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이 일상 탈출이라면 이탈리아 사르데냐를 선택해야 한다. 전 세계 여행자는 물론 이탈리아인에게도 그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곳이다. ‘바다가 예쁘다’는 이유 이상의 특별한 매력이 사르데냐에 있다.
사르데냐를 굳이 비유하자면 제주도와 같다. 제주도가 섬 특유의 자연환경과 언어, 역사를 온전히 보존했듯 사르데냐도 지역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다. 그 속에 다양성이 있다. 사르데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북아프리카의 정중앙에 자리하기에 오랜 세월 해상 세력의 전력 거점이었다.
수많은 세력이 엎치락뒤치락 침략하고 지배하는 동안 각국의 다채로운 문화가 유입되었다. 사르데냐 각지의 방언에 흔적이 남아 있다. 스페인에 인접한 북서쪽 지방에서는 고대 스페인어인 카탈루냐어를 사용한다. 북서쪽 대표 도시 알게로의 토박이 중에는 자신들의 뿌리가 스페인이라 여기는 이도 많다.
사르데냐 북동부 지역에서는 프랑스 코르시카섬에서 유래한 방언을 지금도 사용하고, 남부 지방에서는 이탈리아 본토 북방 지역의 리구리아어를 사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르데냐 고대어도 여전히 쓰인다. 고대 라틴어에 가까운 사르데냐어는 고립된 섬의 특징을 생생히 보여준다.
건축물도 흥미롭다. 토착민의 요새부터 이탈리아에서 전해진 성당과 원형경기장, 이슬람에서 건너온 돔 건축물, 북아프리카의 주택까지 혼재한다. 수많은 문화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자연만큼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다는 점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사르데냐는 1960년대 대규모 개발을 진행한 이후 현재 신규 개발을 금지하고, 해안보존위원회(Coastal Conservation Agency)를 통해 자연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를 누비다가도 교외로 20분만 운전해 나가면 그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단 한 번도 파헤쳐지지 않은 듯한 산과 들이 사방에 끝없이 펼쳐진다.
올해부터는 규제가 더 심해졌다. 사르데냐 동부 바우네이 지역에서는 대표 해수욕장의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예약제를 도입했으며, 입장료도 받기 시작했다. 사르데냐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라 펠로사 해변은 모래가 유실되지 않도록 각별히 관리한다.
해변 밖으로 나갈 때는 발바닥에 붙은 모래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털어내야 하고, 심지어 모래가 잘 달라붙는 비치 타월 사용마저 금했다. 누군가는 극성으로 볼 테고 누군가는 정성 혹은 선견지명으로 여길 정책. 머나먼 이국의 여행자는, 푸른 바다와 은빛 해변을 지키려는 노력이 고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