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감상 포인트

202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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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봉우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복궁' '흥례문' 전경이다.

산봉우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복궁 흥례문.

진부하지만 명백한 진실, 여백의 아름다움

종로구 안국동, 혹은 내수동의 빽빽한 건물 사이를 걷다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면 눈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넓게 펼쳐진 마당이 먹먹하리만큼 감동적이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은행나무는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시야를 멀리 두면, 고궁을 감싸안은 듯한 북악산과 인왕산이 시야에 한데 들어 온다. 아담하지만 듬직한 자태다. 이곳은 경복궁, 잠시 스치기만 해도 반짝 여유가 깃드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옛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여유’로 정의할 수 있다. 너무나 진부하지만, 한옥의 특징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어렵다. 문을 여닫는 방식에 따라 방이 마루가 되고 마루가 방이 되는 구조, 꾸밈없이 늘상 비워두는 마당은 ‘여백의 미’를 대표한다.

 

이렇게 빈 공간을 많이 두는 건, 사시사철 유동적으로 활용하기 좋아서다. 볕 좋은 날 먹거리를 말릴 때, 가을 걷이 후 타작할 때, 잔치를 치를 때만큼은 마당도 마루도 여백 없이 꽉 찬다. 그러다 행사가 끝나면 다시 말끔하게 비워 다음 일을 도모할 태세를 갖춘다.

오늘날 대부분 고택은 옛일을 기록하고 전하는 공간, 혹은 감상용으로 활용된다. 가재도구도 거의 없고, 생활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현대건축과도 거리가 멀고 일상생활과도 동떨어져 있다. 그야말로 현재에서 훌쩍 벗어나기에 제격이다. 한갓진 한옥의 여백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

도심 속 휴식을 선사하는 '운현궁' 전경이다.

도심 속 여백 한 점, 운현궁

흥선대원군의 사가이자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기거하던 집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해 아담하지만, 한옥 특유의 여백과 짜임새 있는 구조가 돋보인다. 여느 고궁에 비해 한적한 편이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무료입장.

주소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64
문의 02-766-9090

차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침고요수목원' 한옥 대청마루 사진이다.

차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아침고요수목원 한옥 대청마루.

한 프레임으로 봐야 할 한옥과 풍경

예부터 한옥을 지을 때 지붕 양쪽 끝에 추녀를 설치하면, 목수는 그 위에서 줄을 늘어뜨린다. 대장 목수는 마당 밖으로 멀리 떨어져 늘어진 줄과 마당을 함께 바라본다. 건물 규모와 지붕선이 잘 맞는지 확인하고, 건물과 마당이 잘 어우러지는지도 본다.

 

그리고 주변 자연경관과 건물의 어울림도 확인한다. 집을 지을 때부터 이 모두를 고려하는 만큼 한옥을 감상할 때는 대장 목수가 그러하듯 시야를 넓게 두면 좋다. 뒷산 능선과 건물의 지붕이 평행선을 이루거나 고목과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융합한 한옥의 자태는 사찰과 서원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실내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시선에 담긴다. 차경(借景), 즉 자연의 경치를 빌리는 문화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유려한 산등성이가 담기거나, 창호 너머로 아기자기한 뒤뜰 정원이 보이는 식이다. 경치 좋은 곳의 절과 정자를 감상할 때는 꼭 시야를 넓혀 풍경까지 함께 감상해야 한다.

능선의 흐름에 맞춘 지붕선, 내소사

조선 중기에 지은 대웅보전의 지붕선과 뒤편 능가산의 능선이 경이로울 만큼 조화롭다. 대웅보전은 건축적으로도 의미 있는데, 나무를 깎아 교합해 만든 것으로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주소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191
문의 063-583-7281

비대칭 속 균형감

한옥 짓는 목수는 대체로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터의 굴곡, 기둥의 높낮이가 달라 자로 잰 길이는 의미 없기 때문이다. 휘거나 옹이가 있는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벽과 창호의 너비와 크기, 형태를 다양하게 두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간단하게는, 작은 창 위에 광주리나 시래기, 옥수숫대 따위를 걸어두는 식이다.

불국사는 비대칭 속 균형감의 정점을 보여준다. 입구인 자하문과 경내 중심인 대웅전을 일직선으로 그었을 때, 왼쪽에는 범영루와 석가탑이, 오른쪽에는 좌경루와 다보탑이 있다. 범영루는 화려하고, 좌경루는 비교적 단순하다. 석가탑은 단순하고, 다보탑은 화려하다. 화려한 누각 앞의 단순한 탑, 단순한 누각 앞의 화려한 탑. 넓게 보면 완전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은밀한 안채와 돌출된 사랑채가 대조되는 '명재고택' 사진이다.

은밀한 안채와 돌출된 사랑채가 대조되는 명재고택.

지혜로운 건축 구조, 명재고택

성리학자 명재 윤증 선생의 가옥으로, 조선 중기 호서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저택 구조다. 안채의 대칭 구조가 여느 고택보다 돋보이는 한편 사랑채가 돌출된 점, 광채(창고)가 비스듬히 배치된 점이 이색적이다.

주소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문의 041-735-1215

염원을 담은 장식

고궁의 지붕, 추녀마루 끝에는 나란히 선 인형들이 있다. 중국에서 유래한 ‘잡상’으로, 손오공과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을 형상화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정조 대 법률서 <전율통보>에 “잡상은 손행자(손오공)와 같은 귀물”이라고 기록돼 있다.

고궁을 관람한다면 곳곳의 돌짐승을 자세히 관찰해보길 권한다. 같은 해태라도 표정과 자세, 몸집이 다 다르다. 수로 앞에 엎드려 익살스럽게 혀를 뺀 돌짐승은 이미 유명하다. 이들은 도랑의 물을 타고 나쁜 기운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물길을 막고 퇴치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 힘을 잔뜩 준 자세, 몸동작과 달리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이 역동적이다. 왕의 자리, 즉 어좌 뒤편과 천장은 ‘일월오봉도’와 운룡 조각으로 화려하고 위엄 있게 장식했다. 천장에서 당장이라도 꿈틀대며 떨어질 듯한 용은 왕의 권위를 부각하는 장치다. 창덕궁 대조전 굴뚝에 새겨진 송학과 기린도 신성한 영물. 신을 지키는 영물이자 상서로운 동물로 왕권을 상징한다.

 

고궁뿐 아니라 사대부 집안 곳곳에서는 다양한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단, 화려한 단청만큼은 고궁과 사찰의 전유물이다. 민가의 단청은 중종 대 이후 완전히 금지되어 자취를 감췄다. 민가에서는 간혹 대문에서 시선을 낮췄을 때 장식물을 발견할 수 있다. 주춧돌을 거북이 조각으로 받친 것인데, 장수와 상서로운 기운을 염원하는 의미다.

한옥의 다양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창덕궁' 후원 사진이다.

한옥의 다양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창덕궁 후원.

조경의 정수, 창덕궁 후원

 후 입장할 수 있는 창덕궁 후원은 부용정과 존덕정, 연경당 등 한옥과 수려한 절경이 어우러진 왕실 정원이다. 차경의 지혜, 다채로운 길상, 비대칭의 균형감 등 한옥의 그윽하고 풍성한 매력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주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문의 02-3668-2300
홈페이지 royal.khs.go.kr/cdg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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