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보험업계가 지난해 결산을 앞두고 IFRS17 기준서에 부합하는 예상부리이율(PCR)법을 구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회계처리 오류를 지적받은 보험사들 사이에선 뒷말도 나온다. 수년에 걸쳐 기준서 해석과 적용에 따른 컨설팅 비용으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 백억원을 썼으나 '헛돈'이 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일각에선 앞으로 금융당국과 IFRS17의 이슈 논의를 적극적으로 이어가기가 녹록지 않으리란 이야기도 나온다. 회계적 판단에 대한 해석의 모호함을 해결하려던 시도가 전진·소급과 같은 큰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는 데 따른 피로감을 호소하는 셈이다.
◇ 삼성·PwC에 쏠리는 눈…'모두를 위한' PCR법 구현할까
14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보험금융손익과 관련해 IFRS17 기준서에 부합하는 'PCR법'을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릴 예정이다.
TF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일부 보험사를 비롯해 삼일PwC와 EY한영 등 업계 감사인을 맡고 있는 회계법인이 참여한다.
지난해 초 보험업계는 금리연동형 계약에 대해 당기 중 발생한 공시이율 예실차를 PCR법상 당기에 부리되는 금액으로 보고 즉시 손익(PL) 처리가 가능한지 금감원에 질의했다. 이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를 비롯한 대다수 보험사의 회계처리 방식이었다.
금감원은 단호했다. 이론적인 설명조차 쉽지 않은 PCR의 방법론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PCR법상 예실차만 당기에 전액 PL로 처리하는 것은 기준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해 해석의 오류를 지적받은 보험사들은 이제 금감원의 의견을 반영해 기준서에 위배되지 않는 PCR법을 구현, 재무적 영향의 오차가 적음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간 PCR법은 보험업계에서 유일하게 AIA생명만 본사 지침에 따라 보험금융손익을 산출할 때 적용해 온 방식으로 알려져 있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다수의 국내 보험사는 이를 IFRS17 체제에서 새롭게 추가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들이 적용한 PCR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이 선택했다며 감사보고서에 적시한 PCR법은 기준서에 적혀있는 정의를 옮겨놓은 데 불과하다"며 "기준서에 대한 해석이 회사마다 달라 제대로 운영됐는지는 따져봐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감리나 평가를 제대로 지적할 주체가 없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 IFRS17 계도기간 무색…"제도 안착 멀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로 현대해상과 KB손해보험은 소급 적용을 결정했다. 특히 KB손보는 모회사인 KB금융지주가 미국 상장사인 만큼 회계적 오류에 선제로 대응하고자 소급을 선택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보험사가 보험금융손익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손익을 배분하거나 이자율을 산출할 때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해석과 판단의 영역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금감원 역시 이번 회신을 통해 공시이율 예실차의 회계처리를 '오직' OCI로만 방향을 설정하지 않았고, PL과 OCI로 최적 배분하는 과정에서 어떤 비율이 합리적이라고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기준서가 가진 취지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보험업계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2023년 결산 당시 금감원이 제시한 계리적 가정을 두고 전진·소급 적용 논란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전진 적용을 원칙으로 하되 IFRS17이 도입된 첫 해 임을 고려해 과거 재무제표의 소급 적용도 비조치했다.
지난해는 IFRS17을 둘러싼 제도적 변화가 유독 많았다. 해지율과 손해율, 연령 기준과 같은 가정 이슈가 논란이 됐는가 하면 공시율 예실차를 비롯해 소멸계약의 OCI 처리 CSM 상각률 산출 기준 등 회계 정책의 이슈도 있었다.
한 보험사 임원은 "현재의 회계처리는 회계법인의 해석을 받아 구현한 방식인데 이제와서 오류라고 하면 편의주의 행정 아니냐"며 "IFRS17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 아직은 계도기간이 더 필요하다. 비조치의견서 등 적극적인 행정 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 보험사가 적용하는 회계처리 방식은 감사인이거나 별도의 자문을 구한 회계법인과의 논의 끝에 결정됐다. 금융당국 주도로 일괄 도입된 IFRS17을 준비하는 지난 10년 동안, 회계법인들은 컨설팅 비용으로만 수백억, 매년 수십억씩을 감리 비용으로 받았다.
또 다른 보험사 임원은 "금감원, 회계법인 모두 갈수록 보험회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줄고 있다"며 "이럴수록 외부 전문기관인 회계법인, 계리법인의 역량이 중요한데 결과만 보면 그간 쓴 도장값, 보고서 값은 헛돈인 셈"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험업계에선 앞으로 IFRS17과 관련한 어떤 질의조차 조심스러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금감원은 IFRS17의 잠재 이슈를 선제로 발굴해 주요 이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는 입장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후폭풍을 감내해야 하는 건 보험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시이율 예실차 같은 이슈는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나올 것"이라며 "금감원이 어떤 기준을 선보일 때마다 '나만 아니면 돼'하는 분위기다. IFRS17 안착을 위해선 과도기에 다양한 질의로 건강한 논의의 장이 필요하지만, 일련의 결과를 보면 정중동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