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아름다움, 그린란드

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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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빙산과 주홍빛 석양으로 물든 하늘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그린란드'의 전경이다.

삐죽빼죽 날을 세운 푸른 빙산과 주홍빛 석양으로 물든 하늘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숭고한 찰나. 일루리사트에는 이러한 빙산이 보호구역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눈 위에 또 눈이 쌓인다. 들숨과 날숨에 들고나는 공기는 뾰족한 날을 세운 채 폐부를 찌른다. 그야말로 세포 하나하나가 얼어붙을 것 같은 매서운 추위다. 국토의 80% 이상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린란드의 겨울은 혹독하다.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무려 8개월이나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동토는 그 자체로 얼음 왕국이다.

 

짧디짧은 생을 사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대자연의 응축된 생명력이 고요히 뿜어져 나온다. 자연의 강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확인하는 시간이다. 북극 바로 아래 위치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얼음 섬은 진정한 ‘탐험’의 세계로 여행자를 인도한다.

알록달록 유채색을 뒤집어쓴 전통 가옥이 즐비한 '누크'의 '주택단지'이다.

알록달록 유채색을 뒤집어쓴 전통 가옥이 즐비한 누크의 주택단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누크' '피오르'의 수묵화 같은 풍경이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누크 피오르의 수묵화 같은 풍경.

유일무이한 도시, 누크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린란드는 눈과 얼음으로만 이루어진 섬이다. 백설기보다 더 희고 보드라운 설원과 푸른 바다 위를 뒤덮은 단단한 빙하를 보면 지구 밖 미지의 행성에 온 것 같다. 북위 5983°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북극권에 속하는 덴마크 자치령으로, 1년 대부분이 추위로 얼어붙는 땅이다.

 

하지만 5월부터 9월까지는 평균 기온이 08℃로,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싱그러운 초목을 볼 수 있다. 그린란드 내륙은 춥고 척박해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인구 대부분은 서남부 해안에 거주하고, 그중 행정 수도 누크(Nuuk)에 집중해 있다. 그린란드의 관문인 누크는 1728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루터교 선교사이자 탐험가였던 한스 에게데가 세운 마을이다.

 

그러나 이 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이들은 이누이트(Inuit)로, 약 4,000년 전 시베리아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거친 북극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중앙아시아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누이트는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대자연을 바라보며 자란 그들의 검푸른 눈망울은 맑고 신비하며 깊은 인상을 준다.

 

오늘날 사냥이라는 전통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누이트는 극소수이지만, 그린란드 제2의 도시인 시시미우트(Sisimiut)에는 선조로부터 이어져온 그들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지금의 누크는 국제공항과 국립박물관, 미술관, 쇼핑몰, 아파트 단지 같은 고층 빌딩이 들어선 그린란드 내 유일무이한 도시다. 도심은 규모가 매우 작아 중심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흰 눈을 뒤집어쓴 전통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골 마을을 연상시킨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검정으로 칠한 그린란드의 전통 주택은 순백의 설원을 배경으로 더 돋보인다.

 

마치 깨끗한 캔버스 위에 채도 높은 물감 몇 방울을 떨어트린 듯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경관이다. 이 같은 다채로운 색상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8세기 덴마크 식민지 시절, 집 번호나 거리 이름이 없어 사회 주요 기능을 하는 건물을 쉽게 구별하려고 5가지 색으로만 칠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빨간색은 교회나 학교 혹은 그 종사자에게, 노란색은 병원과 의료 종사자에게, 녹색은 기계공이나 통신업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부여됐다. 그리고 파란색은 어업 종사자에게, 검은색은 경찰서에 쓰였다. 물론 지금은 주택 소유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색으로 칠할 수 있다. 알록달록한 유채색을 뒤집어쓴 전통 가옥은 황량하고 쓸쓸한 그린란드의 겨울 풍경에 따듯함과 생기를 불어넣는 그림 같은 요소다.

붉은 돛을 펼친 채 천천히 '아이스피오르'를 항해하는 보트이다.

붉은 돛을 펼친 채 천천히 아이스피오르를 항해하는 보트 투어는 일루리사트에서 꼭 경험해야 할 체험거리다.

거대한 '빙산' 사이로 서서히 해가 저무는 일몰 무렵의 장관이다.

자연이 빚은 거대한 빙산 사이로 서서히 해가 저무는 일몰 무렵의 장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이스 피오르'의 푸른 빙산이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이스피오르는 사시사철 해수면 위로 옅은 푸른빛을 띤 빙산을 감상할 수 있다.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전통의상을 착용한 '이누이트'의 사진이다.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전통의상을 착용한 이누이트. 그린란드에 최초로 정착한 선조의 발자취는 여전히 이누이트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곳

솜털처럼 가벼운 눈이 계속 쌓이고 쌓여 단단한 얼음이 되고, 이 얼음덩어리가 중력의 영향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는 현상을 빙하(氷河)라고 한다. 얼음이 강처럼 흐른다는 의미다. 그린란드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구 빙상의 두께는 약 1.5km로, 무한한 시간이 응결해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이다.

 

린란드 중서부에 자리한 항구도시 일루리사트(Ilulissat)는 아이스피오르(Icefjord)로 유명하다. 순백의 빙하가 좁고 깊은 피오르를 따라 끝없이 펼쳐지며, 수면 위로 100m 이상 솟아오른 거대한 빙산이 빚어내는 풍경은 압도적으로 황홀하다. 이토록 놀라움을 자아내는 빙산은 보호구역을 따라 4,000km²에 걸쳐 펼쳐져 있어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또 아이스피오르는 지구의 온도 상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후 바로미터’ 기능도 한다. 기후변화의 결과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로, 유네스코는 2004년 ‘아이스피오르를 보호해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의무가 있다’라는 취지로 이곳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일루리사트는 그린란드에서 빙산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도시로, 사시사철 해수면 위로 옅은 푸른빛을 띤 유빙이 떠다닌다. 아이스피오르를 천천히 항해하며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감상하는 3시간가량의 보트 투어는 일루리사트 여행의 필수 코스다. 보트 투어를 경험하려면 패션엔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중무장해야 한다.

 

투어 내내 갑판에서 빙산을 보는 일은 추위와의 싸움이라 몸 구석구석에 핫팩을 붙이고, 내의와 양말도 두 겹씩 야무지게 겹쳐 입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항구로 향하는 길. 얼굴이 꽁꽁 얼어붙는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글루를 짓고 눈밭에서 뒹굴며 놀기 바쁜 아이들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다 큰 어른은 추위에 쩔쩔매는데, 얼음 왕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정도 추위는 일상이라니.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서서히 움직이며 아이스피오르 입구를 향해 나아간다. 한눈에 담기지 않을 만큼 웅장한 빙산 규모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북극의 빙하라니! 빙산에 가까울수록 쩍쩍 갈라지고 윙윙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지구가 살아 숨 쉬는 소리이자 기후위기를 향한 경고음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지구에 어떤 유해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닐지 숙연해진다.

 

삐죽빼죽 날을 세운 빙산은 날씨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흐린 날에는 푸른빛이, 맑은 날에는 흰색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빙산의 진가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일몰 무렵이다. 주홍빛 석양을 배경으로 처연한 푸른빛을 띠는 빙산의 모습은 영원히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황홀하기 그지없다. 부디 이 땅의 후손에게도 지금의 감동적 풍경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누크'의 시내 한복판에서 관찰된 '오로라'의 모습이다.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힌 누크의 시내 한복판에서도 오로라가 잘 관측될 만큼 그린란드의 겨울밤은 오로라의 향연이다.

'캉케를루수아크'의 '러셀 빙하' 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캉케를루수아크의 러셀 빙하 위를 걷는 행위는 그린란드의 빙하를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칠흑 같은 어둠이 두렵지 않은 이유

그린란드의 겨울은 어둠의 기세가 대단하다. 정오가 되어서야 동이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어둠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래서 짧은 낮 동안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설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이 이곳에서의 겨울 루틴이다.

 

오로라는 라틴어로 ‘북쪽의 새벽빛’을 뜻하는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 또는 영어로 노던 라이츠(Northern Lights)라고도 한다. 북극과 인접한 그린란드에서는 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다. 오로라는 빛 공해가 없는 칠흑의 어둠일수록, 별이 잘 보이는 맑은 하늘일수록 더 잘 관측된다. 그래서 누크, 일루리사트 같은 주요 도시에서는 현지 가이드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 오로라를 관측하는 투어를 제공한다. 물론 가로등이 켜진 도심을 걷다가 머리 위로 오로라가 춤추는 광경을 목격하는 선물 같은 순간도 가끔 주어진다.

누크에서 국내선을 타고 50분이면 도착하는 캉케를루수아크(Kangerlussuaq)는 연간 300일 이상의 맑은 밤하늘 덕분에 색색의 오로라를 관측하는 데에 최적의 장소다.

 

오로라 외에 개 썰매 여행, 빙하가 녹아 드러난 황량한 툰드라 지형을 볼 수 있는 포인트 660(Point 660), 사륜구동을 타고 거친 길을 달려 트레킹을 즐기는 러셀 빙하(Russell Glacier) 같은 볼거리도 다양하다. 또 청정한 자연환경 덕분에 그린란드의 야생동물인 험상궂은 사향소, 순록, 북극토끼 등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캉케를루수아크의 겨울밤은 오로라의 향연이다. 특히 서리가 내린 밤에는 오로라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 검정 도화지 같은 밤하늘 위로 초록과 보라, 파란색이 어우러진 오로라가 너울거린다. 하늘빛이 미세하게 변한다면, 곧 눈앞에 오로라가 나타날 것이라는 신호다. 이때는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한다.

 

사진 속 오로라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다. 서서히 오로라의 녹색빛이 칠흑 같은 어둠에 정밀한 균열을 내며 드러나고, 미약한 빛이라도 빛은 언제나 어둠을 이기듯 세상을 서서히 밝힌다. 수천만 년 동안 이 땅에서 지속된 자연의 섭리가 그러했듯이.

이 콘텐츠의 원문은 GOLD&WISE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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