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숴의 산수는 거대한 무대로도 활용된다. 중국 5대 공연 중 하나인 인상유삼저(印象劉三姐)가 양숴의 첩첩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드넓은 강 위에서 펼쳐진다. 인상유삼저는 영화감독이자 공연감독 장이머우(张艺谋)가 연출한 ‘인상’ 시리즈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준비 기간만 무려 5년 반이 걸렸고, 출연자 역시 600여 명에 달하는 데다, 압도적 조명과 음악의 향연 덕분에 양숴의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줄거리는 소수민족 장족의 역경을 이겨낸 사랑 이야기다. 연출이 워낙 뛰어나 언어를 몰라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사 대부분이 방언이라서 현지인도 알아듣기 어렵다는 후문이다.
공연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현장 발매 부스가 있어도 모든 회차가 거의 매진이기에 취소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현장에서 표를 구하기는 어렵다. 티켓 가격은 좌석 위치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조금 비싸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길 권한다. 화려한 의상과 섬세한 표정, 서라운드 음향 효과를 생생히 느낄 수 있어서다.
지난밤 공연의 여운은 아침이 되어도 쉬 가시지 않는다. 먹먹한 감동을 안고 싱핑구전(兴坪古镇)으로 향한다. 양숴의 소수민족이 터 잡고 살던 1,700년 역사의 전통 마을이다. 관광버스가 수시로 오가는 명소인 만큼 1층 상가는 기념품점이 즐비해 여느 관광지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색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빛바랜 벽돌과 기와, 새초롬하게 말린 지붕의 끝 선, 창살의 가지런한 문양…. 그 너머로 우뚝 선 산봉우리까지 이색적이다. 환기에 유리하도록 높이 만든 지붕도 특징이다.
싱핑구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로 리강(漓江) 풍경을 들 수 있다. 20위안 지폐 속, 산봉우리 수백 개가 겹친 모습이 이곳 풍경이다. 지폐 속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기에 뗏목 선착장도 위룽허 못지않게 인기다. 멋진 사진을 남기려고 전통의상을 빌려 입는 젊은이도 많다. 단, 위룽허에서 먼저 배를 탔다면 굳이 여기에서까지 탈 필요는 없다. 강둑에서도 충분히 비슷한 각도로 사진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강 건너편으로 이동해 카트를 타고 상공산(相公山) 전망대에 오르는 걸 더 추천한다. 지면에서 보는 마을은 그저 사람 사는 동네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이 땅은 태초의 자연, 혹은 신이 머무르는 자리로 여겨진다. 위대한 예술가의 공연도 감동적이지만, 유구한 시간이 빚은 자연환경에 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양숴를 떠날 시간이다. 다음 목적지는 롱지티티엔(龙脊梯田)으로, 장족과 야오족 등 소수민족의 마을이다. 종족과 문화를 보호하려고 자리 잡은 산골짜기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급경사의 산등성이를 깎고 또 깎았다. 사진 속 롱지티티엔은 해가 닿는 곳이라면 한 뼘도 남기지 않고 개간한 듯 보인다.
집념으로 가꾼 삶의 터전은 얼마나 경이로울까. 위에량산이나 상공산, 인상유삼저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을까. 버스에 덤덤하게 올라탔지만 이미 설렘은 싹트기 시작했다. 양숴에서 충분히 만족했어도, 지금 이 순간 기대감이 자라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그저 새로운 시공간을 향해 나아가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흔쾌히 즐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