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글로브] FOMC 의사록으로 본 12월 점도표
(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4대 의장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중 하나로 꼽히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와 뒤이은 대침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인물이다. 연준 이사로 재직 중이던 2002년 한 연설에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논문(1969년)에 나오는 비유를 인용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발언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2008년 의장이 된 후에는 양적완화(QE) 정책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의 정책이 자산가격 거품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 회복의 기틀을 마련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 강화를 위해 도드-프랭크법을 지원하는 한편 중앙은행의 정책 기조에 대한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해 연준의 리더십을 제고했다는 게 중론이다.(분기 경제전망 정례화, 2% 인플레 목표 설정, 포워드 가이던스 도입 등. 챗GPT, 퍼플렉시티 등 AI툴 활용 자료 정리) 이런 평가는 대공황 등 금융위기 상황에서 은행의 역할과 은행 붕괴 방지의 중요성에 대한 학자로서 그의 연구 업적에 더해져 202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의 배경이 됐다.
지난 2012년 도입된 '점도표(dot plot)'도 버냉키 연준 의장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점도표는 3월과 6월, 9월, 12월 연준의 정례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후 공개되는 자료로 연준 의원들의 금리 전망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이 표는 연준 위원들이 GDP 성장률, 물가 상승률, 실업률 전망에 기반해 익명으로 특정 시점(연말, 다음 연말, 그다음 연말, 장기 금리 전망)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금리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작성한다.
연준
가장 최근 공개된 작년 12월 점도표를 보면 연준 위원들은 올해 총 50bp의 추가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5bp씩 내린다면 두 번 인하가 있을 것이란 의미로, 석 달 전 4회의 절반으로 축소됐다. 2025년 말 금리 전망치(이하 중간값 기준)는 3.875%로 지난 9월에 비해 50bp 상향됐고, 2026년 말 금리 전망치는 3.375%로 역시 50bp 높아졌다. 2027년 말 전망치는 3.125%로 25bp 올라갔다. 이 경로라면 '2025년 50bp → 2026년 50bp → 2027년 25bp'의 추가 인하가 이어지게 된다. 올해 말 금리 전망치의 분포를 보면, 연내 50bp 추가 인하를 의미하는 중간값에는 10명이 위치했다. 중간값을 기준으로 아래에는 5명, 위에는 4명의 전망치가 자리를 잡았다.
'장기(longer run)'로 표시되는 중립금리 추정치 중간값은 2.875%에서 3.000%로 조정됐다. 중립금리 추정치는 작년 3월부터 4번 연속으로 상향조정됐는데, 특히 작년 12월에 비해 50bp 높아지면서 2018년 9월 이후 처음으로 3.0%에 도달했다. (2024년 12월 19일 오전 8시 4분 송고된 'FOMC, '동결' 더 있었다…인플레 우려 고조 속 중립금리 또 상향' 제하 기사 참조) 이처럼 기존보다 점도표 상의 금리 인하 폭이 축소된 상황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2월 FOMC 기자회견 당시 금리 인하 조치와 관련해 '아슬아슬한 결정(closer call)'이라는 언급까지 내놔 연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시장 참가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8일(현지시간) 공개한 지난달 FOMC 의사록은 올해 금리인하 속도가 예상보다 더 느려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의사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참석자는 "통화정책 기조가 이제 '상당히 덜 제약적(significantly less restrictive)'이기 때문에 위원회는 통화정책 기조를 조정할 때 신중한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거의 모든 참석자는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해 상방 위험이 증가했다며 2022년 정점에서 상당히 완화했음에도 다소 높다고 진단했다. 몇몇 참석자는 "최근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견고하게 성장했지만, 우호적인 공급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면 경제활동의 강세가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의 원천이 될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를 지지한다는 의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연준 내 실력자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8일 강연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과거처럼 물가를 올릴 가능성이 있고 새로운 관세 정책이 등장하면 물가 상승의 새로운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 같은 점을 고려해 올해도 금리인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 내 통화정책 기조의 변화가 감지되고, 이에 개별 위원의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점도표와 FOMC 의사록에 대한 시장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점도표는 연준 통화정책을 점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경제와 정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점도표 도입 당시 연준은 기준금리를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버냉키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점도표는 연준 위원들이 금리 인상 시점을 예측하는 것이지,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고문들이 연준 지도부 물갈이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마이클 바 금융감독 담당 부의장이 사임하면서 그의 후임자를 논의하는 것과 함께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파월 의장의 후임자 명단도 작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점도표와 FOMC 의사록을 넘어 보다 큰 틀에서 연준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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