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 간절해질 때, 루마니아

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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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숲에 둘러싸인 우아하고 웅장한 성채를 자랑하는 '펠레슈성'. 깨끗한 자연경관과 역사를 간직한 중세 시대 성들을 구경하는 것은 루마니아 여행의 매력 중 하나다.

호젓한 숲에 둘러싸인 우아하고 웅장한 성채를 자랑하는 펠레슈성. 깨끗한 자연경관과 역사를 간직한 중세 시대 성들을 구경하는 것은 루마니아 여행의 매력 중 하나다.

체코 프라하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통해 동유럽의 매력에 입문했다면, 낯선 여행지를 즐길 기본기는 갖춘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 목적지로 조금 대담한 모험을 시도해도 좋지 않을까.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여행지를 개척하고 싶은 이들에게 루마니아는 괜찮은 선택지다.


눈부신 야경이나 호화로운 건축물, 군침 싹 돌게 하는 미식의 성지는 아니지만, 중세의 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박한 도시와 청정한 자연경관, 사람들의 친절한 환대가 어우러져 적당히 사색하고,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다.

동유럽의 파리 감성, 부쿠레슈티

19세기 이래 끊이지 않은 분쟁과 공산주의의 음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발칸반도 남동쪽에 루마니아가 자리한다. 헝가리, 러시아, 오스트리아, 튀르키예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공산주의 시절 24년간 자행된 차우셰스쿠의 독재가 1989년 민주혁명으로 몰락하기까지 실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는 그런 역사적 상흔을 생생히 간직한다.


부쿠레슈티라는 지명은 ‘기쁨’을 뜻하는 부쿠르(Bucur)라는 양치기 목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쁨이 넘치는 곳’이라는 의미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삶의 기쁨과 행복을 염원한 덕분인지, 무채색의 도시일 거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진다. 번잡한 대도시의 이면은 꽤 멋스럽기까지 하다.


도심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듬보비차강과 널찍한 대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 그 옆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고풍스러운 벨에포크 양식의 건축물과 사계절 자연이 숨 쉬는 공원은 왜 ‘루마니아의 작은 파리’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수긍이 간다.


실제 1875년부터 1900년대까지 프랑스 건축가들은 기념비적인 건축물 50여 개를 부쿠레슈티 곳곳에 세웠다. 생기 가득한 숲과 호수를 품은 치슈미지우 정원(Grădina Cișmigiu)과 미하이 1세 공원(Parcul Regele Mihai I)도 여느 유럽 도시 못지않은 여유를 선사한다.

주어진 시간 하루, 여행은 이루어질지니

루마니아 독재정권 시절의 역사를 간직한 '인민궁전'. 현재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관광 명소로서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루마니아 독재정권 시절의 역사를 간직한 인민궁전. 현재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관광 명소로서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드넓은 호수와 녹지 공간이 멋지게 어우러진 '미하이 1세 공원'.

드넓은 호수와 녹지 공간이 멋지게 어우러진 미하이 1세 공원.

부쿠레슈티의 관광은 공산주의의 산물인 인민궁전(Palatul Parlamentului)에서 시작해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을 엿보는 구시가지, 스트라다 립스카니(Strada Lipscani)를 둘러보고, 매력적인 메인 스트리트 칼레아 빅토리에이(Calea Victoriei, 승리 거리)를 걸어 혁명광장(Piața Revoluției)을 지나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뜬 아르쿨 데 트리움프(Arcul de Triumf)로 이어진다. 웬만한 볼거리는 도보로 이동 가능하지만, 개선문과 근처의 미하이 1세 공원은 메트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부쿠레슈티의 아름다운 구시가지 거리.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커다란 유리 돔이 인상적인 'CEC 궁전'이다.

부쿠레슈티의 아름다운 구시가지 거리.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커다란 유리 돔이 인상적인 CEC 궁전이다.

인민궁전은 도심 교통의 중심이자 널찍한 공원과 분수를 갖춘 통일광장(Piața Unirii)과 가깝다. 이곳의 밤은 낮보다 화려한데, 주말마다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진 화려한 분수 쇼가 시선을 압도한다. 현재는 아쉽게도 공사가 진행 중이라 낭만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통일광장 서쪽으로는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모방한 통일대로(Bulevardul Unirii)가 쭉 뻗어 있다. 대로를 따라 과거 공산당 간부들의 호화 거주지였던 아파트가 빼곡하고, 그 끝에 인민궁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일 행정 건물로는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압도적인 규모다.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북한의 주석궁에서 영감을 받아 세운 곳인데, 지하 3층, 지상 11층의 건물 내부에는 방이 1,100개가 넘는다. 이곳을 짓기 위해 시민의 주택을 강제로 철거하고, 인부 수만 명이 무보수로 5년 동안 공사에 투입됐으며,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수조원에 달하는 건축 비용이 소요됐다.


그야말로 국민의 고혈로 지은 독재정권의 상징물인데, 현재는 국회의사당과 국제 행사장, 결혼식장 등으로 활용되며, 일부는 가이드와 함께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했다.

부쿠레슈티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거리이자 고급 쇼핑 지구인 칼레아 빅토리에이(Calea Victoriei)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근사한 건축 기행을 하는 듯하다. 구시가지에 가까워질수록 바로크부터 신고전주의, 아르누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의 정교회와 수도원, 미술관과 박물관 등이 자리한다.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은 루마니아 국립 역사박물관 맞은편에 자리한 CEC 궁전(Palatul CEC)이다. 루마니아 최초의 저축은행이었던 이 건물은 중앙의 커다란 유리 돔과 코린트식 기둥이 아치를 이룬 모습에서 고전적 격조가 넘쳐흐른다. 루마니아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는 1989년 12월 21일 민주혁명이 일어난 혁명광장, 피아차 레볼루치에이(Piața Revoluției)다.


시민의 격렬한 저항을 말해주듯 광장 주변 건물에는 아직도 탄흔이 남아 있다. 혁명광장에는 현재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옛 왕궁과 붉은 벽돌로 지은 크레트줄레스쿠 정교회(Biserica Kretzulescu)가 자리하고, 건너편에는 권위 있는 콘서트 홀이자 루마니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 아테네울(Ateneul)이 자태를 뽐낸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뜬 위풍당당한 '아르쿨 데 트리움프'.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뜬 위풍당당한 아르쿨 데 트리움프.

화려한 분수 쇼를 선보이는 '통일광장'에서 인민궁전까지 쭉 뻗은 통일대로 전경.

화려한 분수 쇼를 선보이는 통일광장에서 인민궁전까지 쭉 뻗은 통일대로 전경.

드라큘라가 없어도 괜찮아, 브라쇼브

‘드라큘라성’이라는 명성과 달리 가을 단풍 사이로 보이는 '브란성'은 한없이 평화롭다.

드라큘라성’이라는 명성과 달리 가을 단풍 사이로 보이는 브란성은 한없이 평화롭다.

‘진짜’ 루마니아의 매력은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에 가득하다. 원래 이 지역은 헝가리 왕국의 영토였으나, 독일 이주민이 개척해 오늘날에도 헝가리, 독일, 루마니아의 문화가 뒤섞여 이국적이다. 카르파티아산맥의 광활한 산줄기와 드넓은 평원 속에는 중세 시대 흔적을 간직한 성채와 마을이 저마다의 색으로 빛난다.


대표적인 도시로 브라쇼브(Brașov)와 시비우(Sibiu), 시나이아(Sinaia) 등이 있다. 부쿠레슈티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을 달리면 중세 건축물이 반기는 브라쇼브에 다다른다. 이곳 관광은 정처 없이 구시가지를 거닐거나 도시 외곽에 자리한 ‘드라큘라성’으로 유명한 브란성에 다녀오는 게 일반적이다.


구시가지 관광의 출발점인 스파툴루이 광장(Piața Sfatului)은 무역과 교통 요충지였던 브라쇼브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다. 13세기부터 상인들이 모여 시장이 열리던 광장으로, 중앙에는 위급 시 나팔을 불어 시민에게 알리던 시계탑을 품은 옛 시의회 건물이 서 있다.


광장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자리한 검은 교회는 대화재로 벽이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으며, 내부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백미다. 검은 교회를 둘러본 후 단단한 벽돌과 나무 구조물로 만든 ‘방직공의 요새’를 둘러보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틈파(Tâmpa)산 정상에 올라 도시의 전경을 감상해도 좋다.

브라쇼브에서 32km 떨어진 슈노프 계곡 위에 우뚝 솟은 브란성은 루마니아 하면 떠오르는 드라큘라 백작의 스토리로 유명해진 곳이다. 흡혈귀 드라큘라는 1897년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 의해 탄생했는데, 독일계 상인들에게 잔혹한 방법으로 세금을 거둬 루마니아인의 궁핍을 해결하려 한 블라드 3세를 모델로 삼았다.


브란성은 블라드 3세가 잠시 머물렀다는 이유로 드라큘라성으로 불리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다. 실제 성 내부는 이곳에 거주한 여왕이 수집한 예술품과 가구로 아기자기하게 채워져 있을 뿐, 드라큘라의 흔적은 기념품 외에는 찾기 힘들다. 호러틱한 무드보다는 동화 속 마을과 성을 감상한다는 기분으로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루마니아의 숨겨진 보석

트란실바니아의 매력적인 소도시 시비우의 ‘거짓말의 다리’. 사랑 맹세를 위해 일부러 철제 다리를 지나는 연인이 많다고 전해진다.

트란실바니아의 매력적인 소도시 시비우의 ‘거짓말의 다리’. 사랑 맹세를 위해 일부러 철제 다리를 지나는 연인이 많다고 전해진다.

현지인이 사랑하는 루마니아의 휴양도시, '시나이아'.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품 넘치는 수도원과 왕실의 여름 별장 펠레슈성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현지인이 사랑하는 루마니아의 휴양도시, 시나이아.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품 넘치는 수도원과 왕실의 여름 별장 펠레슈성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카르파티아산맥의 수려하고 깨끗한 자연에 푹 안겨 있는 시나이아는 루마니아의 휴양지로 사랑받는 곳이다. 시나이아 기차역을 나와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좀 걸어야 생기 넘치는 시가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초목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은 적당히 번잡하고, 적당히 한가롭다. 마을을 지나 숲길을 걸어 도시의 기원과도 같은 시나이아 수도원으로 향한다. 1695년 세워진 이후 오늘날까지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루마니아 왕실의 여름 별장인 펠레슈성(Castelul Peleș)이 완공되기 전까지 시나이아를 방문한 왕가가 머물렀던 장소다.


수도원에서 내처 호젓한 숲길을 더 걸으면 어느 순간 눈앞에 우아하고 웅장한 성채가 등장한다. 독일의 신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펠레슈성은 겉으로 보기엔 귀족의 대저택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무라노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스테인드글라스 창, 코르도바 가죽으로 덮인 벽, 중세 기사의 갑옷과 무기 등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하다. 전력을 생산해 불을 밝힌 유럽 최초의 성답게 미니 극장 시설은 물론, 인도풍 음악실, 터키 살롱, 무어 홀, 스위스풍 평의회실 등 160여 객실이 저마다 다른 스타일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마레 광장(Piața Mare)과 루마니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박물관으로 알려진 브루켄탈 궁전(Palatul Brukenthal)이 자리한 시비우는 트란실바니아 중심부에 자리한 매력적인 소도시다. 구시가지의 낡고 오래된 건물은 초라해 보이기는커녕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위대함이 뚝뚝 묻어난다. 시비우의 볼거리는 어퍼타운과 로어타운에 집중돼 있다.


어퍼타운은 성대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마레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랜드마크가 모여 있다. 시청사와 시의회 시계탑, 루터교 대성당, ‘거짓말의 다리(Podul Minciunilor)’, 그리고 브루켄탈 궁전은 시비우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좁고 구불거리는 계단과 통로를 따라 어퍼타운과 로어타운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지붕 위에 나 있는 독특한 창문에 절로 눈길이 간다. 채광과 통풍을 위해 낸 창인데, 매서운 눈초리 형상을 하고 있어 일명 ‘감시자의 눈’이라 불리는 시비우의 명물이다. 금방이라도 눈꺼풀이 움직일 것만 같은 재미난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난다.

여행을 통해 낯설고도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상상과 편견 속 루마니아는 실제 존재하지 않음을,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뛰어드는 용기를 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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