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에 집중된 매수세…연기금·투신·사모펀드는 순매도
外人 매도에 취약한 수급 구조…장기 기관투자자 육성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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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이 날 코스피는 1% 넘게 내려 하루 만에 6,000선을 반납했다. 지수는 전장보다 74.78포인트(1.24%) 내린 5,937.66으로 장을 마쳤다. 2026.10.29 jjaeck9@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원 기자 = 국내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순매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증시의 하방을 지지할 장기 투자자 기반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 전체로는 매수 우위를 기록했으나 증권사 등이 포함된 금융투자 부문에 자금이 집중됐고,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전통적인 기관투자자들은 오히려 주식 비중을 줄였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개인의 간접투자가 금융투자 순매수로 집계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기관의 순매수 규모만으로 국내 전문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이 확대됐다고 판단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28일부터 이달 27일까지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투자자는 약 8천299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금융투자 부문의 순매수액은 약 1조7천700억원에 달했다. 금융투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관투자자는 합산 기준 약 9천400억원을 순매도한 것으로 계산된다.
기관별로는 투자신탁이 5천336억원, 사모펀드가 1조400억원, 연기금이 2천774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기관투자자 전체의 매수 우위와 실제 장기 투자자들의 매매 방향이 엇갈린 것이다.
이 기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27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기관의 순매수가 지속됐음에도 코스피가 큰 폭의 조정을 피하지 못했던 배경에는 이 같은 수급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투자에 쏠린 순매수…ETF가 바꾼 기관 수급
기관투자자 가운데 금융투자 부문의 매매 비중이 커진 것은 ETF 시장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거래소가 집계하는 금융투자에는 증권사의 자기자본투자(PI)뿐 아니라 ETF 유동성공급과 설정·환매, 차익거래 등에 수반되는 주식 매매가 포함된다.
개인투자자가 국내 주식형 ETF를 매수하고 해당 상품의 설정 수요가 늘어나면 지정참가회사(AP) 등을 통해 기초자산 매수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의 주식 매매가 금융투자 수급에 반영된다. 다만 ETF의 장내 거래가 모두 새로운 기초주식 매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정과 환매, 헤지 거래 등의 영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금융투자의 대규모 순매수를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국내 주식을 장기 보유하려는 투자와 동일하게 해석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지난 2월에도 기관투자자는 코스피에서 9조원 넘게 순매수했지만, 이 가운데 8조원 이상이 금융투자 부문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당시 보험과 연기금 등은 순매도 우위를 보였다.
ETF를 통한 개인 자금의 유입은 국내 증시의 새로운 매수 기반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자금의 성격은 운용사가 기업가치를 분석해 장기 투자하는 액티브 자금과 차이가 있다.
특히 ETF 투자자들의 환매가 확대되거나 지수 추종 자금의 유출이 발생하면 금융투자 수급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기관 전체의 순매수보다 금융투자와 연기금, 투자신탁 등 세부 주체별 동향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기금은 비중 관리, 증권사는 자본 부담…장기 매수 기반 취약
국내 증시의 기관투자자 기반이 취약하다는 지적은 최근 증시 급락 과정에서 다시 부각됐다.
지난 15일 코스피는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에 7.57% 급락한 5,554.22로 마감했다. 기관과 개인이 순매수에 나섰지만 매도 압력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달 28일 코스피가 6.63% 급반등한 뒤 29일 다시 1.69% 하락한 5,910.89로 밀리는 등 변동성이 이어진 것도 안정적인 매수 기반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 역시 증시의 하방을 무조건 방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5월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상향 조정했다.
주가 급등에 따라 높아진 국내주식 보유 비중을 자산배분 계획에 반영하고, 기계적인 리밸런싱에 따른 매도 압력을 줄이려는 조치였다.
다만 목표 비중 상향이 곧바로 신규 매수 여력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금의 운용 목적이 가입자의 장기 수익률과 안정성 확보에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신지급여력제도(K-ICS)에 따른 자본 부담을 관리해야 하고, 증권사 역시 자기자본 투자에 수반되는 시장위험과 자본 적정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최근 국내 기관투자자 기반의 취약성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회장은 지난 27일 경희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고객한테는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주식 투자를 안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한국 증시의 기관투자자 기반이 약하다는 점을 거론하며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 물량을 받아낼 국내 장기 투자자들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증시의 수급 구조를 개선하려면 기관투자자의 양적 확대뿐 아니라 투자 방식의 변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퇴직연금 기금화와 전문 운용체계 확대가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퇴직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확대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기보다는 수익률과 위험관리 능력을 높여 장기 투자자금을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 정상화 역시 외국인 자금 유입이나 개인투자자의 ETF 매수에만 의존해서는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일시적으로 받아내는 것과 기업의 중장기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위험자본을 공급하는 것은 서로 다른 역할"이라며 "기관투자자의 순매수 규모가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증시의 수급 불안이 반복되는 만큼, 국내 기관의 실질적인 위험자산 투자 여력과 장기 운용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자본시장 정상화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jwon@yna.co.kr
정원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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