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빛과 색, 인상주의

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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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붓질로 표현된 해안 풍경으로, 청록빛 바다와 흰 포말의 파도가 전경의 바위에 부딪히고, 뒤로는 황금빛 바위 절벽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인상주의적 해양 풍경화이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 몸의 감각을 환기한다. 공기의 밀도나 햇빛의 강도, 색채의 질감 같은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할수록 계절의 변화가 더 빨리 읽힌다. 인상주의(Impressionism) 등장 전까지, 회화 예술은 신화, 역사, 종교 같은 고상한 주제를 이상화해 그리는 것이 정석이었다. 원근법에 기초한 밑그림과 명암법을 이용한 채색을 통해 얼마나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는지를 두고 완성도를 평가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은 당대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흔들며 근원적으로 재편했고, 고아한 미술계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회화의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묘사는 격동의 세기를 맞아 힘을 잃고 만다. 전통회화 기법과 주제에서 탈피해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19세기 말 프랑스 화단을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다. 빛과 색채,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 근대 미술 운동, 인상주의의 태동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화실을 벗어나 야외로 향했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햇살 아래 수시로 변화하는 풍경을 생생히 담아내기 위해서다. 그들은 대상의 형태와 색채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찰나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별다른 밑그림 없이 캔버스 위에 거칠고 빠른 붓 터치로 순간적인 인상을 그렸다. 명확한 형태보다 화가의 주관적인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 대담한 묘사였다. 인물이 화면 밖으로 잘려 나가기도 하고, 사물의 고유색보다 자연광에 따라 더 밝게 칠했다.


오늘날에는 인상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자유로움, 따스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당대에는 이런 파격적인 구성이나 색감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평단은 내용도 없고 완성도도 떨어지는 ‘그림 같지 않은 그림’으로 평가했다.


개성적 화풍, 후기 인상주의

오늘날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는 카미유 피사로,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오귀스트 르누아르,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드가르 드가, 조르주 쇠라, 폴 시냐크 등이 꼽힌다. 1874년 피사로, 모네와 르누아르, 세잔 등 무명 예술가 30명이 주축이 되어 개최한 미술전을 계기로 인상주의가 첫발을 디뎠다.

이후 인상주의는 고전 인상주의를 지나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로 시대 흐름에 따라 발전하며 현대미술을 개척해갔다. 19세기 말 프랑스 회화 운동의 하나인 신인상주의는 조르주 쇠라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고전 인상주의 작품에서 선보인 흐릿한 선과 색채 대신 사물과 장면을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길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회화 기법이 점묘법이다. 후기 인상주의 혹은 포스트 인상주의는 고전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화가의 개성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폴 세잔과 반 고흐, 고갱이 대표적이다. 후기 인상파 화가는 자신의 느낌 전달에 주목했다.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 시선에 따라 특정 부분을 도드라지게 과장해 표현하기도 했는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인상주의를 이끈 거장들

회색빛 테이블 위에 붉은색과 노란색 사과들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비스킷이 담긴 접시가 배치된 정물화로, 단단한 형태와 색면 대비를 강조한 세잔 특유의 절제된 붓질이 드러난 작품이다.

색을 포착하기 위한 집요함,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모네의 유화 ‘인상, 해돋이’는 인상주의 이름의 유래가 된 작품이다. <제1회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출품된 이 작품을 두고 미술 비평가 루이 르루아는 해돋이 풍경의 ‘인상’만 보인다고 혹평했다. 대충 그린 그림이라는 조롱을 담은 표현에서 ‘인상주의’라는 명칭이 생긴 셈이다. 평생 풍경을 그려온 모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며 자신이 느낀 감동을 캔버스 위에 색으로 표현했다.

지베르니 집 주변에 정원과 연못을 가꾸고, ‘수련’ 연작 250여 점을 집중 제작한 그의 말년은 세계관의 완성과 다름없다. 집요하게 동일한 풍경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모네는 시간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연못과 정원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겼다.

그는 거친 붓질에 뒤엉킨 물감과 모호하고 흐릿한 사물의 경계를 통해 포착하기 힘든 자연의 인상에서 느낀 빛의 감동을 전달하고자 애썼다. “형태에 신경 쓰지 마세요. 오로지 색상으로 보이는 것만 그리세요. 그러면 형태는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전통을 깬 화가, 에두아르 마네 Édouard Manet

인상주의라는 용어가 모네에 의해 생겼다면, 모네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화가들에게 ‘현실’을 바라보도록 새로운 길을 제시한 인물은 마네였다. 그는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로 주위의 활기 있는 현실을 예민하게 포착한 그림을 통해 현대 회화의 시작을 열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파리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대표작이다.

두 명의 정장을 입은 남성과 한 명의 나체 여성이 풀밭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은 파격 그 자체였다. 신화 속 여신이 아닌 현실의 여성이 누드로 등장해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도발적인 태도는 대중과 평단의 비난을 샀으나 훗날 인상주의를 태동시키는 중요한 마중물이 됐다.

삶의 유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르누아르는 찬란한 빛과 색채로 삶의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담아낸 ‘따뜻한 화가’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빛과 풍경에 집중할 때 르누아르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주목했다. 춤추고 대화하고, 산책하고, 사랑하는 당시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예찬하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한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야외에서 사람들이 어울려 춤추는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와 피아노에 집중하는 두 소녀의 우아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이 대표적이다. 솜뭉치로 찍어낸 듯 부드러운 붓 터치와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은 화사한 그림자, 햇살을 머금은 듯 밝고 따뜻한 색은 르누아르 특유의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화풍을 잘 보여준다.

기하학적 묘사, 폴 세잔 Paul Cézanne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세잔은 남프랑스의 빛과 색채에서 영감을 받고 생트빅투아르산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고향 프로방스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했다. 그는 색채 위주의 불분명하고 모호한 기법 대신 분명한 실체감과 엄격한 윤곽선을 추구했다. 특히 “자연을 원기둥, 구체, 원뿔의 형태로 보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구조적으로 간단한 형태와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실제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사과 정물화 약 20점을 그렸는데, 탁자 위 사과와 병, 접시, 천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구성하는 회화적 실험을 시도했다. 세잔의 정물화는 정지된 사물이 아닌 시간과 시선의 움직임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일련의 과정을 함축한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과감히 탈피해 색과 형태, 공간의 원리를 탐구하는 세잔의 기하학적 화풍은 파블로 피카소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훗날 입체주의 등장을 견인하는 예술적 토대가 됐다.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명작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다. 전시는 19세기 후반 서양 미술사의 사조를 이끈 인상주의 두 거장, 세잔과 르누아르의 예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오랑주리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 국내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으나 색채의 조화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르누아르와 구조적이고 기하학적 구성을 추구한 세잔의 각기 다른 작품 세계를 비교, 감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일시 2026년 1월 25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문의 02-325-1077

왼쪽에는 르누아르의 인물 회화 일부가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주황색 배경 위에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문구와 전시 정보가 정리된 구성으로, 세잔과 르누아르의 대표성을 강조한 전시 홍보 포스터.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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