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하지만 명백한 진실, 여백의 아름다움
종로구 안국동, 혹은 내수동의 빽빽한 건물 사이를 걷다 탁 트인 공간을 마주하면 눈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넓게 펼쳐진 마당이 먹먹하리만큼 감동적이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은행나무는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시야를 멀리 두면, 고궁을 감싸안은 듯한 북악산과 인왕산이 시야에 한데 들어 온다. 아담하지만 듬직한 자태다. 이곳은 경복궁, 잠시 스치기만 해도 반짝 여유가 깃드는 우리 문화유산이다.
옛 공간에 머무는 시간은 ‘여유’로 정의할 수 있다. 너무나 진부하지만, 한옥의 특징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어렵다. 문을 여닫는 방식에 따라 방이 마루가 되고 마루가 방이 되는 구조, 꾸밈없이 늘상 비워두는 마당은 ‘여백의 미’를 대표한다.
이렇게 빈 공간을 많이 두는 건, 사시사철 유동적으로 활용하기 좋아서다. 볕 좋은 날 먹거리를 말릴 때, 가을 걷이 후 타작할 때, 잔치를 치를 때만큼은 마당도 마루도 여백 없이 꽉 찬다. 그러다 행사가 끝나면 다시 말끔하게 비워 다음 일을 도모할 태세를 갖춘다.
오늘날 대부분 고택은 옛일을 기록하고 전하는 공간, 혹은 감상용으로 활용된다. 가재도구도 거의 없고, 생활의 흔적도 찾기 어렵다. 현대건축과도 거리가 멀고 일상생활과도 동떨어져 있다. 그야말로 현재에서 훌쩍 벗어나기에 제격이다. 한갓진 한옥의 여백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