주판알을 대신 튕겨주느냐"며 싸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 엑스(X·옛 트위터)]
전임 윤석열 정부가 설계하고 이재명 현 대통령이 '절충적 의견'으로 소개한 이번 입법안은 자본시장의 오랜 불평등을 아예 법으로 고착하려는 시도다.
인수자가 지배주주 지분부터 전량 매수하고, 남은 한도 내에서만 일반 주주 지분을 제한적으로 사들이도록 합법적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지배주주는 프리미엄을 온전히 실현하고 퇴장하지만, 일반 주주는 남은 주식을 쥔 채 낯선 새 주인과 원치 않는 동행을 감내해야 한다.
복잡한 셈법은 필요 없다. 처음부터 모든 주주에게 같은 비율로 기회를 주면 된다. 지배주주가 거래를 꺼릴 수 있다며 '프리미엄 독식'을 보장해 주는 것이, 과연 그가 약속했던 '경영권 프리미엄 공유'인가.
회사가 합병 등으로 재편될 땐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방어막이 있다. 그런데 지배주주가 바뀔 때는 이 권리가 없다. 새 지배주주가 배당을 줄일지, 사익을 편취할지 모르는 위험을 일반 주주가 고스란히 떠안는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이들에게 '나도 떠날 권리'를 주는 장치다. 프리미엄은 지배주주가 던져주는 개평이 아니라, 변화의 위험을 함께 지는 '동업자'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몫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도 이 지점에 있다. 한국 기업이 늘 싸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지배주주의 지분만큼은 언제나 비싸게 거래되기 때문이다. 기업 자체가 싼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프리미엄을 독식해 떠나고, 누군가는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하는 고질적인 '주주 계급'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흉이다.
시장은 이미 불합리를 스스로 깨고 있다. 베인캐피탈(에코마케팅)과 EQT파트너스(더존비즈온)는 일반 주주에게도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을 제시했다. 맥쿼리의 가비아 공개매수 때는 주주들의 행동으로 매수가가 올랐고, 자회사 일반 주주에게도 전량 매각 기회가 열렸다. 법 없이도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시장은 한 발씩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정책은 역주행을 준비 중이다. 1997년에 잠시 도입됐던 제도보다도 한참 후퇴한 기준을 들이민다. 절충과 균형이라는 명분으로 프리미엄 독식에 합법적 면죄부를 쥐여주는 퇴행이다.
거래가 많은 것과 좋은 거래가 일어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정책이 장려해야 할 것은 지배주주 홀로 과실을 챙기는 뒷거래가 아니라, 모든 주주가 공정하게 가치를 나누는 시장이다.
대통령이 합리적 균형점을 묻는 것은 환영하지만 우려의 방향이 아쉽다. 지배주주가 지분을 전부 팔지 못해 M&A가 위축될까 걱정하기 전에, 일반 주주는 왜 같은 조건에 팔지 못하느냐고 묻는 게 먼저다.
주식회사에 주주의 계급은 없어야 한다. 1등 주주는 비싸게 먼저 털고 떠나고, 2등 주주는 남는 법. 그런 법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증권부 이규선 기자)
kslee2@yna.co.kr
의무공개매수제도 재논의 촉구 기자간담회 자료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선 공약집(2025년 5월)]
이규선
kslee2@yna.co.kr
금융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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