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의 글로브] 'ABUSA'는 정말 일시적일까
(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08년 만에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미국이 글로벌 3대 신평사로부터 모두 최고등급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다행히 금융시장 영향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19일 아시아 시간대에 5%를 뚫으며 눈길을 끌었던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도로 5% 아래로 돌아왔고, 4.6%로 다가가던 10년물 금리도 4.50% 밑으로 후퇴했다.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는 19일까지 연속으로 오르다 20일 반락했지만 폭은 크지 않다.
새로운 뉴스가 아니라는 점이 심드렁한 반응으로 이어졌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와 피치가 지난 2011년, 2023년에 이미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에서 끌어내린 데다, 이번 강등의 원인으로 지목된 재정적자도 하루이틀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미국 국채를 대체할 자산도 마땅치 않다는 인식도 여전했다.
신용등급 강등 충격에도 뚜렷이 나타나지 않은 '셀 아메리카' 현상은 과연 이대로 잠잠해질 것인가. 안심하기에는 다소 불안한 징후가 남아있다.
마침 무디스의 강등이 발표되기 직전 공개된 미국 재무부의 '국가별 미국 국채 보유 현황'에서 중국의 보유 순위가 이번 세기 들어 처음으로 3위로 미끄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7천654억달러(약 1천66조9천억원)로 2월보다 189억달러(26조3천400억원) 줄었다. 2000년 이후 줄곧 2위를 유지했었는데, 이제는 일본(1조1천308억달러)와 영국(7천793억달러)의 뒤를 잇게 됐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부터 시작된 미국과의 대립,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제재 등의 영향으로 미 국채를 단계적으로 줄여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기 출범 이후 제조업 부활을 위해 중국을 정조준하자 시장에서는 중국이 미 국채 매각이라는 '핵옵션'을 쓸지 모른다는 전망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관세 폭탄을 투하하기 직전인 지난 3월 중국은 미 국채를 줄였다.
미국과 중국이 100%를 넘는 관세를 주고받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점을 고려하면 4월 이후 중국이 미 국채를 더욱 처분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이대로 미 국채를 줄이는 행보를 지속할 경우 셀 아메리카의 불씨는 계속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 측면에서도 미국과 일부 국가가 관세협상에 발맞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달 초 대만달러는 대만 정부가 미국의 대만달러 약세 시정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추측에 급등했고, 한국 원화도 한미 환율 논의 소식에 최근 급등했다.
일본 엔화도 미일 양측이 주요 7개국(G7) 회의 기간 만나 환율을 주제로 회담할 예정이라는 보도에 강세 방향으로 출렁였다.
각국의 반발을 고려할 때 명시적인 환율 합의가 이뤄질지는 의문이지만, 트럼프 정부가 강달러보다는 약달러를 지향하고 있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 저하와 맞물려 탈달러 움직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미국 경제 매체 월스트리트저널과 포천은 투자자들이 미국을 기피하고 다른 투자처로 눈을 돌리는 현상을 'ABUSA(Anywhere But U.S.A·미국 이외 모든 곳, 미국만 아니면 된다)'라는 약어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나타난 '미국 멀리하기'는 작년 과도했던 미국 예외주의의 조정일 뿐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장기적인 미국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의 미 국채 매도, 재정적자 문제 지속 등 신호가 지속된다면 셀 아메리카의 불씨는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경계는 금물이나, 아직 안심하긴 이른 국면이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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