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하고 향긋한 전통 청주의 세계

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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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청주 병에서 유리잔으로 '맑은 청주가 쏟아져 담기는 모습'입니다. 청주가 잔에 부딪히며 '기포가 생기는 찰나를 포착'한 깨끗하고 시원한 느낌의 이미지입니다.

오늘날 청주는 흔히 일본식 사케를 가리킨다. 약 주는 넓은 의미로 쓰여 술을 높여 부르거나 전통주의 맑은 술을 가리키거나, 약재를 넣은 술을 말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전통주의 맑은 술은 모두‘청주’로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청주가 108번, 약주는 52번 등장한다. <실록>에서 청주는 맑은 술을, 약주는 신하가 임금에게 권하는 약용 술이나 임금이 하사하는 술을 가리켰다.

오랜 세월 빚어 온 우리 전통주 중에서도 약주, 즉 청주는 귀하고 중요한 술이었다. 한국 전통주연구소 소장 박록담은 “청주는 우리 전통주의 근간”이라고 표현했다. 청주는 하늘에 바치는 술이었다. 왕실에서 종묘사직을 위해, 사대 부가에서 돌아가신 선조를 위해 마련했다. 제사상에 올리는 술인만큼 깨끗하고 향긋하게 빚는 게 관건이었다. 방향(芳香) 을 위해 두 번 이상, 많게는 다섯 번에 걸쳐 술을 빚기도 했다.

귀한 찹쌀과 한 달에 거쳐 완성한 누룩, 깨끗한 물로 빚 은 청주는 제사 후 음복할 때나, 집안에 손님이 찾아올 때 음미할 수 있었다. 양반가에서도 높은 어른이나 남성만 즐기고 여성은 청주를 뜨고 남은 탁주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을 만큼 귀하고 특별한 술이 청주였던 것이다.

전통 청주의 수난

전통 청주는 일제강점기에 명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일제는 1909년 주세법 도입, 1916년 주세령을 선포하며 양조면허를 발급했는데, 자가소비를 위한 양조 면허는 청주(약주) 2석(360L) 이하, 조선 소주 1석(180L) 이하까지 제조를 허용했다. 하지만 허용량을 넘겨 술을 빚다가 적발되면 가혹하게 처벌했고, 세율도 해마다 급격히 인상했다.

그렇게 1918년 35만 명을 넘어선 가양주 제조 면허 소지자는 14년 만인 1931년 단 1명만 남게 된다. 그 사이 양조산업은 대량생산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39만 개에 달하던 양조장도 3,000여 개로 줄었다. 집집마다 누룩을 빚고 청주를 뜨던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해방이 됐다 해도 전통주가 설자리는 없었다. 주세령은 그 대로 이어졌고, 오히려 더 심하게 억압할 때도 있었다. 특히 1961년 시행한 주세법 개정은 쌀을 주원료로 한 전통주에 큰 타격을 입혔다. 식량난으로 인한 곡물 통제 정책에 따라 탁주와 약주(전통 청주)에 쌀 사용을 제한한 것이다.

심지어 1966년에는 국무회의에서 ‘약탁주 제조에 있어 쌀 사용금지안’을 의결하며 쌀로 술 빚기를 완전히 금지해 오랜 술빚기 방식은 한순간에 불법 단속 대상이 되고 만다. 그 와중에도 일본식으로 만든 청주(사케)에는 쌀 사용을 허용했다. 그렇게 전통 청주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밀주만 알음알음 전승되었으며, ‘청주’하면 일본식 사케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술마켓에서 추천하는 '맑은 술 5종'이 회색 천이 깔린 '받침대 위에 전시'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작은 술잔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습니다.

되살아난 청주의 향기

무려 50여 년간 이어진 억압에도 우리 술은 근근이 명맥을 이어갔다. 제사를 중요시한 집안에서는 구들방 구석에서 누룩을 띄우고 뒤뜰 담장 아래서 몰래 술을 빚었다. 음지에 머무르던 전통주는 1983년 시행한 전통 민속주 조사에서 반짝 빛을 받기도 했다.

곡주 22종을 비롯해 소주와 과실주 등 민속주 46종이 발굴됐고, 그중 청주인 당진 면천두견주와 경주 교동법주 2종, 소주인 서울 문배주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이후에도 문화재 술 발굴이 지속되었고, 한산소곡주, 중원당 청명주, 김천 과하주, 함양 솔송주 등이 지역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생산, 판매하게 되었다.

집집마다 술을 빚는 문화는 1995년 비로소 양지로 나왔다. 자가 소비를 위한 양조를 합법으로 명시하면서 대소사에 쓸 술을 직접 빚거나 술 빚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가문의 밀주’를 이어온 명인과 그것을 발굴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전통주 전문가들이 드디어 자유롭게 활약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에는 무척 다채로운 청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일제강점기 도입된 방식을 업그레이드한 고품질 청주뿐 아니라, 고문헌을 바탕으로 재현한 각양각색 전통 청주가 출시되고 있다. 쌀을 삭혀 개운한 산미를 내는 청명주, 세 번 빚어 부드럽고 그윽한 단맛의 삼양춘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쌀누룩으로 다섯 번 빚는 서울 실버는 열대과일의 풍미와 요거트 같은 부드러운 질감으로 인기다.

전통주는 주류 중 유일하게 온라인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온·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국내 최대 전통주 쇼핑몰 ‘술마켓’, 전통주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술담화’ 등이 있다. 특히 술마켓은 자체 유통망을 갖춰 신선한 청주를 배송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역마다 전통주 보틀숍도 알아두면 좋다. 서울 광진구 술마켓 군자본점, 중구 애주금호, 부산 부산진구 방방곡곡은 규모가 크고 전문 셀러의 추천도 받을 수 있어 편리하다.

짚으로 엮은 바구니 안에 거친 '질감이 살아있는 동그랗고 도톰한 모양의 전통 누룩'들이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누룩과 입국(粒麴)에서 비롯된 전통 청주(약주)와 일본식 청주(사케)의 차이

전통적인 한국 술의 특징은 자연균을 배양한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누룩은 분쇄한 밀, 보리, 녹두, 쌀 등 곡물을 가루 내어 뭉치거나 흩뿌린 상태에서 공기 중에 부유하는 다양한 균이 자연스럽게 내려앉아 번식한 것이다. 누룩으로 빚은 전통주는 다양한 균에 의해 풍부한 향미가 난다.

한편 사케는 입국으로 만든다. 입국은 분쇄한 쌀 등에 선별한 균을 접종해 균일한 품질을 낸다. 단일한 균만 배양하기에 맛과 향이 깔끔하고, 대부분 색이 거의 없이 투명하다.

한편 주세법상 청주와 약주는 누룩(녹말이 포함된 재료에 곰팡이류를 자연 번식시킨 것)을 얼마나 사용하는지에 따라 구분한다. 쌀의 총중량 대비 누룩 사용량이 1% 미만이면 청주, 1% 이상이면 약주다. 이는 옛 방식대로 빚은 전통 청주가 ‘약주’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배경이다. 누룩 1% 미만만으로는 전통 청주를 완성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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