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추경으로 경기 회복 마중물…728조 예산으로 AI 성장 기반 구축
중동 충격엔 '성장의 불씨' 방어…821조 예산으로 성장 과실 확산 전환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단기 경기 부양에서 성장잠재력 확충을 거쳐 성장 성과의 확산으로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출범 직후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던 정부가 올해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분을 미래 성장동력과 지역·계층 간 격차 완화에 재투자하는 새로운 재정 운용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네 차례 국회 시정연설에서 사용한 표현에서도 확인된다.
첫 시정연설의 핵심이 '경제는 타이밍'이었다면 두 번째는 'AI 고속도로', 세 번째는 '성장의 불씨', 네 번째는 '모두의 성장'으로 옮겨갔다.
경제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출발해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대외 충격으로부터 회복세를 방어한 뒤 성장의 과실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겠다는 구상으로 발전한 셈이다.
특히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이 제시한 'V자형 회복'과 'K자 성장'이라는 두 표현은 현재 정부가 인식하는 한국 경제의 성과와 구조적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거시경제 지표가 개선되고 있지만, 회복의 온기가 내수와 고용, 지역경제로 충분히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 '경제는 타이밍'…30조 추경으로 경기 하강 방어
지난해 6월 26일 첫 시정연설 당시 정부가 직면한 과제는 경기 하강의 저지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22일 만에 국회 연단에 올라 30조5천억원 규모의 추경안 편성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너진 경제를 회복하고 민생경제를 살리는 일은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경제위기에 정부가 손을 놓고 긴축만을 고집하는 건 무책임한 방관"이라며 적극적인 재정 투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시기에 우리 경제는 내수 부진과 투자 위축으로 성장세가 약화한 상황이었다. 소비 부진이 자영업과 소상공인 등 취약 부문의 부담을 가중시키면서 정부는 추경을 통한 소비 진작과 경기 회복에 집중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추경을 '경제위기 가뭄 해소를 위한 마중물이자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재정의 역할을 경기 하강을 막고 민간 경제활동을 되살리는 데 둔 것이다.
◇ 'AI 고속도로'…경기 부양에서 생산성 혁신으로
지난해 11월 4일 두 번째 시정연설에서는 경제 진단부터 달라졌다.
이 대통령은 "다행히 지금 우리 경제는 위급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며 경기 회복의 초기 성과를 언급했다.
정부 출범 후 처음 편성한 2026년도 본예산은 728조원 규모였다.
당장의 소비를 뒷받침했던 첫 추경과 달리 본예산에서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구조를 전환하는 데 정책적 비중을 뒀다.
이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의 고속도로를 깔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의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 이제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해 도약과 성장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강조했다.
AI 관련 예산을 10조1천억원으로 확대하고 제조업과 로봇, 자동차, 조선 등 주력산업에 AI를 접목하는 구상을 제시한 게 골자였다.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의 역할이 단기 수요 진작에서 중장기 공급 능력 확대와 생산성 혁신으로 확장된 것이다.
◇ '성장의 불씨'…중동발 충격에 다시 방어적 재정
올해 4월 2일 세 번째 시정연설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이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에너지 공급망 불안이 확대되면서 회복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가 새로운 충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중동 전쟁이 야기한 중차대한 위기 앞에 우리 국민의 삶과 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어렵사리 되살린 경제 성장의 불씨가 사그라들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후 정부는 26조2천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고유가 부담 완화와 민생 안정, 산업 피해 최소화, 공급망 대응 등에 재정을 투입했다.
첫 추경이 내수 부진으로 인한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추경은 외부에서 발생한 공급 충격이 국내 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재정이 경기 회복을 촉진하는 역할뿐 아니라 외부 충격으로부터 성장 기반을 보호하는 완충장치로 기능해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난 시기였다.
◇ '모두의 성장'…반도체 호황을 성장 확산의 재원으로
이날 국회에서 열린 네 번째 시정연설에서는 성장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한 단계 더 확장됐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뚜렷한 V자형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 3.8% 성장률과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 가능성, 잠재성장률 2년 연속 반등 전망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라 경제는 좋아졌는데 내 살림은 여전히 팍팍하다는 국민의 절박한 호소, 내 삶이 나아지지 못한다면 성장이 무슨 소용이냐는 무거운 질문에 답해야 할 때"라며 개선된 거시 지표에 내재된 위기의식을 경계했다.
거시경제 회복이 국민의 삶의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성장의 불균형을 'K자 성장'의 한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낡은 이분법적 논쟁에서 벗어나 달라진 시대와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성장 공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소수의 성장'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모든 국민이 성장의 기회와 성과를 고르게 누리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은 820조9천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했다.
이번 예산안의 핵심은 반도체 호황 등으로 확보한 추가 세수를 청년과 미래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개 분야에 재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 신설이다.
이날 이 대통령이 미래대응기금을 "잠재성장률 반등을 뒷받침하는 전략적 투자 플랫폼이자, 확대되는 세수 변동에 대응하는 혁신적 재정안정 장치"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발생한 재정 여력을 다른 산업과 지역, 계층의 성장 기반으로 확산하는 동시에 경기 변동에 따른 재정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이러한 구상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와 경제성장 전망이 실현된다는 전제에 영향을 받는다.
네 차례 시정연설에서 재정에 부여한 역할은 경기 하강 방어에서 생산성 혁신, 대외 충격 대응을 거쳐 성장 성과의 확산으로 변화했다.
최근 경제 회복에 반도체 업황 개선 등 대외 요인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재정 투자가 내수와 고용, 지역경제에 얼마나 파급되는지가 중요해졌다.
이 대통령이 시정연설 말미에 "관건은 실행과 속도"라고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각 부처별로 3대 사회정책 등 정부가 제시한 'V자형 회복'이 'K자 성장'의 한계를 넘어 국민의 실질소득과 일자리 개선으로 이어가기 위한 액션플랜을 가동 중"이라며 "향후 경제 정책의 성과는 이들이 보여주는 숫자와 숫자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에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2027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2026.11.2 dwi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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