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술가 그룹을 이끈 에곤 실레는 1900년대 비엔나 표현주의의 독보적 선구자다. 짧은 예술 인생에서 인간 감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모더니즘 예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실레는 자아 정체성과 고독, 욕망 등 심리적·실존적 주제에 심취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혼자라는 두려움, 고독감, 불안감 등 내면의 갈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15세에 아버지를 여읜 실레는 집안의 실질적 가장이 되었다. 보살핌을 받을 나이였지만, 어머니는 그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불안정한 가족관계는 훗날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00여 점에 이른 자화상을 그리며 죽음에 대한 불안을 직시했고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탐구했으며, 풍경화에도 속마음을 투사해 고립된 마음을 드러냈다.
실레에게 그림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거울이었다. 실레가 남긴 드로잉은 4,000장에 달한다. 그중 대다수는 누드화로, 그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깡말랐고 인체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었으며 표정에 박탈감과 고통, 절박감이 드러난다. 단, 실레의 작품을 연도별로 훑다 보면, 그가 결혼 후 안정을 찾았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경력 초기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길 원했다. 모델인 발리 노이칠과 오래 연애했지만, 결혼은 중산층 집안의 딸 이데트 하름스와 했다. 이후 그의 작품에는 풍만하고 여유로운 인물이 주로 등장한다. 결혼 후 찾은 마음의 안정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