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센터 ‘빛의 통로’ 선점… 90살 부품사의 조용한 역습

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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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대신 레이저 쏘는 ‘光신호’
인공지능데이터 폭발적 증가로
전 세계 빅테크 중심 수요 급증

방산·우주 등 사업 전방위 확장
작년 4분기 매출 전년比 49%↑

스마트폰에서 유튜브 영상이 끊김없이 재생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당연함 뒤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가 빛의 속도로 오가는 세계가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면서, 우리가 주고받는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챗GPT에 질문 하나를 던질 때도, 넷플릭스에서 4K 영상을 스트리밍할 때도, 그 신호는 어딘가에 있는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거친다. 문제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지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데이터를 ‘전기 신호’로 주고받았다. 구리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데이터 양이 급격히 늘어나자 한계가 드러났다. 구리선은 전송 속도에 한계가 있고, 열도 많이 발생하며, 멀리 보낼수록 신호가 약해진다. 빠른 도로인데 차선이 너무 좁은 셈이다.

그래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바로 ‘광(光) 신호’, 즉 빛을 이용한 데이터 전송이다. 전기 대신 레이저 빛으로 데이터를 쏘는 방식인데, 속도는 훨씬 빠르고 열은 적게 나며 먼 거리도 손실 없이 전달된다. 고속도로를 10차선으로 넓힌 것과 같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쏟아내며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지금, 광 부품 수요는 덩달아 치솟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기업이 바로 암페놀(종목코드 APH)이다.

암페놀은 1932년에 설립돼 올해로 90년이 넘은 기업인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오히려 더 주목받고 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연결 부품 전문 기업’이다. 전기든, 빛이든, 무선이든 신호가 흐르는 곳이라면 암페놀의 부품이 어딘가에 끼어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전투기까지 모든 전자기기 안에는 수많은 부품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암페놀은 그 신호가 오가는 통로를 만드는 회사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AI의 두뇌라면, 암페놀이 만드는 부품은 그 두뇌를 연결하는 신경망이다. 화려하게 주목받는 반도체 기업들 뒤에서 데이터가 실제로 흐르는 통로를 조용히 장악해온 기업, 암페놀은 ‘광 연결 산업의 숨은 강자’로 불린다.

암페놀의 사업은 크게 세 부문으로 나뉜다. 첫 번째, 극한 환경 솔루션(HES) 부문은 방위산업, 항공우주 등 혹독한 환경에서도 버티는 부품을 만든다. 두 번째는 통신 솔루션(CS) 부문이다. 이번 기고문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룰 부분이다.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5G 통신망에 들어가는 고속 연결 부품을 담당하며, 전기 신호뿐 아니라 광 신호용 부품도 여기서 나온다.

AI 열풍으로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암페놀 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부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 인터커넥트 및 센서 시스템(ISS) 부문은 자동차 전장, 전기차, 공장 자동화에 들어가는 센서와 안테나를 만든다. 세 부문이 전혀 다른 시장을 맡고 있어, 어느 한 산업이 부진해도 다른 부문이 버텨주는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암페놀이 단순한 부품 회사를 넘어 주목받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탄탄한 제품 라인업, 그리고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이다.

먼저 제품 경쟁력부터 보자. 암페놀은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연결 부품을 거의 전 영역에서 공급한다. 서버와 서버를 잇는 고속 케이블, 광섬유를 한곳에 모아주는 트렁크 케이블, 케이블을 꽂는 패널과 랙, 어떤 케이블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식별 솔루션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 서버 내부에 전기를 공급하는 버스바(전력 분배 장치), 광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광 트랜시버(신호 변환 부품)도 만든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입장에서는 연결 부품 대부분을 암페놀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품 경쟁력만큼 눈에 띄는 것이 M&A 전략이다. 암페놀은 시장이 커지는 곳을 골라 빠르게 역량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워왔다. 2025년 2월에는 콤스코프의 무선 네트워크 사업부를 인수하며 차세대 무선 통신 인프라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연간 약 13억 달러 매출이 예상되는 규모였다.

이어 2026년 1월에는 같은 콤스코프에서 광 인터커넥트 사업부를 추가로 인수했다. 연간 약 41억 달러 매출이 예상되는 대형 사업부로, 이번 인수로 암페놀은 데이터센터부터 건물 내 통신 배선까지 광 연결 포트폴리오를 크게 넓혔다.

통신과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방산과 산업 분야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025년 11월에는 방산 특화 기업 트렉슨(Trexon)을 약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연료 탱크와 산업 설비 상태를 측정하는 센서 전문 기업 로체스터 센서도 인수하며 산업용 센서 포트폴리오를 한층 두텁게 했다. 이처럼 암페놀은 성장하는 시장이라면 어김없이 움직였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실적으로 나타났다.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암페놀의 매출은 64억 4,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49% 늘었고, 주당순이익은 76% 급증했다. 둘 다 회사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였다. 사업 부문별로 봐도 고른 성장세가 눈에 띈다.

데이터센터와 광 인터커넥트를 담당하는 통신 솔루션 부문은 1년 전보다 무려 77% 성장했고, 방산 및 항공우주 사업도 31%, 자동차 및 산업용 센서 사업도 21% 늘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전 부문이 함께 성장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영업이익률도 27.5%로 1년 전보다 5%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올해 1∼3월 전망도 밝다. 회사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4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콘텐츠는 '문화일보'에 등재된 기고글입니다.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소속 회사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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