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국내외 장기금리가 상당 폭 하락했다. 그동안 금리 급등으로 채권 평가손실과 자금조달 비용 상승을 겪었던 시장에는 반가운 변화다. 이번 하락을 이해하려면 명목금리의 움직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실질금리와 물가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10월 5일부터 30일까지 10년물 국채금리는 5.31%에서 4.94%로 37bp 내렸다. 같은 만기 물가연동국채의 실질수익률은 2.95%에서 2.60%로 35bp 하락했다. 두 수익률의 차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 기간의 하락은 물가에 대한 보상보다 실질금리 쪽의 움직임이 컸음을 보여준다. 이 차이에는 기대인플레이션 외에 위험 보상과 유동성 요인도 섞여 있지만, 적어도 이번 하락을 주로 물가 전망의 개선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실질금리 하락의 배경에는 AI 투자와 자금조달에 대한 기대의 조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장기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그러나 투자 수익성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평가하면서 자금 수요에 대한 예상도 달라지고 있다. 주가 하락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역시 국채 매수를 뒷받침했다.
이처럼 투자 기대와 위험선호의 변화를 반영한 시장금리 하락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과 이에 대응한 정책금리 인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목표를 웃도는 기간은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3분기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의 상승률은 전기 대비 연이율 2.5%로 2분기보다 낮아졌다. 다만 전년 동월 대비로 보면 9월 전체 PCE 물가는 3.6%,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3.1% 올랐다.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것과 2% 목표에 안정적으로 도달하는 것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에도 이러한 우려가 담겨 있다. 연준 스태프는 2026~2028년 물가 전망을 7월보다 높였다. 관세와 지정학적 요인, AI 투자의 영향이 약해지면서 물가상승률이 둔화하겠지만 2% 목표에는 2029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보다 물가 압력이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을 들어 물가 전망의 위험도 상방에 기울어 있다고 봤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연구진도 10월 15일 전망에서 노동비용 상승세가 둔화했는데도 근원 서비스물가의 상승세가 지난 2년간 지속됐다고 지적했다. 에너지와 관세 충격이 점차 약해진다는 전제에도 물가가 2%에 도달하는 시점을 2028년 말로 예상했다. 물가 안정에 이르는 마지막 구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안정까지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비용 상승이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시차도 살펴야 한다.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가 올라도 기존 계약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가격 조정이 미뤄질 수 있다. 이후 계약이 갱신되고 중간재 비용이 최종 제품에 반영되면서 물가 압력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다.
AI 투자 역시 생산성 향상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장기적으로는 생산능력 확대와 비용 절감이 뒤따르지만, 그 혜택이 경제 전반으로 퍼지기 전에 전력과 설비, 인력의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
미국 물가의 목표 복귀가 늦어진다면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도 오래 이어질 것이다.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는 이런 긴축의 기간에 관한 판단이다. 물가 압력이 여러 해에 걸쳐 이어진다면 긴축도 그에 맞는 긴 시계를 가져야 한다.
미국의 이러한 물가와 정책금리 흐름은 환율을 통해 한국에도 영향을 준다.미국의 정책금리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을 오래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면 달러를 지지하는 요인이 된다. 이는 수출 호조와 경상수지, 외국인 자금 유입에 따른 원화 강세 압력을 완화하고 그에 따른 물가 안정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한국은행은 7·8월 연속 인상에 이어 10월 22일 기준금리를 연 3.00%로 동결했다. 두 차례 인상의 파급영향을 점검하면서도 물가 위험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앞으로의 긴축 정도와 기간은 국내 수요와 물가, 환율의 영향을 함께 평가해 결정해야 한다. 시장금리의 변동에 담긴 정보를 읽되 물가 압력이 실제로 얼마나 줄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긴축이 물가 안정에 대한 신뢰를 얻을 때는 장기금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장기채 투자자는 평균적으로 예상하는 물가상승률 외에도 물가가 예상을 크게 웃돌아 채권의 실질가치가 훼손될 위험을 고려한다. 중앙은행이 물가목표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지면 이 위험에 요구하는 보상은 낮아질 수 있다. 정책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장기금리의 하락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로다.
이는 최근 장기금리 하락과는 별개로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다. 긴축의 필요성과 기간은 물가와 수요의 변화에 따라 판단해야 하지만, 물가 안정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은 장기적인 금융비용을 안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오래갈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이러한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금리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시장에도 통화정책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승헌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장순환
sh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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